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더라구요,
자존감은 마치 들쭉날쭉 거리는 기분처럼 이리저리 팔락거리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한없이 나락으로 빠져들었던 시기에는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고 어쩌면 그런 시간들이 더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시간으로 향하도록 나를 이끌며 꽤 오랫동안 그 곳에서 머물러야만 했다. 오래라면 오래, 깊다면 깊이 그런 시간들을 보내오면서 깨달은 몇 가지 사실들을 이 곳에 남겨둠으로서 다음의 침체기를 어렵지 않게 빠져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글을 쓰게 된 첫번째 이유이며 두 번째 이유는 나의 소중한 사람들 또한 그 시간들을 그리 오래 견디지 않도록 응원을 보내고 싶었음이 그 것이었다.
1. 나쁜 일들을 이으며 하나의 프레임으로 만들지 말 것
안 좋은 일들은 연달아 일어나는 것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아있는 걸 보면 꽤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내가 이 말을 써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어떤 하나의 안 좋았던 일을 단지 그 사건 하나로 인지하지 않고 그 모든 힘듦을 이으며 스스로를 운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일들을 가끔 즐기는 것 같았다. 그 것을 단순히 즐길 수만 있다면 무척이나 다행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감정과의 밀당에 익숙하지 않기에 한번 빠져버린 우울한 감정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건 물론 나 역시도 마찬가지 였다. 그런 때일수록 SNS상에 보여지는 다른 사람들의 행복한 프레임은 자신도 모르게 나의 삶과 타인의 삶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더욱 불행한 사람으로 비춰지도록 하기에 '하나'의 힘든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면 조용히 외부로의 창을 닫은채 저마다의 방법(잠자기, 맛있는 음식 먹기, 책읽기, 운동하기, 그림그리기 등)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결국 나의 우울하고 슬픈, 힘든 감정은 가족조차도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 저마다의 방법이라는 것은 여러가지를 시도하며 깨달을 수 있는 노하우인데 주변에 이런 상황들을 보다 잘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의 방법들을 따라서 시도해보는 것도 좋다. 나의 경우에는 매일 아침 달리기를 하며 삶이 달라졌다고 하셨던 사진 작가님과 3번의 여행을 하면서 함께 달리기를 시작하게 되었고 결국엔 달리기를 통해 스스로의 삶에 동기부여를 하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 이따금 그 방법을 잊게 될때면 '무작정+억지로' 라는 두 테마를 가지고 운동화를 신는다. 땀을 낸다는 것은 아드레날린 분비를 돕기 때문에 그렇게 흠뻑 땀을 내고 나면 나를 우울감에 빠지게 만들었던 일들을 제 3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2. SNS는 잠시 접어둘 것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던 이야기지만 자존감이 낮아진 상태에서 타인의 '행복한 순간'이 담긴 사진첩을 보며 스스로를 슬픔에 빠져들도록 방치해 둘 필요는 없다. 누구나 다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의 기록을 위해 혹은 그런 순간을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있기에 많은 이들이 sns를 이용하지만 굳이 개개인의 슬픔과 아픔을 올리며 그 힘든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부쩍 스스로의 삶에 회의감이 든다면, 밖이 잘 보이는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따뜻한 카페 모카를 한 잔 시켜 곁에 두고 창 밖을 핸드폰 카메라에 담아보길 추천한다. 한참을 창 밖을 바라보다보면 카메라 안에 보이는 장면보다 카메라가 잡지 못한 장면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그 카메라 앵글 밖의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표정과 길 거리 위에서 추운 바람을 맞아가며 장사를 하고 있는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아버지를 보게 된다면 그제서야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조금의 위안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나에게만 이런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다른 사람의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아이콘은 잠시 'Do not' 폴더에 넣어두는 것을 추천한다.
