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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eeze Jul 05. 2023

나는 미라클 모닝 & 아침형 인간의 포기를 선언합니다.

게으름에도 관성이 있다. 대신 올빼미형 인간임을 인정하기로 했다.

' 선언'이라고 하긴 거창하지만, 나 스스로에게 선언하고 싶었다. '선언하다'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는 널리 펴서 말하는건데, 널리 펴서 말할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 스스로에게 강하게 이야기 하고 싶었다.



"이제 더 이상 아침형 인간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일찍 못 일어나도 괜찮다고."



 올해 3월,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하면서 8시가 좀 지난 시간에 셔틀버스를 타게 되었다. 셔틀버스 시간을 맞추기 위해 우리 부부는 작년보다 일찍 일어났고 훨씬 더 길고 부지런한 생활을 하는 듯 했다. 그러나 울 애기가 결국 유치원에 적응하고 다시 취침시간이 10시 이후로 접어들자, 악순환으로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를 너무 힘들어했다. 이제 겨우 네돌인 아이한테 일찍 일어나라고 강요하는게 안쓰럽고 미안하여 좀 더 재우고 내가 출근하면서 유치원까지 데려다줬다.그러다보니 10시 출근임에도 나도 곧잘 지각이 반복되었고, 남편도 출근 시간이 늦어지는데다가 하원 시간까지 맞추려고 하니 업무 시간이 크게 줄어들었다.


 오늘은 울애기가 기분 탓인지 몸이 안 좋았던건지 등원을 극구 거부하다가, 물놀이 현장학습 장소까지 아빠가 데려다 주었지만 결국 거부하고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남편이 출근을 못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아무리 자영업이라지만 오늘 남편은 한동안 다른 집 아빠들보다 훨씬 육아에 시간을 써왔던 본인의 일상에 상당히 큰 현타를 느낀 듯 했다. 결국 본업까지 크게 영향을 받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룰루랄라 요즘 행복하고 즐겁다고 남편한테 얘기하고 지내왔다... 그게 남편 덕인줄도 모르고 말이다.


 여기까지 쓰면, 이 글을 보는 분들이 한 손으로 꼽을 정도일테지만 다시금 일찍 일어나서 아침 시간을 잘 활용하는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다짐으로 글을 쓰는게 맞지 않나? 싶을거다.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몇년을 나는 아침형 인간으로 살아왔다. 첫직장 다닐때는 아침 5시 반에 기상해서 6시 첫 통근버스를 타고 출근하였고, 두번째 직장을 다닐때는 한동안 아침 수영 강습을 듣고 출근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점점 아침형 인간이라고 말하기엔 평범한 일상을 보내게 되었고 출산 후 복직하고 나서는 갑상선 저하증으로 10시 출근도 겨우 맞추거나 곧잘 지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아주 가끔 새벽에 일어나면 그 고요한 새벽의 분위기가 나는 괜시리 우울하게 느껴지고 삶이 버겁다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다행이 지금 갑상선 수치는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나에게 일찍 일어나는 건 참 많이 힘들다.  


 미라클 모닝에 대한 책들을 몇 권이나 읽으면서 올해 상반기 내내 울애기를 재우면서 같이 일찍 잠들고 다음날 일찍 일어나야지! 라고 다짐을 했던 나날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러나 다시 한 번 한 손으로 꼽을 정도의 날들을 제외하고 일찍 일어나는 것에 번번히 실패했다. 지각을 할 때마다 스스로를 미워하며 내일은 꼭!이라고 다짐을 하고 또 했지만 결국 다음날도 매한가지였다. 팀장이 되어서 업무가 정말 과도한데, 밀린 업무는 꼭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해야지!라고 다짐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하고 업무까지 자꾸 밀리게 되었다.


 오늘도 그랬다. 아침 6시 30분에 화상 영어회화를 하는 날이라 그나마 일찍 일어났는데, 40분간의 화상 영어를 끝내자마자 몸살 기운에 다시 쇼파에 누워 잠들었다. 눈뜨니 9시! 남편은 컨디션이 안 좋다는 나의 말에 나를 안 깨웠다고 했다. 결국 그래서 오늘 울 애기도 못 데려다주고 남편한테 맡기고 허겁지겁 출근을 한건데, 결국 울애기는 아빠 말을 안듣고 유치원 등원 거부를 선언!하여 파국으로 치달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오늘을 겪으니깐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야겠다 싶었다. 아침형 인간이 굳이 안되어도 된다고, 노력해 봤지만 아침에 너무 저조한 컨디션으로 결국 다시 침대에 기어 들어오는 나는 굳이 아침형 인간이 되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다. 대신 일찍 일어나겠다는 다짐으로 일찍 자버리는건 고쳐야 하겠다고 말이다. 그냥 나는 올빼미형 인간이구나, 밤 늦게까지 깨어 있어 밀린 업무도 좀 하고 내일 할일을 미리 정리하고 잠드는게 차라리 맞겠다 싶은거다. 그래서 지금이 새벽 2시 40분이다.


 이 새벽에 나는 밀린 업무들을 정리했고, 오늘의 있었던 일을 곰곰히 되새기며 일기도 쓰고 글도 쓴다. 그러면서 내 마음을 다독인다.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생각을 고요한 새벽에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늦은 밤과 다음날 새벽에 접어들면서 그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업무 아이디어도 떠 올랐다. (유레카!) 야심한 밤에 나는 훨씬 생산성이 높다. 인정하자... 대신 아침엔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나는 걸로...


 게으름에도 관성이 있다. 다음날 하지도 못할 아침형 인간을 기약하면서 10시간씩 자버린 나의 일상은 아주 쉽게도 관성이 생겼다. 많이 자는만큼 이상하게 피곤하고 더 자고 싶었다. 하루와 나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이 없으니 살아지는대로 살게 되었다. 닥치는대로 일을 처리하기에 급급했다. 아침형 인간이 중요한게 아니라, 게으름의 관성을 버리고 의식을 갖고 주체적으로 깨어있는 시간을 늘리는게 맞겠다.


 아침형 인간임을 포기한다고 하니, 기분이 홀가분해진다. 작년 대비 전반적으로 훨씬 나아진 23년이라 미라클 모닝까지 하면서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안되는 건 안되는 거였다. 어떤 에세이를 읽었을때, 올빼미형 인간에 대한 책을 썼는데 잘 안팔렸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 사람도 결국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고 했던가...?) 그럼에도 올빼미형 인간이 건강에 안 좋고 인기도 없을지언정, 나는 올빼미형 인간임을 소심히 오늘 선언해 본다. 언젠간 잘 팔릴 올빼미형 인간에 대한 책을 써보겠다는 목표도 오늘 처음으로 세워본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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