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ssie Oct 22. 2023

떠날 용기가 있는 모두에게
‘꽃보다 청춘’

‘위너’와 함께 떠난 서호주 여행

촬영 마지막 날이 마침 나의 생일이었다! 


 호주에서 오퍼레이터로의 마지막 임무를 수행한 것은 바로 ‘꽃보다 청춘촬영이었다. 연예인 온다는 연락을 받고 촬영을 하기 위한 허가를 위해 인적사항을 확인했는데 그룹 이름은 ‘위너’, 래퍼 송민호가 속해있는 그룹이었다. 그들 중 몇몇은 내 동생과 동갑내기 친구들이었다. (이 부분에서 심하게 한숨을 쉬었다) 그 당시 나는 송민호의 '겁'이라는 랩을 굉장히 좋아해서 혼자 읊고 또 읊던 시기였는데 눈앞에서 그 노래를 부른 이를 만난다니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프로는 그런 마음을 내색하지 않는 법! 그들을 만나더라도 함께 사진을 찍자거나 사인을 해달라고 하는 모습 따위는 보이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을 했다.



 방송에서는 모든 것들이 그들의 자유의지로 흘러가는  보였지만 사실 많은 부분에서 제작진의 의도가 개입된다. 촬영을 하기에 앞서 서호주 가이드북까지 만들어  제작진들을 데리고 사전 답사를 떠났다. 원주민 투어를 해보기도 하고 캠핑을 떠나고, 동물원에 다녀오는  위너가 도착했을 때 경험할 수 있는 옵션들을 미리 다양하게 체험해 보고 가이드북에 실어서 죄수복을 입고 온 그들에게 건넬 예정이었다. 그중 좌절된 한 가지 경험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심야 버스를 타고 1,200km 떨어진 엑스마우스까지 가는 일이었다. PD님과 작가님 그리고 나까지 최소한의 인원으로 착출 된 이 사전 답사는 퍼스에서 오래 살았던 나조차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옵션이었다.


 심야버스를 타기 위해 퍼스 중앙의 버스 정류장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티켓을 끊고 짐을 싣고 버스에 오르니 호주 원주민들 이미 뒷좌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20분 정도를 달렸을 즈음, 우리는 어두운 버스 내에서 촬영이 어려울 것 같기도 하거니와 버스를 타는 사람들이 그리 상냥하지 않을 것 같다는 점 등을 고려해 엑스마우스까지 가는 여정은 옵션에서 제외하기로 하고 중도 하차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엑스마우스에서 커다란 만트라레이 혹은 혹등고래와 수영을 하는 일은 그 어느 곳에서도 해볼 수 없는 경험이었을 텐데 아쉬움이 많이 남긴 한다.





위너의 '꽃보다 청춘'


 죄수복을 입고 호주에 도착한 위너는 첫날부터 열심히 퍼스 시내를 돌아다녔다. 방송에선 여행지가 미공개로 소개되었기에 촬영을 하면서도 주변에서 사진을 찍는 이들에게 인터넷에 올리지 말아 달라고 당부를 하고 또 했지만 한인 커뮤니티에는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위너가 왔다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무튼, 위너는 그런 것들에 아랑곳 않고 부지런히 퍼스 시내를 돌아다녔고 다음 날에는 퍼스보다 먼저 역사가 시작된 프리멘틀이라는 항구도시에서 시장을 둘러보는 일정을 소화했다. 승훈 군은 그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나에게 슬며시 와서 목적지에 가기 위한 방향을 물어오거나 필요한 정보들을 얻기 위해 질문을 던졌지만 아무것도 대답하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어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할 뿐이었다. (보자마자 나를 누나라고 부른 친구들.. 또르륵)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동물인 쿼카를 보기 위해 로트네스트 섬으로 넘어가서는 스카이다이빙을 즐겼고 쿼카와 셀카를 찍고 부지런히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배를 타고 다시 프리멘틀에 도착한 그날 저녁에는 모든 사람들이 맥주 양조장에 모여 맥주를 기울였다. 아이들이 "누나 같이 마셔요"라며 숙소로 향하는 나를 붙잡았지만 뛰어난 직업 정신으로 손을 뿌리친 다음다음 일정을 준비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하면 보자마자 누나라고 부른 것에 대해 호되게(?) 꾸짖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렌터카를 빌려 호주 남부로 떠나면서부터는 비로소 조금 자유로워졌다. 승훈 군이 운전하는 동안 바로 뒤에서 선발대 차량을 타고 가며 무전기로 방향을 알려주고 상황을 공유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나에게는 가장 긴장되고 어려운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지도를 보고 쉴 새 없이 진행 상황을 알려주어야 했던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그들은 굉장히 아늑하고 깊숙한 곳에 있는 통나무 집을 숙소로 잡았다. 그리고 짐을 풀기도 전에 시끌시끌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옆 숙소로 신나게 달려갔는데 난데없이 카메라와 어린 친구들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연휴를 즐기고 있던 호주 사람들은 다소 화가 났던 모양이었다. 숙소에 남아 뭔가를 확인하고 있던 나는 당장 PD님께 불려 갔고 화가 나있는 그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연거푸 사과를 했다. 카메라에 있는 그들 영상도 지워주기로 약속했고 말이다. 그들은 내가 차근히 설명을 하자 수긍을 하고 본인들도 화를 내서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현장에 있다 보면 다양한 일들이 생기는데 이 정도 일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내 역할은 사고 뒷수습이 절반쯤이기도 하다.





