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다른 이름,

시간을 저축하고 설렘을 이자로 받을 수 있는 은행

by Jessie
IMG_0517.JPG


몇 시간 후의 비행을 앞두고 나는 꽤 긴장하고 있다. 하늘을 날고 싶다는 꿈을 다른 방향으로 이루긴 했지만 10년 동안 적어도 1년에 두 번은 비행기를 타는 일을 하던 나에게 일반적인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는 횟수보다 나의 출국 횟수가 더 많은 것은 우연이기도 하고 어쩌면 내가 선택한 운명이기도 했다. 그 곳으로 가는 비행기는 언제나 오전 10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출발한다. 사람이 북적이는 인천공항에서 조금이나마 여유를 부리기 위해선 언제나 조금 서둘러 첫 지하철을 타고 그 곳으로 출발하며 언제나 파리크라상에서 빵 하나와 라떼 한잔을 마셨다. 마치 출국을 하기 전에 치르는 성스러운 의식처럼 말이다. 혼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떠남을 준비하는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는 일은 때론 그들의 설레임을 나눠 가지는 일이었고 어느 덧 떠남이 '일'이 되어버린 나의 딱딱하게 굳어버린 그 어떤 설렘에 조금이나마 단비같은 역할을 했다. 설렘은 어느 덧 지났지만 10년이라는 시간동안 공항에 가기 전 내 긴장의 끈은 손 댈 수 없을만큼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고 떠남은 3시간 앞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알람을 맞춰둔 시간보다 항상이지 일찍 눈을 떴고 하루 종일 흘릴 땀을 예상하며 미리 샤워를 했고 몇 시간 뒤 시간과 공간이 뒤바뀐 어딘가에 있는 그 짜릿한 감정을 상상하면 떠나기 전 날은 언제나 긴장이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의 목적지가 아니지만 쉴새없이 바뀌어가는 전광판을 바라보는 일은 앞으로 내가 닿고 싶은 도시를 상상하는 일이며 새로운 도시에서 마시는 라떼 한잔의 맛을 미리 느껴보는 일이기에 공항으로 가는 날은 미묘한 설렘을 가져보기 위해 미리 집을 나서곤 했다.



공중에서 사라져버린 그 어떤 시간을 떠올릴 때가 있다. 시간 경계선을 뛰어넘어 전혀 다른 시간의 공간에 도착했을 때의 기분은 특히나 그 것이 내가 직접 흘려보낸 시간이 아니라 상공을 지나 물리적인 힘에 의해 빼앗겨 버린 시간이었을 때의 감정은 처음엔 당연히 받아들이는 무엇이었지만 이제는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시간 은행에 저축을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국을 떠나 이제는 이미 익숙해져버린 그 곳에 닿으면 비행 중인 13시간을 제외하고 1시간의 시간을 그 어딘가에 저축하게 된다. 그 곳에서 다시 한국에 돌아오는 길에야만 내가 맡겨둔 1시간을 찾을 수 있는 그 멜랑꼴리한 시간의 저축 현상에 대해 나는 끊임없이 생각한다. 떠남으로써 비로소 행할 수 있는 일 중 하나인 '시간을 저축하는 행위'를 나는 다시 시작하게 될테고 그 이자로 받게 되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설렘과 무언가에 대한 배움의 시간을 끊임없이 경험하며 보이지 않는 것들을 마음 속에 쌓아가는 사람의 성장 과정을 담아낼 수 있을거라 기대하며 말이다.





인생에서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몇 초보다 더 해방감을 주는 시간은 찾아보기 힘들다


알랭 드 보통 / 여행의 기술


매거진의 이전글당신의 삶에 일어난 영화같은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