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바꾸어 놓은 일
Sanfrancisco
해외에서 오랜 생활을 하던 나에게는 조금 특별한 능력이 있다. 그 것은 바로 제 3자의 시선으로 한국을 바라보는 일. 6년이 넘는 해외 생활을 하며 일 년 중 짧게는 한 두달, 길게는 서너달을 한국에서 머물곤 했던 나에게는 한국도, 내가 지내오던 외국의 그 어떤 도시도 익숙한 공간은 아니었다. 언제든 떠나야 한다는 마음에 그 어느 곳에서든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시선보다는 여행자로서의 마음이 두텁게 쌓여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하자면 서른이 되어 본격적으로 시작한 서울 생활에서 나는 주변을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를테면 지하철이나 카페 등에서 같은 공간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풍경을 관찰하는 일이 그 것인데 그 것은 꽤나 흥미로운 일이다.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우연처럼 한 공간에 모여 각기 다른 목적지로 향하는 일 자체가 무척이나 신기한 일이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화장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심지어 레포트를 쓰고 있는 사람을 볼 때면 내 레이더는 언제나 안 그런척 무심하게 심지를 세우곤 한다. 특히나 나의 흥미를 끄는 사람은 독서를 하는 사람들인데 그들이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이 너무나 궁금해서 나는 그 제목을 알아차리기 위해 노력하거나, 내가 이미 읽은 책이라면 그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의 생각을 조심스레 유추해보기도 한다. 행여라도 지하철에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통해 좋은 책을 알게 되면 나는 다른 이의 서재를 통해 나의 서재를 채워가는 작은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계절이 정반대인 호주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나의 가슴을 채워준 것은 3년 만에 맞은 하얀 첫 눈이었다. 눈이라곤 구경도 할 수 없는 서호주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한 겨울에 대한 낭만을 쌓아오던 나에게 서울의 첫 모습은 꽤나 인상적인 모습으로 기억되었고, 인생에서 그렇게 많은 오뎅과 오뎅 국물을 마신 것도 아마 처음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떠돌이 생활이 너무나 익숙해져 따뜻한 보금자리를 찾아 헤매이는 것이 무척이나 서러워 무거운 캐리어를 끌며 눈물을 뜨겁게 참기도 했고, 익숙해질만 하면 몇 번이고 캐리어를 끌고 떠나는 일을 하는 직업을 한 때는 무척이나 절망적으로 받아들였지만 그 것은 어쩌면 일상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갖게 하는 숙명이었으리라 생각하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서른이라는 것은 그렇게 나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는 나이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났다.
여행은 그렇게 조금씩 나를 바꿔놓고 있었다. 삶에 대한 시선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배워온 작은 행동들은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었다. 지하철이나 그 어딘가에서 외국인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눈인사를 나누거나 버스를 탈 때 인사를 나누는 일은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내 삶의 작은 부분이 되었다. 사실 사람이 행복해지는데는 크고 거창한 것이 필요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찰나의 것이라도 실천하며 사는 것이 함께 행복해지는 일이라는 것을 믿고 있기에, 언젠가 지쳐 있는 나에게 누군가가 따스한 시선과 인사를 건냈을 때 마음에 잔잔하게 퍼지던 그 감동의 물결을 잊을 수 없기에 나는 그 때의 마음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여행을 떠나야하는 이유는 무척이나 많다. 삶에 지친 마음에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친구들과 잔잔한 추억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이기도 하지만 때론 일상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한 프레임을 가지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아마 다시금 마음이 일상에 젖어드는 때가 오면 나는 다시 배낭을 꾸릴 준비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