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인간의 나약한 의지, 그리고 환경의 중요성

해결책은 의외의 곳에 있었다.

by breeze

9월부터였나, 아마 지금의 TF가 시작하고 한달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을까, 너무나 이기기 힘든 무기력이 오랜만에 찾아왔다.



이직을 하고 너무 즐겁게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이 회사 이직 후 거의 처음 경험하는 상당한 무게의 무기력함이었다. 나는 퇴근하고 오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라고 남편한테 말을 건네고 남편이 차려준 저녁을 먹고 씻고 울 아들 숙제 좀 봐주고 아들 재우면서 바로 잠들었다.



바쁘다, 힘들다,를 입에 달고 사는 워킹맘이면서 하루에 10시간 가까이 자는 과수면 상태에 빠졌다. 회사에서, TF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나는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잠으로 풀었다. 잠들면서 현실의 고민거리에서 도망갔다. 다행이 회사에서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없다. 정말 다행이다.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TF라는 과중함, 쉽사리 풀기 힘든 높은 난이도의 과제, TF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해야할지 다소 모호한 상황들... 등등에 대한 업무적 부담감이었다. 출퇴근도 자차로 하니 운동량은 남들보다 훨씬 떨어지는데 과수면 상태까지 겹치니, 자고 일어나도 나는 늘 피로감과 졸림, 무기력과 우울감에서 허우적 거렸다.



이런저런 생각과 상담 끝에 내린 결론, 우선 과수면을 해결해야 했다. 그런데 과수면을 해결하기는 쉽지 않았다. 쉽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너무 어려웠다. 사랑스러운 울 아들은 엄마가 재워주기를 원하고, 나도 울 아들과 함께 잠드는 시간이 세상 최고로 행복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쫑알쫑알 떠들고 엄마에게 뽀뽀도 해주고 애교도 부리던 내 아이가 말이 없어지고 눈이 사르르 감기면서 곤히 숨소리를 내면서 잠드는 그 순간,을 나는 매일매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토록 행복한 순간 나도 곤히 잠에 빠져드는 것, 이건 정말이지 의지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이걸 굳이 해결해야 하나 싶다. 일찍 자면 일찍 일어나면 되지 않냐고. 그런데 일찍 일어나는 건 나에게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링글 화상영어라도 미리 예약해서 일찍 일어나면 나는 세상살이는 이토록 고되구나 하는 마음으로 일어난다. 고딩 시절 아침 일찍 일어나서 머리를 감을 때마다 인간의 삶은 괴로울 고,로구나 라고 생각했던 것이 떠오를 정도로 매우 씁쓸한 기분을 아침부터 느끼게 된다.



이와 별개로 작은집에서 잘살기 프로젝트로 집을 계속 정리중에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방 하나를 온전히 비우고 아이방을 만들어 주기였다. 울아들은 겨우 여섯살이면서 혼자자고 싶다고, 같이 자는 건 불편하다고 가끔 거실 쇼파에 가서 자거나 바닥에서 재워달라고 했다. 침대 사주면 혼자 잘꺼야? 라고 물어보면 "응!"이라고 아주 당차게 대답했기에 좀 더 일찍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남편의 전자 드럼을 결국 다시 상자속으로 넣고 창고로 보내버리고, 한동안 빈 방이었던 가운데 방에 아이의 침대를 들였다. 침대를 결제하고 설치하는데도 일주일을 기다렸다. 그리고 침대를 받고 처음으로 침대에서 아이를 재우던 날이었는데 말이다....



유레카!!! 바로 이것이다!!! 아이의 침대에서는 내가 같이 잠드는 공간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나도 같이 잠들다가도 남편이 깨우니깐 일어나게 된다. 나는 나의 침대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어떨때는 결국 아이방 침대에서 같이 잠들고 아침까지 같이 자기도 했고, 남편이 깨우면 바로 나의 침대로 곧장 직행해서 잠들기도 했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늦게까지 깨어서 책을 읽거나 폰질을 하거나 밀린일을 하거나 블로그를 쓰거나 하면서 새벽 1시 가까운 시간까지 깨어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수면시간도 적절하게 7~8시간으로 조절되었고, 확실히 다음날 오히려 덜 피곤한 상태로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고치고 싶었던 과수면은 일찍 자는 대신 일찍 일어난다, 아니면 어떻게든 깨어있어 본다, 라는 나의 나약한 의지로는 택도 없었는데 예상치도 않았던 의외의 곳에서 해결되었다. 역시 다시 한번 깨닫는다. 고치고 싶은, 또는 갖고 싶은 습관과 행동은 의지보다 내 주변의 환경을 어떻게 세팅하느냐에 따라 달렸다는 것을... 다시 내 삶의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또 어떤 삶의 모습을 고치고 싶은지, 그 방법이 쉽게 떠올려지지는 않겠지만 내 의지를 믿는다기 보다는 어떻게 환경을 바꿀까, 라는 HOW의 아이디어를 고민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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