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무기력'이 있었다
이상했다.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자도 계속 피곤하고, 틈만 나면 자고 싶었다. 국내에도 첫 코로나 환자 발생 6개월 만에 우리 회사에도 코로나 감염자가 생겼고, 회사 전체가 2주 간의 전체 재택 근무 모드에 돌입했다. IT 회사라 근무시간은 10시 출근 - 7시 퇴근이었는데, 나는 전날 밤 10시에 잠들어서도 그 다음날 근무 시작시간인 10시에도 제대로 일어나지를 못했다. 몸이 천근만근이니 매사 무기력했다.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자는데도 이렇게 피곤할 수가 있나. 회사일도 육아도 제대로 못하고 물 먹은 솜마냥 늘어져 있는 내 모습을 남편은 그저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렇지만 평일에는 우리집에서 같이 살면서 아이를 봐주는 친정엄마는사위 보기가 민망했나 보다. 어느 날 아침, 근무 시작 시간을 5분 남기고 푸석한 얼굴로 겨우 일어난 나에게 친정엄마는 결국 모진 소리를 건넸다. 나는 너무 힘든데... 가족조차 나를 제대로 이해해 주지 못하냐고 나는 아침부터 악다구니를 썼다.
그날 아침 이후, 운동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을 잠깐 했다. 20대, 30대에는 몸매나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한다면 중년부터는 생존을 위해 운동을 한다는 말이 실감이 되었다. 그렇지만 코로나 발생 1년도 채 안되었던 시절이라 헬스장이나 요가학원을 갈 수는 없었다. 나는 이제 갓 돌이 지난 애기를 키우고 있지 않은가. 더욱 더 코로나에 걸리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니, 아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낫겠지, 그 어떤 목표와 꿈도 없이 시간이 그저 하루하루가 지나가기만을 바랬다. 한때 열정 가득했던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건가. 내 의지는 겨우 이것밖에 되지 않는가. 늪에 빠진 것 같은 나날들이었다.
복직 후, 9개월이 지난 시점에 건강검진을 받았다. 건강검진 결과를 받고 그제서야 알았다. 나의 끝도 없는 피로함의 원인은 갑상선 호르몬 때문이었다. 나의 갑상선 자극호르몬(TSH) 수치가 정상 범위를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다.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었다. 수치가 4 이하로 나타나야 하는데, 나의 수치는 33이었다. 출산 이후 갑상선 염증이 생길 수도 있는데, 복직 이후 큰 스트레스를 받은 것과 겹쳐 갑상선 호르몬 수치가 급격히 안 좋아진 것 같았다. 갑상선 기능 저하증의 대표적인 증상이 피로와 무기력이다. 몇년 전, 막내 동생이 공황장애로 고생할때 나는 매몰차게 그건 너의 의지가 부족해서라고 운동을 하라고 다그친 적이 있었다. 이제서야 의지만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무기력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열심히 살고 싶다, 이런 삶을 탈피하고 싶다, 운동을 해야겠다와 같은 의지조차 전혀 들지 않는 무기력함이었다. 그간 나의 편협한 생각을 반성했다. 출산 이전의 내 삶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던 ‘무기력’이라는 단어의 진짜 의미를 출산 이후의 세상에서 깨달은 것이다. 동생에게 카톡을 보냈다. 그때 너무 미안했다고. 내가 경험하지 못한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우리는 제대로 판단할 수도, 똑같이 공감할 수도 없다. 내가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는.
집안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회사에서도 병든 닭마냥 골골거렸던 내 모습이 하염없이 부끄러웠는데 ‘갑상선 저하증’은 좋은 핑곗거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팀장님과 일주일에 한번씩 하는 1:1 미팅에서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백했다.
“팀장님, 제가요... 갑상선수치가 엄청 높게 나와서 씬지록신이라는 약도 75밀리그램짜리를 먹어요...”
“아~ 그래요? 갑상선 저하에요? 항진증이에요? 저도 십년 넘게 씬지로이드를 먹고 있어요. 워킹맘이 쉽지 않죠...”
