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숲으로
이제는 내가 미칠 타임인 건가 싶을 때가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는데 현실은 나를 무섭도록 압박해오는 순간을 만나면 말이다. 그럴 때 가장 화가 나는 건 무능력하게만 느껴지는 나 자신이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 같은 감정이 들끓어 오르기 시작하고 이걸 발산해버릴 무엇인가가, 누군가가, 어딘가가 필요하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누굴 원망할 일도 아니라 스스로가 너무 괴로운 날이었다. 결국 배낭가방을 둘러메고 초코바 두 개, 생수 하나를 챙겨 집을 나섰다. 인근 산으로 등산을 가기에 그리 이르지도 그리 늦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답답한 마음을 안고 혼자 조용히 산을 찾았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바쁘지 않은 곳이라 나도 여유롭게 녹아들었고 어느새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다. 그렇다고 꿔다 놓은 보리자루처럼 맹숭맹숭 가만히 혼자 서있게만 하지도 않았다. 각각의 갈림길마다 친절하게 이정표가 있고 바닥에는 사람들의 발길로 다져진 소롯길이 내가 걸을 길을 안내해주었다. 그 친절한 안내를 따라 마음껏, 느긋하지만 부지런히 걸었다. 정상까지 오르는 동안 진한 땀이 촉촉이 흘러줄 만큼 몰입했다. 길을 따라 내내 걷다 보면 어느새 마음속 감정의 쓰레기들이 다 어디론가 사라졌다. 내려올 때의 기분은 한결 홀가분해져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그날도 씩씩거리며 출발했고 헉헉거리며 산을 올랐으며 묵묵히 다시 내려왔다.
사실 혼자 산을 오르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어릴 적 내가 사는 동네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부산의 작은 변두리 마을이었는데 그때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봄, 가을 소풍을 죄다 산으로 갔다. 학교 앞산, 뒷산, 옆산, 이쪽 건너 산, 저쪽 건너 산...
소풍의 기억은 이랬다. 조그마한, 하지만 김밥 이며 음료수며 간식거리들로 터질 듯이 빵빵한 알록달록한 '소풍 전용 가방'을 하나씩 둘러메고 각 반의 담임 선생님을 따라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지금처럼 산책로가 잘 닦인 산이 아니라 그야말로 바위를 넘고 풀숲도 헤치는 생 야생 산길이라 길이 엉망이어서 쭉쭉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굴러다니고 난리다. 그러나 아이들은 서로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려고 속도를 엄청 냈다.
이 와중에 선생님들은 자꾸 '줄 맞춰!'를 외치시며 엄청 군기를 잡으셨다. 소풍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전지훈련 내지 전교생 기합이 아니었나 싶다. 반창고는 필수품이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소똥을 피해 돗자리를 펴고는 도시락을 먹자마자 많은 아이들이 낮잠에 빠졌다. 강행군을 했으므로. 그러나. 모두가 다 꿀잠을 잘 수 있는 건 역시 아니다. 부지런히 앞자리를 사수하며 속도를 낸 아이들이 평지 나무 그늘 아래를 차지할 뿐 나같이 느림보 걸음으로 자꾸 뒷반으로 또 그 뒷반으로 계속 뒤로 처지는 아이들은 비탈길이나 땡볕 아래, 혹은 돌무더기를 다 손으로 일궈야만 할 것 같은 곳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가끔 이상하다 싶게 비어있는 좋은 자리는 역시 이유가 있다. 신나서 웃으며 뛰어가보면 소똥이 한부지기다.
그때 난 산길을 오르다 쭉쭉 미끄러지며 늘 이런 의문에 빠졌다.
'인간은 왜 이 고생을 하며 산을 올라야 한단 말인가?'
어린 나에게 산은 진절머리가 쳐지게 싫었던 흔해 터진 '동네 병풍'일 뿐이었다. 타동네 친구들은 소풍을 산으로 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충격 내지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다행히 중학교에 입학하니 소풍을 산으로 가지 않는 신세계가 펼쳐졌다.