3. 선택을 남에게 맡기지 말 것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선택에 무한한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 중 한명이었다. 선택의 데드라인까지 고민을 미루고 미뤄두다 결국 결정을 하지 못하는 일들은 자연스레 선택을 하지 않음으로서 선택이 되는 결과들을 만들어온 것이다. 그 모든 일들은 시간이 지나고 나니 스스로가 주체적으로 결정하지 않은 일들을 책임져야하는 상황들을 만들어냈고 그제서야 나는 뒤늦게 모든 상황들의 책임에 엉켜 힘들어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상황들이 몇 번, 몇 년씩 지속되자 나의 자존감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고 결국은 이 모든 상황들을 만들어가는 스스로에 대한 원망과 상황을 회피하고 싶어하는 감정과 마주하도록 나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선택에 데드라인을 정하자 어차피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을 하며 조금 덜 후회하게 될 최상의 상황을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주체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스스로에게 결정과 책임을 지는 연습을 시켜줄 필요가 있다. 적어도 내가 무언가를 선택하게 된다면 타인을 탓하게 되지 않으며 모든 선택에 조금 더 신중해지게 되며 내가 선택한 모든 상황들을 조금 더 자신있게 마주할 수 있다.
4. 긍정적인 사람들을 많이 만날 것
어느 순간부터 나는 술자리에서 혹은 타인과의 만남에서 내가 마주한 안좋은 일들을 줄줄이 나열하며 상황을 탓하며 불쌍하고 안타까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다녔던 회사에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며 경제난을 겪었던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자꾸만 움츠러 들게 만들었고 나 역시도 그런 상황에 어느새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일하던 누군가 혹은 알고 지내던 누군가의 입에서 들려오는 불평과 불만의 소리를 끊임없이 들으며 그제서야 비로소 그 사람들을 통해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쏟아내는 힘들다는 말이 혹시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함께 힘든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이 모든 시간들은 내가 누군가에게 불쌍해보이기 위한 것인가, 굳이 힘든 이야기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타인에게 위로를 받기 위함이겠지만 사실 그 누구도 내가 원하는 만큼의 위로를 줄 수 없단 것을 오랜 시간을 보내다보면 알게 된다. 그 모든 감정은 나의 것이고 타인은 그 모든 상황과 나의 과정 그리고 그 모든 것들 끝에 내가 느끼게 된 기분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도, 위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도 밝고 긍정적인 사람과의 만남 후 집으로 돌아오는 일과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는 누군가와의 만남 후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달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행복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척을 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힘듦을 마음 깊이 넣어두고 혼자 곪아가도록 내버려 두라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내 치부까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과의 깊은 이야기를 통해 그런 일들은 하나의 사건으로만(일련의 불행덩어리가 아니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으며 그 이야기들의 마무리는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 들어간 다짐이길 바라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야 지금의 감정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 모든 상황들을 정리조차 하지 않은 채 떠나는 여행이라면 상황에 대한 도피 밖에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다시 현재로 돌아온 당신에게 그 풀지 않은 숙제는 언젠가는 또 다시 안겨지게 된다. 사람을 만나기조차 힘든 상황이라면 충분히 혼자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다. 아마 당신이 혼자인 시간을 보내고 연락을 했을 때 당신의 사람들은 아마 당신에게 '커피 한잔'을 하자며 기분 좋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당신을 기다려 줄테니 말이다. 그런 사람들을 곁에 두기 위해서는 당신 역시도 씩씩하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걸, 행복과 자존이 높은 사람 곁에는 그런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매사에 즐겁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사람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으며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그런 사람에게 끌리기 마련이다. 인간은 도구를 만들어내기 전부터 매일 하루하루의 삶을 걱정하며 생존에 대해 걱정을 하는 본능이 생겼다는 글을 언젠가 읽은 적이 있다. 그렇기에 본능을 억누르며 덜 걱정하고 주어진 상황 속에서 행복해지는 것은 노력이자 연습이 되어야 하는 것이며 하루를 즐겁게 살기 위한 방법이자 스스로의 자존감을 찾아가는 일인 것이다.
삶은 이렇게 다시 시작된다.
오늘이 그날이야.
어떤 상황에서도 너는 다시 시작할 수 있고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우리는 행복할 권리가 있어.
그걸 잊지 마라.
네 청춘을 축복하고 싶다.
고통마저 눈부실 수 있는 이 청춘의 봄날을!
딸에게 주는 레시피 / 공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