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사람 컴플렉스 벗어나기
나는 말 그대로 '착한 사람 컴플렉스'를 앓고 있는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거절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 행여나 내가 했던 거절이 누군가에게 싫은 이야기를 들을까봐 전전긍긍하던 사람 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지만 사실 나는 길을 걸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아니 애초에 그 목적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몰랐다. '나를 찾는다'는 남들도 다 가지고 있는 목적이 그 길을 걷는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길 위에서 만난 할머님이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 70살이 다 된 본인도 자신을 찾기 위해 길을 걷고 있는데 고작 20여 년을 살아온 내가 벌써 답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 아니겠느냐고 말이다. 맞는 말씀을 하셨다 할머님은. 사실 나는 그 길을 다 걷고 나서야 이 세상에는 '답 다운 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나는 그 한 문장의 진실을 깨닫기 위해 800km를 두 다리로 힘겹게 걸어낸 것인지 몰랐다. 나는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고서야 깨달음을 얻는 그야말로 행동파였으니 말이다.
어쩌면 내가 서호주라는 곳에서 오랫동안 생활을 해오며 옳지 못한 대우를 받은 것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나의 권리를 정당하게 되찾지 못한 것은 착한 사람 컴플렉스에 의한 일은 아니었을까 이제서야 생각해본다. 그 당시 후임으로 들어왔던 누군가들을 나는 제대로 책임지지 못했다. 사실 그들의 월급을 걱정하며 내 월급은 받지 못하는 신세였고 내 한 몸 바쳐 아르바이트를 하고 일을 가르치고 쉴새없이 일을 했지만 그것은 내 마음이 편하자고 한 일이었지 몸이 편한 일은 아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나를 잠식시키는 일이었다. 내가 그들을 챙기는 사이 회사는 본인의 몫을 챙겼지, 일개 직원의 희생 따위는 달콤한 말로 모두 덮어버렸을 뿐이었다. 마치 그러지 않으면 착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무척이나 다행이게도 오랫동안 일과 내 자신을 찾는 일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던 내 곁에는 어느 순간 좋은 사람이 나타났고 그는 모든 상황들을 제3자의 시선에서 지켜보며 결국 내가 나다울 수 있고 자존감을 키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나를 인도했다. 일과 사랑을 선택하라는 그의 가혹한 선택지 앞에서 내가 사랑을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랑과 함께 내 자신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해오던 일이라는 것은 분명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 볼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지만 번듯한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니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은 참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진정한 나로써 살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욕을 듣다보면 욕에 점차 익숙해져가는 나를 발견했다. 그 속에서도 많은 것들을 감내하고 버텨야 예쁜 꽃을 피울 수 있는 사람이 된다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엇나가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았던 시간이었다. 내 몫을 포기하고서라도 다른 사람들이 괜찮다면 된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착한 사람 컴플렉스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는 결국 본인이 먹고 싶은 것들을 어떻게서든 먹고 본인의 카메라 장비들을 사는 그러고서는 모두의 이익인 것처럼 이야기를 해대는 사람이었으니까. 내가 떠나고서 완전히 돌아섰던 사람의 차가운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상대의 그 어떤 이야기도 모른채 막무가내로 험담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모두들 저마다의 색안경을 끼고 상황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착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타인에게 나쁜 사람이 될까봐 자신의 소리를 내지 못하는 벙어리가 되는 것이라는 걸 나는 깨달았다. 그렇다고 해서 착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면서, 결국은 마음 한 켠에 미워하는 마음을 가득 쌓아두다 이따금 터져버리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거면서 말이다.
나는 더 이상 착한 사람으로 살지 않기로 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생각했을 때 당당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우선 순위에 내 자신이 제일 먼저 올랐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갔지만 그렇다고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삶의 방향과 철학이 분명하다면 본인의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것으로도 좋은 사람이 되는 것임을 서른이 되고서야 알았다. 착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좋은 사람이 되면 되고 더 나아가 그 누구에게든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면 한결 가벼워지는 마음으로 살 수 있다. 아마 앞으로 내 삶의 방향은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