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에 일어난 영화같은 일

인생이라는 사탕 단지에서 쓴 맛의 사탕을 먼저 집어든 우리를 위한 위로

by Je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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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사탕 단지에서 쓰디 쓴 맛의 사탕을 먼저 집어 먹은 당신과 나를 위한 위로.


인생에서 영화같은 일이 생긴다면 그 기분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대게는 그 영화가 로맨스 이거나 해피엔딩의 휴먼 드라마였기에 나에게도 언젠가 그런 일이 생기길 간절히 바라왔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영화같은 일이 일어나길 바라지 않는 현실적인 어른이 되었다.



내가 그를 만난 건 3년 전 그 곳의 여름 날이었다. 낯선 나라, 낯선 공간에 떨어져 홀로 차가움을 견뎌야 했던 그에게 생긴 일을 처음부터 쉽게 이해할 수는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일 앞에서 나는 겁에 질린 사람처럼 두렵기도 했고 몇 달간 집으로 가는 길을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 걸어야 했었다.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차마 지울 수가 없어서 때때로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한참동안 눈만 꿈뻑거려야 했다. 아마 당사자인 그에게는 이 모든 일들이 나보다도 더 간절히 '꿈'이길 바랐을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말이다.



정신을 차릴 수 없는 폭풍우에 휩쌓이다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 마주하게 된 차가운 방의 공기가 그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 왔을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몇 번의 공판을 끝내고 지쳐 있을 즈음에 나는 그와 처음 만나게 되었다. 어색하고도 서먹한 첫 대면 후 써내려 간 편지 한 통. 내가 상념에 잠겨 있는 누군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진심을 눌러 쓴 편지 밖에 없다는 생각에 나는 가끔 세상 밖의 소식들을 편지 안에 담아 건냈다. 그 어떤 위로도 그에게 와닿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그 누구도 그를 쉽게 위로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한 통의 편지가 두 통이 되고 세통이 되는 동안 나는 편지의 횟수만큼 면회를 다녀왔고 우리는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 그러던 중 우리의 공통된 관심사가 책이라는 걸 깨닫고서는 책 속에서 베껴 쓴 구절들을 편지 끝 자락에 눌러 담아 보내는 일이 잦아졌다. 밝고 활발한 듯 보이는 것과 달리 나는 책을 읽고 달리기를 하고 와인을 마시는 조용한 일들을 좋아했지만 그는 보이는 것처럼 책을 읽고 사색을 즐기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겉모습 속에 숨겨진 같은 취미를 가진 나를 흥미로워 하는 그와 책 속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생겼다는 나의 기쁨은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고 나는 그가 추천해 주거나 좋아하는 책들을 대신 읽어주는 일들을 시작했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겨우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었는데 1시간 반 가량을 이동하는 동안 나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건낼지에 대한 즐거운 상상을 하곤 했다. 그는 읽었던 책들에 대한 기억을 정확히 하는 편이라 어떤 책속의 구절을 나에게 대략적으로 읊어주었고 나는 어떻게든 그 책들을 구해 읽으며 그에게 다시 정확한 책 속의 문장을 건내는 일들을 꽤 오랫동안 해나갔다. 책을 함께 읽는 일과 함께 면회 시간을 기다리며 편지를 쓰는 일은 그리고 또 편지를 받아든 그의 모습을 상상하는 일은 내 삶의 이유를 정의 내리는 시간이었고 하루하루를 의미있게 살기 위한 주문 같은 것이기도 했다. 이따금 그를 만나기 전 우연히 책 속에서 감명깊은 구절을 만났을 때면 잔뜩 상기된 목소리로 그에게 책 속 구절과 함께 내가 느낀 감정들을 풀어내곤 했는데 이런 감정과 경험은 아마 이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 누구에게서도 가질 수 없는 무엇이라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이나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여전히 혼란스러운 내면 세계와 싸우고 있던 그는 답장을 쓰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우스갯소리로 "답장은 언제 보낼거예요?" 라는 내 말에 스스로의 마음과 싸우며 답장을 보냈고 나는 편지에 담겨있는 고민과 고뇌의 흔적들을 읽어내려가며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흘린 눈물 이후로 내가 아닌 타인의 아픔에 눈물을 흘리는 일은 처음 있는 일이라 꽤나 당황스러웠지만 그의 편지를 받아들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사람 또한 없었을 것이다. 내 편지가 그에게 닿기까지는 2-3주 정도가 소요되었고 그가 보낸 편지 역시 나에게 도착하는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기다림의 시간동안 이따금 우리는 통화로 하루의 안부를 나눴고 나는 '달리기에 대한 예찬', '와인을 좋아하는 이유', '산티아고 순례길', '호주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로 통화의 대부분을 채워 나갔다. 어느 날 문득, 듣고 싶은 노래가 있다며 전화를 걸어온 그에게 빈지노의 노래를 들려주던 날을 기억한다. 10분 밖에 되지 않는 길지 않은 통화 시간이 끊기기 전에 음악을 들려주려 부산하게 움직이던 나와 수화기 너머로 기다리던 그 사이에 어느 덧 음악이 흘러 공백을 채웠고 그는 그리웠던 노래를 들으며 아마 침묵 속 울음을 삼켰던 것 같다. 음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는 끊어졌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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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부탁으로 시작했던 그를 만나러 가는 일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나를 찾아가는 일'이 되었다가 결국 '인생이라는 간식 상자에서 쓴 맛의 사탕을 함께 고른 동지애'를 다져가는 일이 되었다. 마음을 눌러 쓴 편지 안에 그 모든 고뇌와 아픔을 담을 수도, 그 감정을 서로가 모두 이해할 수 있을 수도 없단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우리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쓰는 편지를 서로에게 보내며 인생의 아픔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리라. 인생이라는 사탕 단지에서 기쁨의 맛을 골라 들지 못한 사람이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서로 위로하면서 말이다.

그가 이야기했던 개밥바라기별의 한 대목처럼 우리는 '목마르고 굶주린 사람의 한 끼니 식사처럼 맛있고 매순간이 소중한 삶'을 아마 아주 오랫동안 써내려 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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