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미니멀리즘 라이프 찾기
삼일절이 금요일이라 3일간의 긴 연휴를 맞게 되었으나, 한겨울을 방불케 하는 꽃샘추위가 찾아온다길래 원래 계획했던 캠핑 모임은 취소하고 결국은 쇼핑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한동안 나는 물욕이 없는 사람이노라(집과 차 빼고, 그러다가 어느순간 차도 빼고, 이제는 집도 빠질랑 말랑 하는 중) 자부하며 그저 여행과 외식에 돈을 탕진하는 엥겔지수 높은 사람일 뿐이었는데... 이 물욕이라는게 살짝 탁! 조금만 건드리면 아주 쉽게 봉인이 풀려 버리는 것이었다.
그 시작은 2024년이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은, 1박 2일 여고 동창모임(a.k.a K-장녀모임)이었다. 거의 몇년만의 모임이었는데, 혼자 살고 있는 친구네 집에서 모이기로 했다. 오랜만에 경험하는 싱글 여성의 세련된 취향이란! 특히 나의 마음을 빼앗은 것은 섬세하게 불 밝기가 조절되는 백자 모양의 조명이었다. 스탠드를 어떻게 끄는지 몰라서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우연히 내 손이 스탠드 윗 부분이 닿았는데 그때 너무나도 아름답고 섬세하게 밝기가 줄어드는 것에 반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친구네 집에서 돌아오자마자 그 백자모양의 스탠드를 주문하려고 했으나, 가격이 사악하여 그 하위 버전인 같은 브랜드의 달 모양 조명을 샀다. 침대 옆에 놓을 조명 하나를 10만원 넘게 주고 사다니! 그리고 다른 친구가 추천했던 10만원이 넘는 화장품도 그 쫀쫀함에 반하여 주문을 해 버렸다... 나에게 한동안 화장품이란 그저 올리브영 세일할때 사는 거였는데...
그리고 2주 뒤, 다른 친구네 집에 놀러갔는데 그때 또 다시 섬세하게 수증기를 뿜어내는 스탠드형 대형 가습기에 반했다. 그래서 이것도 바로 사려고 했으나 다시 한번 사악한 가격에 놀라서 그 하위버전인, 조명도 되는 탁상형 가습기를 구매했다. 이것도 10만원이 넘었다.
그리고 텐트도 결국 기변했다. 캠핑을 좋아할지 말지 몰라서 작년 가을에 30만원짜리 원터치 리빙쉘 텐트를 사서 그간 캠핑을 다녔는데 내가 캠핑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었음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겨울엔 아무래도 텐트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넓은 텐트가 필요했다. 마침 1월인 나의 생일 선물으로 남편 찬스를 통해 123만원짜리 새텐트를 샀다. 그리고 또 며칠 뒤, 거실 사이드 테이블도 샀다. (원래 있던 건 당근에다 1년 전에 팔았으면서.. 다시 산 것이다.) 북 스토퍼라는 물건도 한개에 만원이 훌쩍 넘는데 우연히 쿠팡에서 보고 이걸 2개나 샀다. 필사할 것도 아니면서 밥 먹으면서 책 읽을때 쓸 거라고...
이렇게 시작된 나의 쇼핑은... 3월에 접어드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삼일절 연휴인 어제는 취소한 캠핑 대신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캠핑 박람회에 갔다. 조명 2개와 그리들, 각종 캠핑 용품들을 40만원어치 사왔다. (조명이 비싸다!) 텐트가 바뀌었으니 조명도 더 크고 더 밝은 걸로 필요하니깐^^;;
그리고 오늘은 연휴 때 집을 정리한다는 명목으로 이케아를 다녀왔다. 수납장을 사려고 했는데, 일년 반만에 찾은 이케아는 나뿐만 아니라 남편도 눈을 돌아가게 만들 정도로 매력적인 물건들이 많았다. (라고 쓰고.. 한편으로는 지구의 쓰레기들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오후 5시가 되기 전 도착하여 결국 영업 마감할 때 나왔다. 영수증엔 가까스로 40만원이 채 안되는 금액이 찍혔다. 휴~ 다행이다.