그로부터 10여 년 뒤, 나는 내 발로 산을 찾았다. 여전히 산을 오른다는 건 참 힘든 고행길이었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산을 올랐다. 곧 넘어갈 듯, 듣는 사람도 같이 숨이 찰 듯한 거친 숨을 헉헉 몰아쉬어야 하고 콧물은 왜 그렇게 줄줄 흐르는지. 타고난 길치라 앞사람 놓치는 순간 조난이 예상되기에 무조건 따라붙어야 한다. 헉헉 거리느라 콧물 닦느라 앞사람 뒤쫓느라 이미 정신일도 심하게 되어있는 상황이고 그곳을 비집고 들어올 만큼 눈치 없는 복잡한 문제 따위는 이미 산 입구에서부터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내가 나를 산에 던져 넣은 이유다. 그런 이유로 틈틈이 얼마나 산을 올라댔는지, 한 번은 백여 명이 모인 회사 단합 산행 때 뜬금없이 여자 직원들 중 덜컥 1등으로 올라버려 한동안 온 회사 남녀직원들의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영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렇게 나에게 때론 화를 달래주고 때론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산과 숲이 이제는 마음뿐 아니라 아픈 몸의 치유까지 돕고 있다. 병원 치료 후 자연이 더 소중해진 이유다.
4년 전 항암치료 도중 나는 폭발해버릴 듯했다. 멋모르고 시작했던 항암치료의 쓴 맛을 느낀 직후, 항암치료를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만큼 항암제 부작용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하지만 결국 억지로 치료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런 스트레스 때문인지 치료 일정이 있던 당일까지 주체할 수 없는 짜증과 예민함으로, 그리고 3일 내내 멈추지 않는 설사병으로 몸도 마음도 너무나 지쳐있었다. 결국 입원 당일 동네 응급실까지 다녀간 몸으로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싣느라 병원 도착시간은 밤 9시가 넘어있었고 하루 종일 언제 도착하냐며 연신 연락해온 간호사들의 독촉까지 받은 터라 더욱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가장 싫은 건 첫 번째 항암의 후유증을 하소연할 시간도 없이 두 번째 항암에 내 몸을 내어줘야 한다는 것. 정말이지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입원한 다음 날, 나는 항암 주사를 맞자마자 단 하루도 병원에서 더는 못 견디겠다는 판단에 바로 짐을 싸서 집으로 달려왔다. 그날 나를 힘들게 한 건 항암제의 약기운이 아니라 병원의 냄새였다. 냄새 자체가 역하다기보다는 나에게 느껴지는 강도가 그러했으리라. 겨울이라 병실의 천장에서 나오는 온풍기의 따뜻한 공기와 더해진, 온 병원을 가득 메운 듯 한 약품의 향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 역한 자극이었다. 사실 나는 후각이 남들보다 둔해서 냄새를 잘 못 맡는데도 말이다.
전날의 무리한 일정으로 몸이 많이 피곤했던 탓에 병원에서 바로 나온다는 건 체력상 무리였다. 보통은 항암제가 온몸에 퍼졌다가 다시 빠져 어느정도 기운이 살아난 후 퇴원을 한다. 하지만 컨디션을 돌볼 여력도 없이 나를 병원에서 뛰쳐나오게 한 그 약 냄새는 정말 그야말로 역했다. 항암 시작 전 상담실 선생님은 병원에 장기입원이 가능하냐는 내 질문에 항암치료를 하는 내내 병원에 장기 입원도 가능하지만 병원 냄새가 힘들어 환자가 못 견딘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생각났다. 정말 그 말이 딱 맞았다.
그 이후 늘 나는 병원에 갈 때마다 약기운도 약기운이지만 특유의 병원 냄새에 반은 녹다운되어 버렸고 사실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 외래진료를 갈 때마다 병원의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하는 그 냄새가 꽤나 힘들다. 그 때문에 신선한 공기에 대한 그리움이 늘 있다. 병원의 청결하지만 인위적인 소독 향 같은 냄새가 아닌 순수한 자연 그대로의 공기를 마음껏 마시고 싶은 것이다. 숲에서 나오는 그 상쾌한 피톤치드향 가득한 청정한 공기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숲이 나에게 주는 것은 신선한 공기만은 아닌 것 같다. 개미들이 뛰어다니고 지렁이와 들 벌레들이 출몰하는 바닥의 흙. 귀를 즐겁게 해주는 노래하는 각종 산새들(가끔 딱따구리도 만났다), 눈을 잡아끄는 귀여운 다람쥐, 예쁜 들꽃, 여기저기 싱싱하게 올라온 신비한 모습의 버섯들,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고 풍부한 산소를 뿜어내는 울창한 나무들까지. 열이면 열 모두 다 온통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은 것이 없는 곳이 숲이었다. 내가 숲에서 만나고 오는 것은 그 생명력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몸과 마음의 치유를 숲에 기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요 며칠은 컨디션이 안 좋아 급기야 응급실 투어 타임을 가졌다. 한동안 외출은 힘들 것만 같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들이 모여사는 숲이 오늘은 유독 더 그리워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