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파스타는 그렇게 먹는 게 아니야
못난 딸의 부끄러운 고백 일기
돌 지난 외손주를 봐주러 지방에서 2시간 넘게 걸려 서울에 와서 평일엔 우리집에서 친정 엄마가 지내시던 2년 전의 일이다. 가끔 엄마랑 외식을 하면 엄마의 취향에 맞춰 주로 한식을 먹으러 가곤 했다. 칼국수라던가, 순두부라던가, 가끔은 짬뽕과 짜장면이라던가... 우리 친정 동네야 시골이라서 갈데가 마땅치 않다지만, 엄마가 외손주 보러 서울에 와 있으면서도 제대로 된 식당 한번 못 모시고 간게 내내 마음에 걸렸었다. 그래서 휴가를 내었던 어느 날, 이날만큼은 한식 메뉴를 벗어나 예쁘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브런치를 하기로 했다. 동네에 새로 생긴 브런치 가게는 이미 이른 아침부터 손님들도 북적였다. 그만큼 주차도 어려웠는데, 어쩔 수 없이 브런치 식당 바로 옆 건물 앞에 주차를 하고 들어왔다.
엄마가 별로 좋아하지 않을 메뉴들로 가득했지만, 그래도 이날만큼은 엄마도 브런치 가게의 분위기가 마음에 드셨는지 흔쾌히 파스타와 피자를 드시겠다고 했다. 식당의 통창 바깥으로는 탄천이 흐르고 개나리가 만개한 아름다운 봄날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곧 주문한 피자와 파스타, 샐러드도 예쁜 그릇에 담겨서 나왔다. 엄마는 그릇도 수저세트도 이쁘다며 좋아했다. 작은 집에서 하루종일 같이 있으면서 투닥거렸던 우리 모녀는 이렇게 바깥에 잠시 나와 있는 것만으로도 잠시 애틋한 모녀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평온함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XXXX 차주분~”
직원이 다급하게 부르는 차 번호는 우리차 번호였다. 내가 번쩍 손을 드니 직원이 와서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 “차를 지금 당장 빼주셔야 겠어요. 옆 건물에는 차를 대시면 안되요.” 기분좋게 식사하려는 찰나, 직원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얼른 차를 빼달라고 하니 나도 사람인지라 기분이 조금 상했다. 그래도 내가 주차를 제대로 안한 잘못이 있으니 별말 않고 얼른 식당 밖으로 나갔다. 그곳에는 명품백을 든 도도한 엄마 또래의 중년 여성 한 명이 서 있었다.
“아니~ 남의 건물 앞에 이렇게 차를 대충 세우면 어떡해!”
“네, 죄송합니다. 얼른 뺄게요.”
“여기 식당에 식사하러 온거에요?”
“네...”
“그러면 여기 주차하세요! 여기 내 건물이거든. 여기 401호 왔다고 차 앞에 붙여둬요! 우리집 왔다하고 그냥 세워!”
“네... 감사합니다...”
“대신 주차선은 좀 여유있게 다시 세워줘요.”
나는 죄인이 된 것마냥 그 건물주 아주머니앞에서 공손히 손을 모으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기분도 좋지는 않은데, 내가 주차를 잘못 한 것이니 어쩔 수 없었다. 운전석에 앉아 주차를 다시 했는데, 그 사람은 “아니지 아니지 다시 다시!”하면서 차를 다시 세우라고 손짓을 했다. 결국 세 네번은 차를 앞뒤로 왔다갔다 하면서 겨우 주차를 마쳤다. 주차로 살인도 나는 세상인데, 주차는 예민한 사항이니 나쁜 기분을 꾹 참고 자리에 앉았다. 다시 한번 직원이 우리 자리로 찾아왔다. 다음에 오셨을때도 옆 건물에는 주차 하면 안된다고 또 다시 주의를 주었다.
“어머~ 오랜만이야~ 다들 먼저 와 있었네!”
