여행을 마치며
호주에 도착하기 전까지 나에게도 그곳은 캥거루의 나라였다. 나 역시 호주에 대해 무지한 채 용기 하나만 가지고 떠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짜 호주를 경험하면서부터 캥거루 한 마리만 덩그러니 놓여있던 내 여행지도 위에는 쿼카, 웜뱃, 바오밥나무, 혹등고래, 사막, 로드하우스, 울룰루 같은 것들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특히나 나의 호주 지도가 다양한 생물들로 붐비기 시작한 것은 건기가 시작되는 시즌부터였다. 뚜렷하게 사계절이 존재하는 도시의 생활과는 달리 아웃백에는 건기와 우기라는 두 계절만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 몇 개월동안만 인간에게 허락되는 여행이라니!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게 하는 나라가 남반구에 있었던 것이다.
호주는 밤이 그 어느 곳보다 적막한 나라이지만 그렇기에 세상에서 가장 멋진 밤하늘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인간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날씨는 자연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환경을 제공해 주었는데 이는 다르게 말해 조금의 불편을 감수하기만 한다면 날 것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빛 공해에서 온전히 멀어졌을 때 자연은 오래도록 품고 있던 태초의 지구를 조심스레 꺼내어 보여주었다. 몇 번을 봐도 볼 때마다 코 끝이 찡해져 오는 장면이다. 오래도록 보고 싶어서 돗자리에 크게 누워 별을 바라보다 잠이 들어버린 적도 있었다. 그날 꿈에서는 별똥별이 참 많이 떨어졌던 것 같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호주라는 단어만 들어도 마음이 슬퍼져서 괜히 그곳을 외면하곤 했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아이가 두 돌을 갓 넘기고 나니 이제야 찾아온 여유가 잊고 있던 시간들을 돌아보게 한다. 다시금 책상 앞에 앉아 매듭짓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씩 써 내려가 보기로 했다. 호주에 대한 기록은 아마 내가 처음으로 시도하는 그리움이 될 것이다. 사람들이 채 알지 못하고 떠난 호주의 아름다움을 이제는 조금 꺼내놓아도 괜찮을 거라는 작은 확신이 들었다. 언젠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름 지었던 '바다 넘어 있을지도 모르는 신비의 남쪽 대륙 Terra Australis'이라는 뜻처럼 분명 그곳은 '신비'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곳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