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ssie Nov 14. 2022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이 책은 제목이 다했다

민수선배는 결정을 했으면 씩씩하게 나아가라고 했다. 그저 앞으로 파도를 뚫고 가며 더이상 머뭇거리지 말라고.

지수야 그냥 가. 더이상 네가 하나를 얻기 위해 나아감으로써 놓치게 될 포기하게 될 그런 많아보이는 것들을 떠올리면서 괴로워 하지 마. 그러느니 열심히 살지 않느니만 못하다.


이제까지 나는 그냥 했다. 남들 모두가 왜그렇게 열심히 사느냐고 물어봤지만 이유는 없었다. 모든게 너무 자명했을 뿐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유롭게 나의 삶을 스스로 정의해나갈수 있었고, 가지고 싶은건 많았으나 가진건 없었다. 무엇하나 넉넉하지 않았기에, 그저 누릴 수 있는 건 없었기에 악착같이 매달리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나는 항상 어떻게 해야 열정적으로 살수 있냐 그런 질문을 받을때마다 그냥한다고 했다. 애초에 정말 열심히 살고 싶다면 그런걸 물어볼 시간에 뭐라도 하는게 맞지 않을까. 잘 하는 놈이 즐기는 놈 못이긴다고 하지만 둘다 틀렸다. 둘다 그냥 하는 놈을 못이긴다. 무동기는 이유없이 그냥 하고, 그냥 뚫고 나가고, 그래서 무동기는 항상 동기보다 상회하는 동인이다.


즐겁지 않고 잘하지 못해도 그냥 계속 했다. 추락하면서 날아오르는 법을 배우는 새처럼 살다가 어느날 내가 선배에게 말했다. "오빠 난 너무 힘들어."


우리는 아직도 우리의 삶을 사랑하는가. 10대나 20대처럼 체력과 시간과 잠재력이 무한한 시간은 유한하고, 더이상 삶은 무한히 확장하기보다는 선택의 순간이 되어 하나를 선택하는 순간 다른 매몰비용들을 잃는다. 경제는 침체되고, 세대 착취로 주거권과 생존권이 위협당하는 이 시기에 우리는 비관론에 빠지거나 누군가 비난할 사람을 찾아 나서는 대신 여전히 우리의 삶을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해서 대가를 치르면서 산다. 내가 선택한 것의 가치를 꿰뚫어보고, 외면하지 않고 인정하며 한발짝씩 용감하게 다시 나아갈 수 있는가.


고통은 인생의 최악이 아니다. 최악은 무관심이다. 고통스러울 때는 그 원인을 없애려 노력할 수 있다.  지금껏 인류 역사에서 고통은 변화의 산파였다.


삶을 사랑하고 본질적으로 완성을 추구하려는 사람이라면 고통을 품어 앞으로 나아가려 할 것이다. 주어진 조건 속 어떤 것을 바꿀 수 있고 어떤 것이 나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졌는지 판단하고 행복을 스스로 그려나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결국 그 고통은 바람처럼 흩어져 괜찮아진다.


거침없이 달려왔던 나에게는 잃을 게 없었다. 악착같이 살았고 조금씩 숨통이 트여서, 앞으로 나아가는게 전혀 힘들지 않았다. 내 뒤에는 가진게 없었고 앞에는 조금이라도 있을 수도 있었다. 어차피 없었기에 가능성을 믿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어쩌면 가장 최근의 내 인생의 고비는 처음으로 내가 잃을 것이 생겨서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내 손에 쥔 것이 있었고 내 앞에는 쥔 것이 아니라 가능성만이 있었으니.


이제까지의 관성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놓는 것이 무서웠다. 나아갈 수 없으니 계속 아팠고, 그 아픔을 감당할 수 없어 모든것이 무관심해지고 무기력해졌던 나날들이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는게 무서워서, 내가 놓쳐야 할 모든 것들이 아쉬워서 삶에 대한 사랑을 무디게 했다. 어쩌면 우리가 더 나은 삶을 만들어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integrity를 지켜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인생의 면면해서 무기력해지는 이유는 이런 것 때문일 거다. 나아가는 것이 본질인 사랑하는 삶인데, 나아갈 때 어려움이 보이니 변화의 초동이 되는 고통을 무시해버리고, 삶에대한 사랑의 불빛이 꺼져버리는 것.


2년 전 방황하던 나에게 심리상담사 분은 내가 이미 어떻게 나아가야할지 다 알고 있다. 당시의 나는 다 알고 있는데도 슬럼프를 극복못하는 나를 더 채찍질만 했었던 기억이 난다. 돌아서 생각해보면 좋은 일만 있을 수 없으니 실망을 참고 견딜 마음과 일이 잘못되어도 인내심을 갖고 자켜보겠다는 다짐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자세로 다시금 헤쳐 나갈 강인함이 없었다는 생각을 했다.


민수 선배가 이야기한 것들은 그런 거였다. 열심히 산다고 해서 사랑할만한 삶이 그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삶을 사랑하기 위한 노력 역시 별도로 필요하다는 것. 내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대로 세상이 굴러가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고 내 마음 속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용기, 지나간 날을 추억으로 담아 놓을 용기, 내가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다른 하나를, 어쩌면 예상하지못했던 여러 개를 잃는다 하더라도 나 자신을 믿고 내 삶을 가꾸어 나가겠다는 자세 같은 것들.


인류 모든 문화권에서 자유와 독립이 투쟁으로 이루어져서 쟁취되었듯 삶에 대한 사랑도 앉아서 무력하게 기다리고만 있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에서 일차원적인 만족과 다차원적인 행복은 다른 것이라고 했고 진정한 긍정은 항상 강인함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했다. 이제까지 내가 겪어왔던 세상은 항상 내 생각 이상의 대가를 치러야 했듯이 이번에도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다 가지고 싶다는 유아적인 만족감과 내가 정말 원하는 행복과 가치를 분리할 차례였다. 대가를 치르고 그냥 강인하게 나아가 볼 차례. 그저 파도를 뚫고 파도벽 앞에 담담하게 서서 강인하게 뚫고 나가 도전해 볼 차례.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책 읽기를 고민하시는 분이 있다면?

에리히 프롬의 미공개 원고인 이 책은 세계 1,2차 세계대전의 생명 경외 실종과 산업화, 전쟁과 기계회를 둘러싼 근대~현대 사회의 변화상 속에서 인간성의 실종과 함께 삶에 대한 사랑하는 능력의 실종을 지적하며 씀 책입니다. 따라서 현재 내 삶 속에서 고민하는 질문들 속에서 삶을 사랑하는 방법이나 내 인생에서 고민할 점들을 적었다기 보다는 에리히 프롬 특유의 개념정의와 그러한 개념이 적용되는 예시를 풀어서 설명하는 다소 이론서적인 책인데요, 이 철학 책을 바탕으로 내 삶에 재적용해보는 시도가 책을 읽는 것 자체보다 더 중요한 책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이 지금으로부터 70여전 전의 이론개념을 무미건조하게 읽는 것보다 더 큰 효과가 있을 수도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에 대한 철학을 저술한 <사랑의 기술>,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두 권의 책을 적었는데요, 사랑의 기술처럼 남녀간의 사랑과 독립성을 적었다기보다는 사회 전반적으로 삶을 대하는 능력에 대해 저술 한 책이기에 사랑의 기술보다는 덜 말랑말랑하고 건조하게 읽힐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과연 사만다와 루이스가 한 짓은 생고생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