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인간이 성숙해져 갈 수 있었던 4년 간의 기억
처음 만났던 퍼스는 생경했다.
예상치도 못하게 브리즈번에서 퍼스로의 비행기를 타야했을 때 조금은 두려웠지만 대게는 설레였던 것 같다. 꽤나 익숙했던 도시의 이름들을 떠나 생경한 이름의 도시로 떠난다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일로의 도전을 뜻하니까 말이다. 가난한 주머니의 여행자에게 공항은 설레임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때론 잠시의 새우잠을 자는 공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퍼스에 도착한 첫 날부터 나는 날이 샐 때까지 몸을 웅크리고선 명작이라 불리는 '노팅힐'을 몇 번이고 보며 나에게도 줄리아 로버츠 같은 운명같은 일이 펼쳐지길 바랐다.
집을 구하기 전까지 머물렀던 백패커는 생각보다 쾌적하지 못해 꽤나 집을 그리워하게 만들었지만 일주일이 넘는 시간동안 발품을 열심히 판 덕분에 깨끗한 집에서 퍼스의 처음과 끝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지금껏 여행을 해왔던 그 어느 도시보다 깨끗했던 퍼스의 첫 인상. 어딜가든 가까운 곳에 공원이 있고 사람들의 얼굴엔 여유가 잔뜩 묻어났다. 눈 부실 정도로 맑은 날씨가 그들의 행복지수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1인당 GDP가 우리나라의 3배에 달하는만큼 서호주의 복지 수준은 기대 이상이었다. 매일 아침 8시면 출근을 하고 오후 3~4시가 되면 모두가 퇴근을 하는 그들의 일상은 나에게는 꽤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한국과 너무나 대조되는 환경 속에서 나는 비로소 제 3자의 시선으로 퍼스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아침 저녁으로 운동을 시작한 순간부터 하루를 부지런히 살고 있는 호주 사람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미국에서 지낼 때와는 달리 거대한 덩치의 사람들을 보는 일은 많지 않았고 사람들의 표정에는 생기가 넘쳤다. 미국에서만큼 처음 만난 누군가와 인사를 주고 받는 일은 많지 않았지만 같은 시간에 운동을 다니며 얼굴을 익힌 사람들과는 조금씩 눈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퍼스를 불친절한 도시라 말하지만 그 것은 그들의 표면만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진짜 퍼스 사람들은 친절하지 않은 듯 보이지만 가까워지는 그 순간부터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는 사람들이었다. 노동자들이 많은 도시라 조금은 거칠고 많은 것들이 느리지만 그 것들을 어쩌면 '투박한 친절'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거라 생각했다.
공원은 어딜가든 맘 먹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소득수준이 높은 도시인만큼 물가도 높아 외식을 하려면 마른 침을 한 번 즈음 삼켜야만 했다. 특히나 한국에선 어렵지 않게 사먹었던 김밥 한 줄이 그 곳에선 '스시'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꽤나 비싼 가격으로 팔리고 있었는데 그 한 줄의 스시를 사먹는 것이 그 때는 왜 그렇게 부담이 되었던 걸까. 아마도 김과 밥 그리고 아보카도 한 조각과 참치 조금의 조합이 그 가격일리가 없을 거라는 나의 의구심에서 비롯된 감정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 도시의 가장 좋은 점은 도심을 순환하는 버스를 무료로 운영한다는 것이었다. CAT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버스는 총 4개의 노선으로 퍼스 시내와 동쪽, 북쪽, 서쪽, 시내 중심을 골고루 운행하고 있었는데 씩씩한 인사 한번으로 차비를 대신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었다. 특히나 울워스(Woolworth)나 콜스(Coles)라는 대형마트에서 생필품을 대량으로 구매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그 무엇보다 고마운 다리 역할을 해준 그 버스는 퍼스의 가장 큰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처음 그 낯선 도시에 떨어졌을 때 무작정 캣버스를 타고 도심을 둘러보던 기억은 여전히 내 가슴 한 켠에 남아있는데 '낯섦'이 '익숙함'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대신해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빛의 도시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퍼스의 야경은 그 별명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찰리채플린의 유명한 대사처럼 '삶은 가까이서 바라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희극'이라는 그 말이 문득 생각날만큼 새로운 도시에서 홀로 정착해 나가는 나의 용기를 위로해주는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공원에 담요를 깔고 앉아 책을 읽거나 가벼운 간식을 즐기는 연인과 가족들을 바라보는 일은 종종 잊고 있던 '행복'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는 일이었고 삶의 만족을 위해 나는 무엇을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떠올려야만 했다. 홀로 울고 있던 내 곁에 앉아 오랫동안 나를 위로해주던 아주머님, 자전거를 타던 중 너무도 지쳐 잠시 멈춰 쉬고 있던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오던 사람들, 당신들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위해 재능기부를 하고 있는 이들과의 대화 속에서 나는 한 사람의 인간이 얼마나 성숙해질 수 있었는지를 배웠다. 그 곳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은 때론 한국의 치열한 삶에서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 곳으로 도망쳐온 것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어쩌면 행복을 추구하는 용기있는 사람들만이 비로소 그 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곳에서야 비로소 행복에 대한 정의를 써내려 갈 수 있었고 혼자만의 시간이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더 성숙한 인간이 되어가는 긍정적인 삶의 부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따금 고독이 그리워지는 순간이면 그 곳에서의 시간들이 떠오르곤 한다. 내 자신을 침착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그 감정들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그 모든 감정들을 덤덤히 바라보며 글을 써내려 갈 수 있게 되었다. 퍼스의 모든 기억들은 여전히 나에겐 그리움이자 고독이며 때때로 아픔이었으며 여전히 진행형의 무엇이고 결국에는 어른의 시간들을 써내려 갈 수 있게 하는 기록들이다.
여행을 떠나온 지 100일이 되어 간다. 여행은 불확실성과 선택이라는 위험으로 한 올 한 올 짜여 있다.
우아하게 폼을 잡으며 오만을 떨게 놔두지 않는다.
여행도, 때때로 쓰다. 여행은 ‘관념으로서의 나’를 ‘실체로서의 나’로 빚는다.
내게 속한 시간과 나를 벗어난 시간 사이를 거닐며, 나에게서 나에게로 여행 중이다.
눈물이 마려워 / 문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