요즘 워낙 안하던 쇼핑을 하면서 돈을 쓴다는 죄책감도 들고 있지만, 물건들의 유용함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깨닫고 있다. 은은하게 꺼지는 조명은 잘 때마다 기분을 좋게 한다. 조명 기능도 있고 섬세한 수증기를 뿜는 가습기는 마치 나의 피부 보습까지 책임지는 것 같아 볼 때마다 흐뭇하다. 가습기 물을 채우는게 귀찮지 않은 것은 또다른 중요한 포인트이다.
새로 산 텐트는 말해서 무엇하랴. 그저 좋을 뿐이다! 너무 넓다. 좋다. 겨우 세 식구인데도 비좁았던 지난 원터치 텐트여 안녕~ 동선이 겹치지 않고 넓은 공간의 텐트는 나의 마음까지 탁 트이게 한다. 이번에 첫 피칭을 고생스럽게 했지만 2박 3일 캠핑은 아주 만족스러웠고, 다녀와선 우레탄창 작업을 보냈다. 텐트 안에서 바깥이 환히 보이는 우레탄창까지 달면 얼마나 좋을까!
거실 사이드 테이블은 택배가 도착한지 한참이 지났는데 오늘 아침에서야 조립을 했다. 한동안 쇼파에 앉아서 따뜻한 보리차를 마시면서 넷플릭스를 보거나 책을 읽을때마다 컵을 어디 둘데가 없어서 불편했었다. 이제는 아주 편히 컵을 올려둘 수 있다. 오늘 아침엔 고개 숙여 유투브를 보던 울애기를 위해 패드를 사이드 테이블 위에 올려줬더니 아주 딱이다! 울아들도 좋아라 했다.
오늘 이케아에서 산 물건들도 꺼내보는 재미가 있다. 특히 수납장이 애매하여 이곳저곳 굴러다니던 학용품들을 모아주는 수납함은 너무 마음에 든다. 이제 여섯살이 되었으니 울 애기도 펜도 쥐고 공부를 좀 해줘야 하는데 학용품과 좀 더 친해지도록 해야겠다.
어제 오늘 실컷 쇼핑을 하고 아까 집으로 돌아와서 누적 카드액을 보고 좀 불편한 마음이 들었는데, 마침 유투브 알고리즘이 물건이 주는 무용함에 관한 살림 고수의 영상까지 보여주네? 미니멀리즘을 위해 구독했던 채널이었는데... 유투브야, 너는 혹시 내마음까지 이제 알아버린거니? 아니면 남편과의 대화를 마이크를 통해 들었던거니? 재생을 누르려다 말고 최근 내가 산 이 물건들이 나에게 주는 '유용함'과 '즐거움'이 분명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생각났고, 글까지 쓰게 되었다.
꽤나 오랫동안 작은 집, 아니 크지 않은 집에 불만을 가지고 살았다. 미니멀리즘을 우연히 접하고 이거다! 싶어서 집안의 물건들을 정리하고 최대한 안 사기로 다짐했고,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작은 우리집에 대한 불만보다 우리집의 매력과 장점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 장점들이 너무 좋아서 더 넓은 집에 대한 욕심도 거의 내려놓았다. 물건이 없어서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물건들을 다시 사다보니, 물건들이 주는 기쁨과 편리함이 있구나,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물론 산지 얼마 안되서 곧 익숙해질 수 있는 물건들이고, 언젠간 쓰레기통에 쳐박힐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즐겁다. 그리고 나도 좀 그간 필요한 물건들은 사면서 살 걸, 그랬으면 좀 더 편했을텐데, 좀 더 집이 깔끔했을텐데 라는 생각도 든다. 미니멀리즘은 앞으로도 계속 할거다.그리고 필요한 물건들, 나를 기분좋게 하는 물건들은 적당히 사면서 살아야지 싶다. 나이 마흔에 접어들면서 나는 이렇게 나의 삶 곳곳에서 적정한 나의 균형점을 하나둘씩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꽤나 괜찮은 마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