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떠나는 일
비행기를 타는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풍경을 쏟아내는 장소에 설 수 있다는 사실이 언제나 나를 숨막히게 했다.어쩌면 그것이 내가 몇 번이고 몸 채만한 배낭을 꾸린 이유였고 글을 쓰게 된 시발점이었다. 공항이라는 장소를 떠올리면 언제나 심장이 뛰는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던 기억은 공항과 관련된 일과 나를 자연히 연결시켰다.
처음 떠난 그 어느 여행지에서 나는 처음으로 그 누구의 시선도 느끼지 못한 채 생전 처음 걸어보는 거리를 걸었다. 마치 그 세계 속에서 나는 아무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걷고 있는 길만이 진실인듯 보였다. 그저 비행기를 탔을 뿐인데 내가 그 어떤 공간을 걸으면서도 그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않고 걸음을 옮길 수 있다는 것이 가슴 벅찼다. 배는 텅 비어있었지만 쉽게 배고프지 않았다. 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한 카페에서 쥐어준 한 잔의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버틸 수 있을만큼 나는 새로운 도시가 주는 감각에 매료되고 말았다. 그 감각이라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무뎌질 법한데 무척이나 신기하게도 그 감각은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살아 파닥거리고 있다. 이따금 살아있음에 대한 감각을 온 몸으로 느끼고 싶어질 때면 나는 몇 번이고 다른 풍경을 쏟아내던 도시의 이름을 하나씩 되뇌인다.
필라델피아, 샌프란시스코, 도버, 마이애미, 퀸즈타운, 생장드피드포르, 포르투, 페레헤, 브룸, 퍼스..
조금 더 일찍 떠나는 용기가 있었더라면, 하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 시절 내가 떠남을 행했던 그 결정들은 대단한 것이었을지도 혹은 대단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우리가 하루에도 몇 번이나 행하는 수많은 결정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결정들이 내 인생을 바꾸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어떤 결정은 인생의 항로를 바꿔버릴만큼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기도, 한 사람의 인생이 뒤흔들릴만한 경험으로 이끌기도 한다. 끝없는 소음으로 둘러쌓인 일상을 벗어나 오롯이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그 어느 외딴 목적지에서 때론 내 자신이 원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그제서야 비로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경험할 수 있기에 우리는 종종 홀로 떠나는 여행에 대한 아득한 로망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혼자하는 여행이 대부분이었던 나는, 그런 여행이 개개인의 인생에 있어 얼마나 많은 '생각할 시간'을 선물해 주는 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어쩌면 우리가 혼자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시간들은 사실 주위에서 쏟아내는 엄청난 소음과 뉴스들로 가득 메워져 있으며 온전한 선택을 하기엔 우리가 신경써야하는 시선과 상황들이 너무나도 많았던 것은 아닐까하고 말이다. 내가 했던 혹은 지금 앞두고 있는 많은 선택지들을 오롯이 나의 생각만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헷갈릴 때면 나는 그 누구도 나를 알지 못하는 작은 도시로의 여행을 떠나고 싶은 충동에 빠지고 만다. 상황을 두고 도망치는 것이 아닌, 그 모든 상황들을 온전히 바라보기 위한 시간을 위해서 말이다. 때론 너무 많은 조언과 이야기들로 인해 생각하는 법을 잃어버리고 우왕좌왕 길을 헤매는 나를 발견하지만 그 시간들 속에서도 꿋꿋하게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종종 혼자 만의 여행을 해왔기 때문이며,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삶에 대한 의미를 찾을 수 있었던 덕분이다. 나는 먼 여정을 떠나더라도 시장에 들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어느 도시에서든 이른 아침부터 삶의 모든 의미를 담은 채 씩씩하게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나는 다시 열심히 살고 싶은 욕심이 생겨난다. 결국 그들이 살아가는 일상을 내가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나 역시도 이따금 나의 일상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을 잊지 않고 해나가는 것만이 삶을 용기 있게 걸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것은 버스 제일 뒷자리에 앉아 알지 못하는 목적지로 이따금 떠나는 일이었고,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보는 약간의 용기였으며, 카페에 앉아 일상을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글을 쓰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