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나는 여행에서 배운 것들
외로움이 찾아올 때, 사실은 그 순간이 인생에 있어 사랑이 찾아올 때보다 더 귀한 시간이다.
쓴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한 인간의 삶의 깊이, 삶의 우아한 형상들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 곽재구의 포구기행 중
혼자하는 여행의 기억이 어디서부터였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주 오래 전 기억 저장소를 샅샅이 뒤져보아야 하는 게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마음이 뒤죽박죽 혼란스러워질 때면 버스 뒷자리에 앉아 20여분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한 산사의 절을 찾아가는 버릇이 있었으니 아마 그 언저리 즈음부터 나는 혼자인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 같다. 육지를 벗어나 제주도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했을 때에도 주말이면 기숙사에 온전히 붙어 있던 기억보다는 이따금 혼자 배낭을 메고 올레길을 걷는 기억이 먼저 떠오르는 걸 보면 함께하는 여행만큼이나 혼자하는 여행이 주는 즐거움을 꽤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방학이 시작되고 육지 생활을 시작하는 겨울 방학 시즌이었다. 부모님이 모두 일을 가시고 잔뜩 조용해진 집에 누워 리모컨 버튼을 누르다가 우연히 알게된 강원도의 바다 열차를 본 순간 나는 그로부터 3시간 후에 집을 나서고 있었다. 시골마을에서 버스를 타고 부산 종합 버스 터미널로 그리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부산역으로 향하면 금요일 늦은 밤, 강원도로 향하는 기차를 탈 수 있었다. 홀로 밤 기차에 올라 가방 속 mp3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다, 책을 읽다, 창문에 비친 다른 여행자들의 옆 모습을 바라보다가를 반복하다보면 모두가 잠에 빠져드는 시간이 찾아왔다. 가방을 꼬옥 안고 칠흙처럼 어두운 창문 너머를 보면 기차 밖의 세상은 유난히 고요하다는 사실을, 그렇게 산다는 것은 어쩌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나는 조금은 유연해져가고 있었다. 낯선 환경 속에서 쉬이 잠들지 않으려 잠과 현실의 경계를 몇 번이고 넘다보면 정동진과 몇몇 익숙한 정거장에서 내일로 기차여행을 하는 학생들이 내리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고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내멘트가 들려왔다. 하얀 입김이 나오는 추운 겨울의 강원도는 무척이나 추웠고 아무런 계획없이 떠나온 강원도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할 진 몰랐지만 두렵진 않았던 것 같다. 밤새 차창 밖을 바라보느라 미처 몰랐던 배꼽시계가 울린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차역 인근에 있는 국밥집으로 걸어가는 길목에서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대학교에서 같은 교양 과목을 듣던 미대생 언니로 혼자 여행을 하던 우리는 출발지는 울산과 제주로 서로 달랐지만 혼자라는 이유로 부쩍 가까워졌다. 낯선 역 앞 허름한 밥 집에 앉아 허기를 채우는 일은 생각보다 따뜻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함께 택시를 타고 태어나 처음 가보는 경포대 바다에서 사진을 찍고 바다가 보이는 열차에 앉아 사연과 신청곡을 써내고 추억을 나누던 그 기억 덕분에 나는 서른이 된 지금까지 혼자하는 여행은 결코 혼자가 아님을, 길에서 만난 그 어떤 인연과도 가까워질 수 있음을 배웠다.
혼자하는 여행이 익숙해질 즈음이면 사람은 따뜻해진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과 허름한 식당에 들어가 뚝배기 한 그릇을 먹으며 마음을 나눌 줄 알고, 주머니 속 얼마 남지 않은 사탕 몇 알을 나눠 먹으며 산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줄 알며, 여행지에서 만난 할머니의 보폭에 발걸음을 맞출 줄 안다. 시간에 너그러우며 주변의 풍경들에 애정어린 시선을 나눌 줄 안다.
여전히 세상은 위험하고 사람은 무섭다지만 내가 혼자하는 여행을 멈추지 않는 건 '혼자인 시간'을 잘 보낸 후의 '함께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기 때문에, 혼자인 시간 속의 사색과 상념들이 나를 더욱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에, 세상에 따뜻한 시선을 보낼 줄 아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