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지난 5월은 정말 내 28년 인생 중 제일 피로하고 무기력했던 시기였다.
우울증의 정서를 엄청 강력하게 체험했는데 우울과 무기력의 가장 큰 특징은 문제 해결의 적극성을 잃는다는 것이다 (내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지 않기 때문)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그냥 문제가 일단 지나갔으면 좋겠음 엄청 수동적이 된다
주위에서 야 나도 퇴사하고 싶어 나도 우울증이야 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마음의 힘이 떨어지면 그 모든 지난한 절차를 거쳐 퇴사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사람이 정말 힘들면 퇴사도 아니고 그냥 은퇴가 하고싶다
1. 주위를 돌아보니까 내 주위 사람들이 생각보다 탈 IT 를 많이했는데 스타트업 그만두고 바리스타가 되거나 이제까지 모아왔던 돈으로 애틀랜타에 식당을 사거나 좋은 엔지니어였는데 그만두고 자영업을 시작하는 등등이다. 물론 그 분들의 선택이 나쁘다는 것도 틀리다는 것도 아니지만 함께 이 길을 걷는 것이 영광이었던 사람들이 떠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 사람들이 인생 설렁설렁 살았던 사람도 아니고 누구보다 일 잘했고 배우고 싶었던 사람들이었는데 내가 닮고 싶은 선배들이 갑자기 서핑 강사가 된다거나 하니까 내 미래도 저건가..? 라는 생각이..
2. 모든 문제는 급여 소득으로 10년 이상 하는건 정말 못할 짓이기 때문인데 한국이라는 working standard 높은 국가+디자이너/엔지니어/IT 또는 스타트업 직군같은 직군마저 힘든 2콤보를 맞으면 정말 내가생각해도 그만하고 싶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감정적인 내가 지난한 길을 걸으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주위 분들이 많이 힘이 되주셨고 우연과 행운이 많이 겹쳐서 라고 생각한다. 세상엔 포기하지 않지만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고, 나도 한때는 그런 사람이었고 또 어느 철에 또 그런 사람이 될 터였다.
2-1. 30대 중반 정도가 커리어 피벗의 거점이 되는 건 그러고 보면 우연이 아니다. 그냥 급여소득자로 10년정도 사니까 못해먹을 것 같기 때문(..)이 아닐까..
3. 무력했던 5월 나는 지난 28년 중 그 어느 떄보다도 나를 적극적으로 돌봤다. 집 청소를 매일 하고, 설거지가 쌓이지 않게 하고, 주말 중 하루는 동생이나 나를 정말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드라이브를, 한강 패들을 타며 원래의 기운을 찾고 더 업그레이드 된 나 자신으로 거듭나고자 했다. 물론 이것도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세상엔 쉬운 일이 없고 나 자신의 컨디션 관리도 하루 아침에 되는게 아니다. 생각보다 인생이 길었고 그 긴 인생동안 지난 몇 달 간 겪은 고비들을 또 겪어야 할까를 돌아보며 아득했다. 버텨내기 위해, 마지막 남은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은 해냈던 나 자신이 장하다.
4. 자의반 타의 반으로 원래의 리듬 원래의 호흡 원래의 에너지를 조금씩 찾아나가는 6월이다. 삶은 어찌 되었던 흘러가고, 어쩌면 나 자신에게 남은 선택지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던 담담히 받아들이고 나아가는 것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서핑을 좋아하는 이유는 잘은 못하지만 인생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해주어서이다. 이전에 나에게 삶이란 하나하나 쌓아가는 것이어서 더 무겁고, 움직이기 어려워지고, 잃는것 없이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요새의 나는 좀 다른 생각을 한다. 인생이란 파도를 타는 것과 같아 때로는 높이 날 때도, 다소 낮은 높이에서 날 때도 있다. 본디가 위아래로 출렁이는 것이 삶이고, 그 수많은 물결을 겁내지 않고 타거나 무서워하며 나아가지 못하고 물결 안에 영원히 묻히거나 둘 중 하나다.
거친 파도에 맛탱이가 가서 5월 내내 물을 먹고 허우적 거렸다면 나는 끝내 놓지 않았던 보드를 쥐고, 버티느라 더 강해진 힘으로 새로운 물결을 탈 준비가 됬다.
언젠가 나는 또 고꾸라지겠지만, 높은 파도가 무서워 얄팍하고 까불까불하게 넘어지지 않을 파도길만을 탈 수는 없다.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앞을 똑바로 보고 높이 파도를 올라타다가도 다시 낮은 곳에서 파도를 타고 그렇게 계속 나아가기로 한다.
모든걸 잃고 바닥을 찍던 시절 내가 책에서 읽었던 “싸게 팔아서 편해지기 시작하면 인생도 얄팍해진다”라는 구절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결국 죽는 것보다 살아가는 것이 더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 알베르 까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