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출산 전 누구보다 열심히 회사를 다녔고 욕망도 열정도 많았던 나였다. 나름 좋은 대학과 유명한 대기업들을 다녔다. 왜 이리 자신감이 없냐는 얘기를 주변 지인이나 회사 동료들에게 곧잘 들을 정도로 소심하고 나에 대한 믿음이 형편없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라는 사람이 학창시절과 사회생활 동안 이루어 낸 성과들을 생각하며 속으로 우쭐대기도 했다. 수년 전 사주팔자를 보았을 때 서른여덟이면 대운이 시작되기 때문에 클래쓰가 다른 삶을 살 것이라는 사주쟁이의 말을 막연하게 믿었다. 나는 잘 될거라고, 나는 성공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복직 이후에는 내 삶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건강을 많이 해쳤다. 임신 5개월 때 유럽 출장을 다녀올 정도로 건강했지만, 양수가 터져 급히 입원을 하고 유도분만을 24시간 내내 시도하다가 실패했다. 결국 아이의 태동이 멈췄다는 말에 응급 제왕수술으로 출산을 한 이후 나의 몸 상태는 더 이상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자연분만에 대한 나름 환상이 있었기에 제왕절개로 수술을 했다는 사실에 출산 후 4박 5일 입원 기간 내내 우울함에 눈물을 쏟아내어 퉁퉁 부은 눈으로 퇴원을 했다. 산후조리원의 마사지 이모님이 나를 ‘관심병사’로 부를 정도로 나는 출산 이후 심신이 피폐해져 있었다. 이쁜 아가를 품안에 안고서도 수술한 배가 너무 아프고 자연분만이라는 아름다운(?)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마취약에 취해 비몽사몽 아이를 만났다는 사실에 그저 눈물을 펑펑 쏟았다.
새로운 회사의 면접 과정에서 임신 사실을 알았고, 입사 후 7개월만에 출산휴가를 들어가게 된 게 너무나도 회사와 나를 뽑아준 임원분께 미안했기에 출산휴가 3개월, 육아휴직 6개월 도합 9개월 만에 복직을 결정했다. (아.. 알아서 기는 소심한 현대판 노예의 DNA여...) 돌도 안된 아가를 떼어놓고 복직하는게 너무 걱정이 되어 지방에 사시는 친정 엄마에게 울며 불며 사정하여 애기를 봐달라고 했다. 친손주도 아닌, 외손주를 어찌 서울까지 가서 보냐며 냉정하게 거절하던 친정 엄마도 이 사랑스러운 외손주를 몇 번 보더니 결국 나의 간청을 받아주셨다. 딸이 안쓰러운 마음도 있었겠지만, 돌도 안된 외손주가 어린이집 가 있을 생각을 하니 소녀처럼 마음 여린 우리 친정엄마도 그 마음을 어쩌지 못했을 것 같다. 매주 편도 2시간 반을 왔다 갔다 하면서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동네에서 외손주를 키운 세월이 2년이었다. 그 2년 동안의 감사함을 어찌 표현하나 싶지만, 그 2년 동안 평일 일상을 함께 하면서 친정엄마와 나는 수십번의 치열한 전투와 수백번의 사소한 말다툼을 감내해야 했다.
이제 회사에 복직한 지 2년하고도 반이 훌쩍 지났다. 3.24kg으로 태어난 울 애기는 만 세살이 되었고 몸무게는 15kg이 되었다. 올해 3월부터는 다행이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시립 어린이집으로 아이를 보내게 되면서 늦은 시간에 하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친정엄마의 도움 없이 남편과 둘이 아슬아슬하게 워킹맘의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워킹맘이 쉽지 않다, 힘들다고 했지만 다들 어떻게든 하게 된다고 했다. 그래, 어떻게든 하게 된다.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기를 낳기 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설령 가능하다 하더라도 거의 대다수의 부모는 힘들지만 아기가 없는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만큼 아기가 너무 소중하고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결국 회사를 그만 두는 워킹맘들도 있지만, 프리랜서인 남편을 생각하면 우리 가계는 절대 나의 월급을 포기할 수 없다. 워킹맘의 치열한 삶은 피할 수 없었다.
물론 주변에 생계형이 아닌 워킹맘도 있다.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경제적 상황이지만, 그래도 엄마가 아닌 온전한 본인의 삶을 지키기 위해 워킹맘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누구는 그런 워킹맘들은 맘 편히 살림 봐주시는 이모님들 쓰고, 각종 사교육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시큰둥하게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굳이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도 일하는 그런 워킹맘들을 더욱 대단하게 생각한다. 나는 아마 그런 상황이면 관뒀을 게 뻔하다. 나 같은 생계형 워킹맘의 모습은 황량하고 드넓은 광야에서 태풍처럼 부는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면서 한 발 한 발 겨우 떼어 전진하는 꼴이다. 그렇지만 이런 내 모습에 연민을 가지기엔 나와 같은 워킹맘들이 이미 우리 회사에, 우리 주변에 너무 많다.
나는 잠이 유별나게 없는 울아들을 재우다가 내가 먼저 곯아 떨어지기 일쑤라 육퇴는 커녕 그 다음날 일어나서 출근하기 바쁜 체력 저질 워킹맘이다. 그래서 글을 쓴다는 게 참 쉽지 않다. 아니다, 너무 어렵다. 어쩌면 아이가 혼자 자기 전까지는 불가능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래도 치열한 워킹맘의 일상 속에서도 짧게나마 찬란하게 빛나는 아이와 함께 하는 순간이 있어 기록하고 싶었다. 너무 힘들 때는 글을 쓰면서 스스로 치유됨을 느꼈다. 복직 후 2년 넘게 무기력하게 눈 뜨면 회사, 저녁엔 육아에 치여 아이와 함께 잠드는 흘러가는 삶을 이제는 멈추고 나를 찾고 싶었다. 이제 글 쓰기를 더 미룰 수는 없다는 위기감이 찾아왔다. 그래, 이제 시작해 보자. 나의 워킹맘의 좌충우돌 생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