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다: 나를 찾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서른이라는 단어가 그 누구보다 두려웠던 이유는, 20대의 방황이 정리가 되고 결국 마침표를 찍게 되는 시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가 서른에는 방황을 하면 안된다고 정의한 것일까. 무엇이 서른의 무게를 더했는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가 없지만 분명 또래 친구들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으리라. 스무살이 되면서부터 마음 속에 감춰져있던 열정들이 마음껏 폭발하기 시작했고 그 누구보다 하루하루를 26시간처럼 살아오던 나에게 사람들은 항상 말하곤 했다.
"너는 정말 뭐라도 될 것 같아"
"넌 무엇을 하더라도 성공할거야 정말"
그 당시 '성공할 xxx'라고 큼지막하게 공책마다 붙여두고 다니던 나의 자신감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시간이 지날 수록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한 나를 보며 나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사실 그 성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른 것이었는데 말이다.) 그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성실했지만 방향을 모르는 배가 저어 나아가는 노가 나를 어디로 데려다두든 그 것은 다시금 원점으로 돌아가야한다는 것을 의미했으니 '무의미한 노력'이 아니었던가를 물으며 나는 꽤 심한 자책을 해왔나보다. 사실 노를 저어 나아가는 배에게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었으니 말이다.
오랜 여행동안 '나'라는 사람을 꽤 알아왔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알고 있는 '나'를 뛰어넘은 또 다른 내가 있다는 사실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하게 만들었다. 다른 누구보다 심한 방황과 사춘기를 겪어내고 있는 내가 과연 '정상'이라는 범주 안에 들어가는 것인지, 아니 그 '정상'이라는 범주를 만든 것은 누구인지를 나는 묻고 싶을 정도였다.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삶을 살까봐 나는 오랫동안 두려웠다. 4년이 넘는 시간을 호주라는 나라에서 보내고 돌아올 때도 내가 아무것도 이뤄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나에게 남겨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 막상 한국이라는 공간에 돌아와 주변을 돌아보았을 때 나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 너무나 초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고슴도치처럼 웅크려 가시를 잔뜩 돋우고 있었다. 숫자의 노예가 되는 삶을 살고 싶진 않았지만 순식간에 날려버린 엄청난 돈을 생각하면서 나는 하루하루 줄어가는 통장 잔고에 시달리는 그런 노예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힘겹게 걸으며 스스로에게 한 다짐들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몸이 힘들고 고되더라도 마음이 행복해지는 일을 하자.
너는 그래야 행복해지는 사람이니까"
발톱이 빠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웃고 있는 나를 보며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이미 깨닫고 있었는데 흔들리는 주변의 환경 속에서 나 혼자서만 나를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후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서의 하루하루를 기록하고 그 길 위에서 만났던 보석같은 하루와 생과 사의 갈림길 앞에서도 덤덤히 삶을 바라보던 소중한 사람들의 삶을 다시금 떠올리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쉽게 잊어버리고마는, 오늘 아침에 한 일도 저녁이 되면 잊어버리고 마는 나의 1초 기억력을 돕기 위해서, 쉽게 잊혀지고 마는 나의 열정을 위해서 그래야만 했으니까. 글을 쓰는 오롯한 나만의 시간동안 그 시절의 기억과 열정을 다시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글을 쓰는 일이었으며 사실 글을 쓰는 일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내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니 앞으로 그 것이 내 삶의 촉매제가 되리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여전히 흔들리는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어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하나 둘 만나기 시작했다. 내 삶에 대한 열정과 컵라면 하나로 하루를 버티면서도 그 곳을 포기하지 못했던 나의 시간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다시금 사람들은 나에게 "역시"라는 단어를 던지기 시작했다. 아마 앞으로도 더 많은 길을 걷고 사진을 찍고 석양이 지는 시간을 달리며 글을 쓰게 될 것이다.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삶에 대한 기대가 아닌 오랫동안 비어있는 내 주머니가 무색하지 않도록 나에게 크고 작은 체온을 나눠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와 간절함으로 말이다.
살아있는 눈빛을 가지고 있는 사람,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서 만나 뵈었던 한 아저씨의 눈빛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닮아가고 싶은 눈빛을 만났으니 이젠 내가 그 눈빛을 위해, 내 삶에 대한 중심을 찾기 위해 더 많은 마음을 써내려가야하는 때가 아닐까. 아마 이 방황의 끝에서는 이 모든 시간들이 그리워질테니 말이다. 세상 어딘가에는 서른이 되어도 여전히 방황하는 청춘이 있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위안이 되길 바라며 흔들리는 시간에 대한 글의 조각들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