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reeze Oct 15. 2021

육아를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난 게으른 사람이라 육아도 꽤나 괜찮은 삶이 방식이 되었다

 오늘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육아의 반대편에 있는 삶은 어땠을까. 남편과 둘이서 오붓하게 살면서 여행도 다니고 취미생활과 자기계발에 열중할 수 있고 아이 교육비에 치이지도 않는 여유로운 삶.


 '애기 낳지 마, 그냥 둘이 오붓하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라는 말, 나도 많이 들었고 나도 아기 낳고 몇 번 해 본 소리다. 그런데 나란 사람에게는 딩크족의 여유롭고 오붓한 삶이 육아를 하는 현재의 삶과 동등의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니란 걸 깨달았다. 이건 내가 아무래도 조금은 게으른 사람이라서 그런 것 같다.


  육아를 하지 않으면 좋은 점 중 하나로 부부가 같이 매년 두어 번 해외여행을 멋지게 떠나는 것을 많이 이야기한다. 결혼한 지 2년 1개월 만에 아이를 품에 안았는데 우리도 출산 전에 신혼여행을 포함해서 남편과 4번의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몰디브, 모리셔스, 미국, 그리고 독일. (독일은 임신 5개월 차에 가게 된 출장이라 남편과 동행했다. 여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3일 정도는 함께 관광을 했다.) 혹시 아기를 가지지 않았다면 지난 한 해에도 우리는 해외여행을 한두 번은 다녀오지 않았을까?


 나도 여행을 좋아하긴 하지만, 엄청 좋아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남들처럼 몇 개월 전에 이미 비행기표를 예매해두고 '여행'을 기다리는 즐거움까지 만끽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여행이 가고 싶으면 한두 달 전에서야 예약해서 떠나곤 했다. 여행 계획을 미리 몇 개월 전에 짜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고 귀찮았다. 게다가 유럽에 대한 환상도 딱히 없어서, 여행은 주로 동남아로만 다녔고 유럽은 몇 년 전 효도 여행 삼아 엄마와 스위스를 다녀온 게 전부였다.


 육아가 힘든 것 중 하나는 나만의 시간이 참 없다는 것이다. 아기를 낳기 전 우리의 일상은 회사가 가까워서 둘이 출퇴근을 함께 하고, 집에 와서 저녁 먹으며 뉴스를 보고, 밤 11시 예능을 주로 보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그 흔한 운동 같은 취미도 없었다. 나름 회사일을 열심히 하느라 야근도 하고 별도의 공부도 하긴 했지만 길게 지속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일상이었는데 그 일상 자체만으로도 참 소소하고 따뜻한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남편과 둘이만 사는 여유로운 삶이 언제까지 행복할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여느 밤처럼 남편과 뉴스를 보면서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무료함이 몰려왔던 적도 있었다.


  어른이 되면 시간이 훨씬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특별한 사건 없이 비슷비슷한 일상이 반복되기 때문이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다. (아마 타임 패러독스라는 책이었나.) 여행을 가면 모든 게 새롭고 특별하기 때문에 전날의 기억도 아득하게 느껴지는데 회사 다니면 어제 점심때 뭐 먹었는지 조차 금방 기억해 내기도 어렵다. '남의 아이는 빨리도 큰다'라고 많이들 말한다. 어린 아역이었던 배우가 갑자기 성장해서 티브이에 나오면 와 정말 금방 컸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그 아역 배우가 클 때 동안 비슷한 일상을 살았기 때문인가, 나는 그대로인 것 같은데 말이다. 


 내가 육아를 하지 않았다면 다소 게으른 내가 보냈을 평범한 일상(여행도 두어 번 다녀왔겠지)의 총합과 내가 출산을 하고 아기를 키우며 보냈던 울고 웃었던 하루의 총합을 비교해 보면서, 나는 더 이상 '만약에 아기를 낳지 않았다면, 육아를 하지 않았다면'이라는 후회 또는 상상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여행과 취미 대신 한 아이를 키우는 것을 통해 내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소심한 직장인들에게 추천하는 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