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그 곳으로 떠났다
한국에 돌아온 후로 나는 종종 시름시름 앓았다. 종종이 아니라 깨어있는 모든 순간이 끝없는 물음표와 삶에 대한 의문으로 가득한 그런 날들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알지도 못하면서 쉽게 말하곤 했다.
"너는 한국에서 적응하기 쉽지 않을 거 같은데.."
그렇게 무심코 내뱉는 가벼운 말들이 나에게는 무거운 마음의 짐이 된다는 것을 사람들은 과연 알고서 뱉은 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점차 나는 사람들의 말처럼 살아가고 있는 듯 했다. 아니,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새장 속에 갇혀 사는 새처럼 마음에 쫓겨 허둥지둥 구해버린 직장에서 나는 빛을 잃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경험한 꼬박꼬박 꽂히는 월급을 받은 댓가로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 것일까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했으니 회사에서 나의 모습은 조금씩 회색빛을 띄기 시작했던 것 같다. 결국 회사에서 경영난으로 인해 권고사직을 권유하며 나는 자의가 아닌 타의로 회사를 나오게 되었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대상포진에 걸리며 한 달동안 방에 누워 내가 하고 싶은 일, 나의 색깔, 나의 의미를 찾는 시간을 비로소 가지게 되었다. 언제나 노를 젓지 않으면 불안했던 나는 방향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불안함 때문에 끊임없이 노를 저으며 살았으니 이렇게 쉬고 있는 순간은 꽤나 오랜만인 것이었다. 그렇게 쉬는 나날 속에서도, 줄어가는 통장 잔고를 보면서도 마음 한 켠으로 불안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생각이 분수처럼 솟아오르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서른 살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크게 느낀 것 중 하나는 나라는 사람의 인생에서 아직까지 '재물운'은 없었지만 대신 '인복' 하나로 험난한 길들을 걸어올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현실의 상황과 내 자신을 저울질 하며 호주에서의 일을 그만 두려는 순간마다 사람들은 나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보내주었고, 따뜻한 밥 한끼를 건냈고, 그들의 체온을 나눠주었다. 그래서 나는 4년이 넘는 시간동안 나의 걸음을 멈추지 않고 걸어왔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는 한 가지 이유가 아닌 꽤나 여러가지의 이유로 4년간의 시간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나 자신조차도 계획하지 않은 한국에서의 시간들을 꾸역꾸역 견뎌내면서도 마음 한 켠에 그 곳의 그리움을 쌓아두었던 나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내가 언젠가 꼭 하고 말거라고 이야기하고 다녔던 바로 그런 일 말이다. 촬영이라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신경쓸 일이 많고 정신없는 작업이지만 사실 나는 그런 일들을 하며 쾌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언젠가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내 자신에게 했던 다짐을 떠올렸다. 45km를 새벽 6시부터 걸어내고 있던 나에게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 생각이었다.
'몸이 힘들어도 마음이 풍족하고 행복해지는 일을 하자.
발톱이 빠질 것 같은 지금 이 순간, 걸음을 걸어내고 있는 내가 무척이나 행복한 것처럼'
언젠가 샤크베이를 여행하며 모닥불을 함께 쬐던 친구가 전해준 말처럼 'Karma(좋은 일을 하게 되면 그 일이 다시 돌고 돌아 나에게 오게 된다는 순리)'라는 것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고 나는 무언가에 이끌린 듯 기회의 티켓을 쥐고 8개월 만에 다시 13시간의 장거리 비행을 거쳐 그 곳에 닿았다. 나는 이성적인 판단이 아닌 나의 온전한 직감에 의해 그 모든 것들을 결정하고 말았지만 사실 그 모든 결정의 바탕에는 '과연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내가 10년 후에 후회를 할 것인가?'라는 물음이 언제나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의 아주 가까운 사람만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서른이라는 나이에 정착이 아닌 한 때의 반짝임을 선택한 나를 보며 사람들은 철없음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그 일을 하면서 반짝거릴 내 모습이 너무도 그리웠던 모양이다.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무언가를 마주한 사람처럼 다시금 사람들 앞에 서게 되자 나는 그제서야 제자리를 찾은 듯 보이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를 그 누구보다 자신있게 설명하고, 내가 좋아하는 장소들을 함께 나누고 나를 일깨워준 모든 순간들을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것은 얼마나 풍부해지는 일일까.
한 달 남짓의 프로젝트가 끝나고 귀국을 했다.
꽤 많이 그을렸고, 몸은 볼품 없어졌고, 통장도 여전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전과 다른 눈빛을 가지고 돌아왔다는 점에서 나는 내 자신에게 박수를 보냈다.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것과 그 일을 후회없이 할 수 있는 삶을 살아내는 용기가 나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앞으로의 걸음도 조금 더 멀리 내딛을 수 있지 않을까. 서른의 나는 여전히 방황하고 있지만 적어도 후회는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