그런데 곧 이어 아까전에 듣던 건물주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게 들렸다. 그 아주머니도 여기 식당 손님으로 온 것이다. 그 아주머니가 반갑게 인사하는 테이블에는 마찬가지로 맨들맨들한 피부에 반짝반짝 귀금속으로 단장한 귀티 나는 아주머니들이 앉아 있었다. 바로 옆 건물주 아주머니의 단골 가게였던건가? 그래서 직원도 그렇게 주차에 대해 유별나게 주의를 주었던건가.
얼른 그 테이블에서 시선을 거둬 맞은 편에 앉은 친정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급히 나온다고 화장도 안한 얼굴, 푸석한 피부, 헝클어진 파마 머리... 우리 엄마는 이렇게 친구도 없는 낯선 곳에 와서 하루종일 애기만 보는데... 괜히 서글퍼졌다. 우리 엄마는 나의 기분은 신경쓸 새도 없이 애기 이유식도 떠먹여 주고, 엄마도 식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친정엄마가 칼국수 먹는 것마냥 후루룩 파스타를 드시는 거였다. 안쓰러운 마음도 잠시, 나는 엄마에게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파스타는 그렇게 먹는게 아니야! 이렇게 포크로 감아서 먹는거지 무슨 칼국수 먹듯이 먹는거야?”
친정 엄마는 파스타를 먹다가 말고 아니 얘가 왜 이러나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아니, 어떻게 먹든 뭐 어때?”
엄마, 파스타는 포크로 돌돌 말아서 이렇게 먹는거야, 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꾹 닫았다. 내가 괜한 말을 했다. 엄마의 푸석한 얼굴을 보며 내가 방금 한 말을 후회했다. 다시 주워담을 수도 없는 말이었다. 엄마가 내말에 또 상처 받지는 않았을까. 애써 기분좋게 브런치 먹으러 나왔다가 또 엄마랑 어색한 분위기로 식사를 마쳤다.
브런치 가게에서의 일이 이날 내내 마음에 걸렸다. 늦은 밤, 막내 동생에게 카톡을 보냈다. 오늘 엄마랑 브런치 가게에 갔는데, 옆 테이블 귀티 나는 엄마 또래 아줌마들이 있었는데 푸석한 우리 엄마 보니 괜히 안쓰러웠다고, 시골 아줌마인 우리 엄마는 파스타를 칼국수 먹듯이 먹는데 엄마가 괜히 불쌍하게 느껴졌다고... 40여년 전 빛바랜 옛날 사진 속 엄마도 우리 아빠와 결혼 전에는 울산의 멋진 도시 아가씨였는데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막내 동생에게 답장이 왔다. 나는 막내 동생의 답장을 보고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언니! 언니가 더 이상해. 꼭 파스타를 제대로 먹어야 하는거야? 엄마도 브런치 먹어야 세련되고 행복한거야? 엄마는 시골에서 엄마 친구들이랑 칼국수 먹고 팥빙수 먹고 소백산 등산도 다니고 하면서 행복한거야. 행복한 방법이 다 다른거라고.”
“언니야말로 이상한걸로 트집 잡지마. 언니야말로 내가 보기엔 더 불쌍해. 이런걸로 마음 상하고 자격지심 느끼고.”
8살 차이나 나는 막내 동생이 그간 철부지라고만 생각했는데 나보다 더 어른스러웠다. 엄마보다 내가 더 불쌍하다니. 스무살에 상경해서 그간 대학과 직장 생활을 십수년 째 하면서 시골 출신인 나는 늘 알 수 없는 자격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엄마를 바라보는 나의 이상한 삐뚤한 마음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괜히 세련되지 못하고 촌스러운 것 같은 내 취향에 대한 자격지심, 내 마음을 괜히 엄마에게 투영했다. 엄마가 파스타 먹는 모습을 바꿀 게 아니라, 내 마음을 바꿔야 되는 거였다.
파스타를 어떻게 먹던 무슨 상관이야. 예전 한창 불러제끼던 DJ DOC의 노래가 오랜만에 생각이 났다.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 잘못해도 서툴러도 밥 잘 먹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