우리 팀장님은 무려 첫째 아들이 고3 수험생인 워킹맘이었다. 3살 터울의 둘째 딸도 있다. 근 20년을 워킹맘으로 살아오신 분, 아기가 어릴 적엔 시댁살이도 몇년 간 하신 워킹맘의 대선배였다. 시댁살이를 할때는 퇴근 후 시댁 현관문 손잡이를 돌리기까지도 몇분을 망설였던 적도 있다고 했다.
“저는 갑상선 저하증과 갑상선 항진증을 왔다갔다 해요.”
팀장님은 별 거 아니라는 듯 싱긋 웃으며 말했다. 팀장님은 아이가 어린 지금이 제일 힘든 때라고 나를 다독여 주셨다. 생각보다 갑상선 저하증 또는 항진증은 주변에서 매우 흔했다.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친구 엄마는 첫째를 낳고 갑상선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고등학교 친구는 임신하면서 갑상선 수치가 급격히 안 좋아져서 약을 먹기 시작했다. 대학교 친구는 남편이 장기 출장을 가서 3개월 간 두아이를 독박육아 하는 중이었는데, 무기력과 더불어 화가 많아져서 병원에 갔더니 갑상선 항진증 판정을 받았단다. 전직장 남자 회사 동료는 최근에 갑상선 암 수술을 받았다고 근황을 알려왔다. 우리팀 신입사원은 28살이지만 중학교 때 갑상선 저하증 판정을 받아 십 수년째 약을 먹는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갑상선 저하증’이라는 병명을 얻자, 나는 조금씩 무기력에서 탈출할 힘을 얻었다. 이 무기력함이 나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호르몬 문제였다고 하니 나를 더 이상 자책하지 않아도 되었다. 타인의 평가에 예민한 유리 멘탈인 나는 무기력 그 자체보다는 ‘나는 의지박약의 쭈그리입니다’라는 것이 스스로의 평가가 힘들었던 것이다.
씬지록신이라는 호르몬 약을 복용하고, 의지박약이라는 자책을 멈추면서 나의 갑상선 호르몬 수치는 조금씩 나아졌다. 약 복용 후 반 년 이후, TSH 수치는 여전히 정상 범위를 꽤나 벗어났지만 절반으로 떨어졌다. 일년 뒤에는 거의 정상 범위 가까이 낮아졌다. 나의 체력과 삶에 대한 의지는 확실히 수치와 반비례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운동을 하기도 하고, 아이가 늦게 잠든 날이더라도 밤에는 육아일기 블로그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회사에서의 조직 개편 이후, 다시 회사일로 큰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자 나의 체력과 의지는 파도에 휩쓸리는 모래성처럼 너무 쉽게 무너졌다. 다시 호르몬 수치에 문제가 있는건가 싶어 부랴부랴 병원을 찾았다. 일주일 뒤 나온 피검사 결과는 나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이제는 온전한 정상 수치로 돌아왔다는거다. 무려 4개월 간 약을 먹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약을 먹지 않았다는 나의 대답에 의사 선생님은 놀라면서 이제 1년 뒤에 보아도 되겠다고 말했다. 그럼 저는 왜 피곤한거죠...?
갑상선 수치는 정상으로 돌아왔다지만 워킹맘의 일상은 여전히 피곤함의 연속이다. 이제는 진짜 나의 의지를 다독여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워킹맘 1년차 시절을 생각하면 워킹맘 3년차 지금은 아무래도 양반이다. 아이는 감기도 약 없이 곧잘 이겨낼 정도로 더욱 튼튼해졌고, 말이 트이면서 이제 엄마 아빠와 의사소통도 잘 할 수 있게 되었다. 종종 유투브도 보여주면서, 아이 혼자서 즐겁게 노는 시간도 길어졌다. 아이는 이렇게 매일 성장하는데, 나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여유가 생기면 운동은 커녕 휴대폰만 만지작 거리면서 ‘워킹맘은 시간이 너무 없어’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이번에는 어쩔 수 없는 무기력이 아니다. 게으름이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내일을 보내고 싶은 ‘의지’만큼은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갑상선 호르몬 핑계는 이제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