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전부라 생각했던 것을 내려놓는 용기

괜찮아요, 결국 그 것이 당신의 길이라면 언젠가는 돌아가게 될테니까요

by Je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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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나에게 너무 오랜 시간을 그 곳에 있었다고 했고, 또 다른 이는 줄을 잘 못 선 것이라 했고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내게 가진 것이 많아 서러운 것이라 했다.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때론 얼마나 고통스러운 고독인지는 그 길을 묵묵히 걸어본 사람만이 아는 감정인지라 나는 섣불리 그 감정들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대지에서 담아낸 사진이나 글들을 아주 가끔 야금야금 꺼내었을 뿐 나는 그들을 활용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어쩌면 나의 떳떳하지 못한 마음이 그 신성하고도 아름다운 장소에 대한 모욕일거라 생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일을 하면서 몇 년 동안 쌓인 서러운 감정들이 조금씩 응어리가 되었을 때 그 응어리들은 알지도 못하는 새 나를 잠식해가고 있었다.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이야기하는 시를 읽고서 나는 소리를 내어 울었다. 나는 떠나야 하는 사람이었고 이미 그랬어야 했지만 너무나 오랜 시간을 그저 흘려보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로 짜맞춘 퍼즐처럼 꾸역꾸역 서울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가 우연한 기회로 다시 그 일에 잠시 머물 수 있었던 나는 사람들의 말처럼 내가 과연 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그 곳에서 일을 한 것인지에 대해 이제서야 제 3자의 시선으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너를 위해' 라는 포장된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 일이 마지막 지푸라기 인 것처럼 잡고 있었던 나의 아집이었고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내 목소리를 내면 더 이상 그 일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인간적인 예우를 받지 못하며 5년 이란 시간을 그 곳에서 보냈다. 그 분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인간적인 예우였을지도 모르지만 인간에 대한 '정'을 운운하며 직원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지 않으며 살아가도록 한 그에게 실오라기만큼의 죄책감은 있었던 것일까를 생각할 수 밖에 없을만큼 나는 점점 사람에 의해 잠식 당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배고파야한다는 생각이 당연해졌다. 이따금 이 일이 과연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지만 뒤늦은 질문을 던지기에 나는 너무 멀리 와있는 사람이었으니 어쩌면 돌아갈 용기가 없는 것이라고 표현하는게 맞는 것일지도 몰랐다. 전화기 너머로 나에게 우스갯소리로 이야기를 건내는 엄마의 말처럼 나는 돈다운 돈을 제대로 벌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으니 이렇게 서른이 저물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얼마나 처절한 일이었던 것일까. 사람들은 언제나 떠날 수 있는 나의 자유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가난한 여행자의 시계는 언제나 떠남은 허락했지만 주머니 속의 먼지는 그 누구도 알 수가 없었고 그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나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자격지심을 안고 꽤나 오래 살아왔다.



가난도 익숙해지는 것이라 나는 그렇게 가끔 가지게 되는 책 한권, 옷 한벌이 그렇게 소중할 수 없었다. 사람을 만나 나누는 커피 한잔, 밥 한끼가 부담스러워 혼자가 되었던 순간이 결국은 나를 달리게 만들었고 그 시간동안 나는 스스로의 고독을 감성과 글로 풀어낼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그렇게 성숙해지는 시간을 견뎌냈다. 그래도 그 순간들을 하나 둘 내려놓으니 그래도 마음 한 켠에 크고 작은 추억과 함께 인간으로써의 성숙해진 내 모습이 보였다. 그동안 나를 만나왔던 사람들이 뒤늦게 사회의 반열에 발을 내딛은 나를 일으켜 주었고 진심 어린 체온을 건냈다. 나는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호주에서 돌아와 몇 개월의 시간이 흐르는동안 고달팠던 시간이 잠시라도 흐르면 쉽게 잊혀질까 초조함에 선잠을 잤던 나는, 일을 그만두고서야 비로소 원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내가 그리도 하고 싶어하던 프로그램의 제의가 들어오자 가장 먼저 나를 떠올렸던 회사는 결국 나의 역량을 인정해 프리랜서로써 나를 불렀다. 언젠가 다시 돌아가겠다고 다짐하고서 반 년만의 일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걸 내려놓고서야 비로소 그토록 원하던 기회가 찾아왔고 나는 언제나 꿈에 그리던 '꽃보다 청춘'의 메인 오퍼레이터가 되어있었다.



정말 간절했던 일이라면, 기회는 어떤 모습으로든 찾아오는 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그 일에 대한 아쉬움없이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드디어 자유로워질 수 있었고 그 곳에서의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이제서야 글로 담아낼 수 있게 되었다. 비워야 비로소 채워진다는 것은, 앞으로의 나에게도 그리고 억척같은 삶을 살아내는 미래의 나에게도 너무나 필요한 말이었다. 용기 있게 모든 것들을 내려놓는 연습은 다시 먼 길을 가기 위해, 비척거리며 길을 걷지 않기 위해 너무도 필요한 일이라는 걸. 마침내 나는 오늘도 소중했던 무언가를 내려놓는 누군가를 진심어린 마음으로 응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거차를 떠나며 나는 이상한 삶의 원기를 느꼈다. 밀려오는 파도의 물살마다 뜨겁게 새겨지는 햇살들. 불기둥처럼 내 가슴속으로 밀려오는 그 햇살들의 광휘 속에서 나는 다시 내가 써야할 시의 체온을 느꼈고, 기거이 세상의 톱니바퀴 속으로 다시 맞물려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 포구기행 - 곽재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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