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분만은 선불, 제왕절개는 후불이라던데...
시작하는 글에서도 얘기했지만 나는 자연분만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아주 예전 SBS에서 수중분만에 대한 방송을 했는데, 그때 뮤지컬 배우 최정원 씨가 수중분만하는 것을 아주 인상깊게 보아서 나도 나중에 꼭 수중분만을 해야겠다고 그 어린 나이에도 생각을 했었다. 아주 힘들어 보이지만 자연스러운 출산의 경이로운 모습으로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정작 임신을 하고 계속 다닐 병원을 알아보게 되었을때, 너무 바쁜 회사 생활에 치여 수중분만은 찾아볼 엄두도 못 내었다. 그래서 우리 동네 근방에서 제일 유명하고 큰 병원을 큰 고민 없이 다니기로 했다. 요즘이 2000년대인가 싶을 정도로 잊을만 하면 출산으로 인한 사망 뉴스가 떴던지라, 마취과 의사가 상주하고 응급 시 바로 대응이 가능한 것도 큰 병원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열 명도 넘는 원장님들 중에 인기 있는 원장님은 대기가 워낙 길어, 나는 무언가를 기다리걸 힘들어 하는 사람이라 그냥 대기가 길지 않은 원장님으로 지정해 달라고 했다.
임신 기간 내내 그 흔한 입덧 없이 (대신 먹덧이 있어 식욕이 상당했다)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세상은 참으로 공평하다. 임신 기간이 남들에 비해 평온했던만큼 나의 고통은 출산에 몰빵되었다. 양수가 터지고, 유도 분만을 했지만 차도가 없었고, 결국 12시간 진통을 했고 그 진통은 허리로 와서 정신을 놓을 지경이었고, 그래서 자궁문이 2cm밖에 열리지 않았는데 산모가 너무 힘들어 한다고 무통주사를 맞았고, 결국 아기가 태동을 멈췄다고 담당 원장님 퇴근한 밤에 응급 제왕수술에 들어갔다. 12시간 진통에 너무 지쳐 전신 수면 마취로 수술을 했고, 중간에 비몽사몽으로 깨어나 태어난 아기를 보고 다시 정신을 잃었다. 다시 깨고 난 이후에는 마취약 덕분에 별로 힘들지도 않고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에 친구들에게 카톡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그 다음날부터 아픔이 시작되었다. 침대에서 잠깐만 움직여도 너무 아팠다. 그리고 나의 산후우울증도 폭발했다. 게다가 젖몸살도 심하게 와서 4박 5일 입원 기간 내내 항생제를 달고 살았다.
산후조리원에서 마사지를 받을 때 ‘뒤돌아 누워보세요’라고 하던 마사지 이모님의 말씀에 나는 절망적으로 ‘전 못해요’라고 엉엉 울며 대답했다. 그랬더니 다들 할 수 있다고, 다들 한다며 어찌나 따뜻하게 얘기를 해 주시던지 겨우 용기를 내 보았다. 부축을 받으며 돌아 누우려고 할때 으악!! 배에서 지옥불이 활활 타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그때의 고통은 아직도 생생할 정도다.
제왕절개의 아픔도 개인차이가 상당히 크다. 비슷한 시기에 출산한 친구는 바로 제왕절개 수술로 들어가서 나보다 훨씬 회복속도가 빨랐다. 나는 진통을 12시간 한 이후 응급 제왕이라 그런지 배가 아픈 것도 상당히 오래 갔다. 집에 돌아와 처음으로 만난 산후도우미 이모님은 삼남매를 낳고, 막내를 제왕절개로 낳았는데 30년이 지난 아직도 비가 오면 욱신거린다고 하여 나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다. 자연분만은 선불, 제왕절개는 후불이라는데 제왕절개 이건 뭐 장기 주택담보대출인가요? 30년 이후에도 아프다니요! 나를 우울하게 하려고 이모님이 그런 말씀을 하신 건 아닐텐데... 그때도 수술 통증이 심했기 때문에 산후우울증은 더욱 깊어졌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상처란 아물기 마련이고, 아픔도 옅어졌다.
난 아직 30년은 안 지났지만 이제 만 3년이 지났다. 설마했던 산후 도우미 이모님의 말씀이 요즘 곧잘 기억난다. 아직도 종종 제왕절개의 상처가 욱신거린다. 내 수술상처는 좀 특이한게 꿰메다가 마지막에 좀 과하게 땡겨 마무리를 했는지 상처 끝의 뱃살이 폭 들어가 있다. 바느질 할때 마지막에 마무리 한다고 실을 잡아당기면 천이 구겨지듯이 말이다. 특히 그 푹 파인 부분이 콕콕 하고 곧잘 아프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도 가끔 수술 부위가 꽤나 아프게 쿡쿡 쑤셔서 키보드 치던 손을 멈추고 배를 짚을 때도 있다.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은 한 친구가 둘째를 포기한 이유는 짼 데 또 째는게 너무 싫다는 거였다. 처음엔 웃었는데, 아직도 욱신거리는 내 상처를 생각하면 나도 소름이 돋는다. "짼 데 또 째는 선택을 자발적으로 하는 건 너무 바보 같은거 아니야?"라는 친구의 말이 참으로 냉정하다 싶었는데 이제 와 보니 냉정한 게 아니라 생존 본능은 아니었을까. 제왕절개로 아들 둘을 낳은 내 친구는 둘째 출산 후 후처치 수술이 너무 길어져 가족들이 걱정을 많이 했었단다. 알고 보니, 첫째 때 제왕절개 수술 이후 자궁과 방광이 유착이 심해서 둘째 수술하면서 유착 부위을 떼어내는 후처치 수술을 했다고 한다. 아... 나의 자궁과 방광은 안녕하신걸까. 둘째를 제왕절개로 낳아보아야 안녕하신지 아는걸까.
“그래도 제왕절개 후 3년이 지나면 자연분만 고려도 가능하다던데...” 라고 했더니 또 다른 한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 "위도 트고 아래도 트는 건 너무 바보 같은거 아니야?" 그래, 나 바보다. 나중에 찾아보니 응급 제왕절개 수술은 그 3년 조건에도 제외라더라. 자연분만은 내 인생에서 더 이상 없는 거구나. 나도 수박을 낳는 기분이 뭔지 느껴보고 싶었는데... 그래도 괜찮다. 이제 그렇게 마음이 슬프지는 않다. 대신 수술 부위의 아픔만이 남아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