드론 감독님이 선물해 주신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혹등고래 사진.  


 다음 날 아침에는 던스보로라는 항구 도시에서 고래투어를 떠날 계획이었다. 아이들은 가이드 북을 보거나 검색을 하며 짧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할지 결정을 했는데 그들이 대략적인 계획을 이야기하면 내가 현지 업체에 연락해 방송 촬영에 대한 허락과 제작진을 포함한 인원에 대한 예약이 가능한 지를 확인하고 비로소 진행이 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커다란 배를 타고 혹등고래를 보러 갔다. 방송 분량을 떠올리며 고래를 만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노심초사하고 있던 중 갑자기 선장님이 핸들을 부지런히 돌리기 시작했다. 고래가 수면으로 올라왔다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갈 때면 '풋 프린트 Foot Print'라는 고래 기름이 일시적으로 수면에 떠오르는데 선장님이 이 풋 프린트를 발견한 이유에서였다. 커다란 엄마 혹등고래와 아기 혹등고래가 힘차게 수면 위로 떠올랐다가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위너를 포함해 함께 갑판에 올라있는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문득 "형, 저 고래 우리 같지 않아?"라고 묻는 승윤 군의 말에 다들 공감하는 얼굴로 바다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평생을 먼바다를 헤엄치며 살아가는 일, 쉬지 않고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살아가는 일. 연예인으로 사는 일은 어떤 무게를 짊어지고 살게 되는 일인지 나는 감히 예상이 되지 않지만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 무게를 조금 짐작할 뿐이었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공항으로 가는 길, 무전기로 마지막 교신을 하던 중 승윤 군이 싸이의 ‘연예인’ 노래를 불러주었다. 무전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눈물이 핑 돌았던 건 나 역시도 그날의 촬영이 나의 마지막 업무가 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촬영 마지막 날은 나의 생일이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제작팀 분들이 떠나기 전 공항에서 서프라이즈 파티를 해주었다. 울기만 하다 끝난 생일 파티였지만 그래도 내 생에 가장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다. 


 언젠가 꼭 한번 '꽃보다 청춘' 시리즈를 찍고 싶다는 야심 찬 꿈이 있었다. 꿈이 간절하면 현실이 된다는 걸 촬영을 하면서 느꼈다. 촬영은 늘 긴장 속에 살아야 하고 편하게 밥을 먹거나 잠을 자지도 못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보람찬 순간이었다.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곳을 많은 이들과 나눈다는 것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이 기쁨을 느끼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 일에 대한 의미를 찾았다. 가슴 뛰는 일, 의미 있는 일을 해나가겠다는 산티아고에서의 다짐을 어느 정도 이룬 셈이었다. 먹고사니즘으로 인해 결국 현실과 어느 정도 타협을 하고 몇 년 전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나에게는 호주 오퍼레이터로서의 삶이 여전히 가장 가슴 뛰는 일이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그 의미를 알려준 꽃청춘 팀과 위너에게도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싶다. 




이전 09화 인간의 '처음'을 찾아가는 여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