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강아지를 키우는 삶에 대하여
아이를 키우며 강아지를 돌보는 삶은 그야말로 끝없이 손이 가는 일이다. 신혼부부로 살아가는 동안은 오롯이 둘만의 삶을 사느라 강아지를 돌볼 여유가 있었지만, 아이가 태어난 뒤로는 작은 생명을 돌볼 시간조차 내는 일이 쉽지 않게 된다. 삶을 잘게 쪼개어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존재들을 쉼 없이 돌보아야 하는 엄마의 삶은 선뜻 누군가에게 권할 수 없는 모습이다. 해외에서 강아지를 키우며 산다는 건 그 수고로움이 몇 배는 더 커지는 일이고 말이다.
아침 여섯 시가 되기 전,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한결같이 아침형 인간으로 살아가는 엄마의 삶. 긴 잠을 자고 일어난 강아지의 자그마한 발자국 소리가 나의 알람이 되어준 덕분이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벗어나면 강아지는 반갑게 꼬리를 흔들며 기지개를 켠다. 오늘은 늦잠을 자고 싶었는데,라고 웅얼거리다가도 동시에 떠오르는 생각은 늘 같다.
“너는 나를 믿고, 여기까지 왔지.”
신혼 1년 차였던 해, 강아지를 유난히 좋아하는 나를 보던 남편이 작고 말랑한 발바닥을 가진 강아지를 데리고 왔다. 이름은 ‘심바’. 용맹하고 씩씩하기를 바랐지만 이름과는 정 반대의 소심한 성격으로 성장했다. 대신 조용히 우리를 바라보는 눈빛은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바다를 닮았다.
언젠가부터 ‘산책’은 나에게 긍정적으로 아침을 시작하고 하루를 정리하는 의식이 되었고, 아이의 재잘거림에 지쳐있는 귀를 잠시 쉬게 하는 숨구멍이 되었다. 아침 여섯 시 산책길,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자신의 몫을 다하기 위해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을 두 눈에 담는다. 요란하지 않게 모든 소란을 품고 흘러가는 강가를 걸으며 내가 누구인지, 어디쯤 와 있는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돌아보곤 한다.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건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다. 단순하게만 바라보아도 밥을 주고, 물을 갈고, 털을 빗고, 산책을 나가야 한다. 하루도 게으름을 피울 수 없는 건 우리가 하루 세끼 밥을 챙겨 먹듯, 반려동물에게도 이런 일상이 하루의 당연한 흐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말하지 못하는 존재가 하염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을 때, 인간은 책임을 배운다. 지켜야 할 생명이 있다는 것이 때론 엄청난 짐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실은 그것이 내 삶을 지탱해 주는 가장 단단한 지지대가 되어주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도, 강아지를 키우는 일도 결국은 같은 결의 일이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울거나 짖는 이유를 몰라 당황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에는 알게 된다. 이해하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과 믿음이 있다면 엄마가 되어가는 일은 그렇게 조금씩 영글어가게 되어있다.
오늘도 나는 남편에게 아이를 맡겨두고 심바와 함께 낯선 도시의 강변을 걷는다. 바람 한 점 없는 더운 도시에서 심바는 기분 좋게 꼬리를 흔든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배경이 어디든, 나와 함께라면 다 괜찮다는 듯이. 나는 그 뒤를 따라 걷는다. 묵묵히 그리고 평범하게. 하지만 이 평범한 걸음들이 모여, 결국 한 사람의 책임 있는 삶이 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게 매일, 어른으로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