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는 그래서 글을 씁니다.
"사람이 잘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의 마음에 씨앗을 심는 일인것 같다.
어떤 씨앗은 내가 심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뒤에도 쑥쑥 자라나 커다란 나무가 되기도 한다"
꽤 오랫동안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다.
글을 쓰는 습관을 돌이켜보면 아마 그 시작점은 '외로움'에서부터가 아니었을까. 내 마음이 하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 쓰던 글들은 사실은 내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는데 이따금 내가 써내려간 글을 읽고서 누군가가 나에게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남겨주거나 혹은 나를 만나고 싶어하는 어른들을 만나는 기회를 가지고 나면 '나'라는 존재 자체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되곤 했다. (왜 사람들은 나를 만나고 싶어하는걸까, 라는 물음에서 점점 성숙해져가는 나의 인간적인 모습에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유약하지만 그렇기에 나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고 다가온 사람들의 또 다른 시선과 따뜻한 충고가 긴 해외생활을 하던 나에게는 외로움을 이길 수 있는 작은 위안이었다. 가끔 내가 써내려가는 글이 지나친 거짓을 담고 있거나 위선적인 모습을 띄지 않는 것은 내가 스스로와 타협한 방식이었으며 스스로가 다시금 읽어 내려갔을 때 적어도 부끄럽지 않은 글을 써내려가는 일들을 하고 싶었고 적어도 지금까지의 삶은 그러했다. 자조적이지만 조금씩 성숙해져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겪어온 크고 작은 일들을 통해 누군가는 위로를 받고 결국에는 성숙해져가는 한 사람의 인간을 보며 희망을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불안과 두려움을 받아들이지 않고는 어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생은 본질적으로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불안이나 두려움은 영원히 극복할 수 없는 것이었다'
본인의 생각과 삶에 대한 가치들을 정리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적어도 나는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한 글을 써내려가며 스스로의 생각들을 정리하는 삶이었고 그러한 삶이 누군가에게 영감과 희망을 주는 일이라면 나는 기꺼이 그 일을 하겠다 마음 먹으며 '나'라는 사람이 '인간적으로 성숙해져 가는 과정'을 담아내는 중이다. 서른의 내가 되기까지 무척이나 긴 여정을 걸었고, 인생이라는 여로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만났으며, 너무나도 다른 장면들 속에서 하나의 풍경이 되는 경험들을 해왔다. 이젠 화려하게 보여지는 사람들의 꾸며진 모습에 흔들리지 않고 성숙해져가는 내공으로 적어도 타인과의 비교가 아닌 어제의 나를 넘어서는 삶을 경험해가고 있다. 오늘까지의 서른을 돌아보면 20대의 흔들림을 정리하는 과정이자,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는 시간이었고 앞으로의 인생을 계획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돌리고 싶냐고 물었을 때 쉽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는 이유는 지금까지의 경험들이 만들어온 나라는 사람을 쉽게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적어도 지금의 나는 숱한 경험들을 통해 단단해져가는 사람이 되었으니 그러한 경험들을 해내지 않고 숱한 바람에도 흔들리는 사람보다는 바람에 맞춰 흔들리기도 하지만 결국 다시 설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 내 삶의 방향이니 말이다. 앞으로도 더 많은 바람과 마주하고 흔들리겠지만 석양을 보며 달리고 그 시간들의 생각을 글로 담아내며 하루하루 나아지는 서른의 삶을 살아가게 될 나의 삶을 깊이 사랑하고 있다.
본문의 글 : 오늘 내가 살아 갈 이유 / 위지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