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삶을 인정하는 법
"또 갖다 버리냐!"
"제발 버리면 안 돼요?"
사실 늘 불만이었다. 오랜만에 가도 늘 내가 앉을 공간보다 짐이 차지한 공간이 더 많은 집이. 그중 실제 살림에 쓰이는 물건은 반도 안 되었다. 반이 뭔가. 십 분의 일 정도? 평생 마셔도 못 다 마실 자체 제조 술병들, 십 년에 한 번 쓸까 말까 싶은 커다란 식기구들, 요즘에는 쓰레기통에서 주워도 저것보단 좋을듯 한 각종 플라스틱 제품들, 청소라는 건 이미 포기한 지 오래된 창고방들... 온 집안 가득 오래된 물건들이 쌓이고 쌓여 그 속에 뭐가 들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집에 갈 때마다 늘 청소를 핑계로 아예 왕창 혹은 몰래몰래 이것저것 엄청 버리고 버렸다. 사부작사부작 거리며 일하는 모양새가 아니라 비장한 얼굴로 이걸 확 다 엎어? 하는 얼굴로 말이다. 그래도 티도 안 났다. 내가 버리는 양보다 그 사이 스멀스멀 물건이 늘어나는 양이 더 앞섰으니 말이다. 내 언젠가는 이 집을 통째로 버리리라.
가족들과의 의견차는 집의 환경만은 아니었다. 사실 함께 공유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 점이 나를 늘 허탈하게 했었다. 나는 티브이 시청도 별로 즐기지 않는 편인데 우리 집은 유일한 취미가 TV 보기다. 같이 영화관에라도 가고 싶고 어디 맛집이라도 가고 싶은 나였다. 그렇다고 내가 영화를 좋아하지도, 가고 싶은 맛집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여느 가족들처럼 그냥 가볍게 같이 바람 쐬러 가고 싶었던 것인데 우리 가족은 그런 시간에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그런 외출을 오히려 불편해도 했다. 대신 좁은 집에서 따닥따닥 붙어 앉아 티브이 소리와 술자리로 시간을 보냈다.
술, 담배는 건강을 위해 이제 좀 정리하셨으면 좋겠고 언젠가 한번은 같이 등산이라도 갈 수 있는 시간이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술과 담배는 아빠의 오랜 연인이자 친구였고 때론 목숨 줄보다 더 귀한 것처럼 보였다. 나와 생각이 달라도 너무 다른 아빠를 보고 있으면 가슴속에서 화가 한 덩어리 치솟아 올랐다. 결국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훌쩍 혼자 잠시 외출해버리거나 너무 힘들 땐 말 한마디 없이 올라가버리기도 했다.
함께 뭔가를 순수한 마음으로 즐거워하고 좋아한다는 것,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 내가 원한 것은 그런 단순한 것이었다. 하지만 절대 쉬운 것은 아니었다. 큰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내가 아프고 난 후로도 별반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듯 중병을 앓는 주인공의 하나뿐인 소원은 꼭 이루어지고야 마는 그런 아름다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아빠의 나를 향한 측은지심을 기대하며 “아빠, 나를 위해 금연하시는 거 어때요?(딸의 폐에 암 종양이 생긴 무시무시한 상황 아니던가)”라고 진지하게 부탁드리면 눈이 똥그래지셔서 “말도 안 되는 소리 한다. 그럼 난 무슨 재미로 사는데!” 뭐 이런 식. 역시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래. 나 역시도 아빠를 위해 아빠가 그토록 좋아하시는 음주와 흡연을 옆에서 함께 즐겨드리지 못하니 백번 이해해야 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서 돈으로 해결되는 일이 가장 쉬운 일이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 이것은 사실 기적과도 같은 일이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우리 가족들에게 마음껏 간섭하고 싶었나 보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을 다 고치게 하고 싶었고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함께 하길 바랐다. 그것도 억지로가 아니라 정말 기쁘고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진심으로 말이다. 시키는 대로 하는 것도 힘든데 진심까지 갖추라고 했으니 이런 공산주의보다도 더 지독한 독재가 있을까. 그래 놓고 가족들이 그걸 못 따라준다고 이게 마음에 안 드네 저게 마음에 안 드네 이래서 우리는 안 되네 하며 온갖 억지를 다 부리고 간섭질을 했으니 말은 못 하셔도 내가 집에 올 때마다 아마 많이 불편하셨을 것이다. 반가움 10초 그리고 이틀 내내 불편, 마지막 아쉬움 10초. 추측해보건대 나를 맞던 가족들의 마음이었으리라.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신나게 한판 버리고 혼자 기진맥진하고 있었는데 아빠가 슬며시 물어오셨다.
"니는 이렇게 하고 사는 거(뻥이 아니라 정말 피난민같이 하고 사신다) 못 보제?”
“아빠, 나는 자취하면서 하도 이사를 많이 다녀서 짐 줄이느라 버리는 거에 익숙하지 이렇게 많이 모으고 살면 오히려 불안해.”
“그래, 그렇겠네.”
15년 넘게 잦은 이동이 끊임없었던 딸과 50년 넘게 한 자리에서 살고 있는 아빠였다. 현실에서 늘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며 아등바등한 딸이었고 현실에서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한 아빠였다. 삶의 방향도, 목적도, 이유도 사실 너무 달랐고 생활방식도 당연히 다 달랐다.
"아무리 맞는 말이라고 해도 갑자기 바꾸라고 하면 당연히 무리지."
동생에게 들은 이 말을 곱씹고 또 곱씹어봤다. 그리고 사람의 현재 모습은 어느 한순간에 갑자기 결정지어진 것이 아니기에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에 대해 먼저 이해하게 되었다. 이해하고 나니 그동안의 가족들에 대한 불만은 내 욕심이었다는 것이 보였다. 욕심이 채워지지 않아 화가 났고 짜증이 났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아픈 것을 무기로 이젠 내 마음대로 될 거란 희망에 부풀어 내 욕심을 채우려고 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후, 집에 갈 때마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갑갑했던 마음들이 한결 편안해졌다. 오래되고 낡고 빛바래고 나약하고 초라한 것도 없어져야 하는 ‘나쁜 것’이 아니라 사람 사는 모습 중 하나라는 걸, 단지 사는 모습이 나와 다를 뿐, 그 모습도 소중한 삶이라는 걸 애정 어린 마음으로 바라보게 됐다. 불완전하다고 해서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분명 아니다.
사람은 자신을 통해서 상대를 볼 때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간섭하는 것이 싫듯이 상대도 나의 간섭의 대상이 될 이유는 없다. 부모라도 말이다. 상대의 어떤 점이 마음에 안 들고 사사건건 눈에 거슬린다 해도 함부로 칼을 들이밀며 자르려고 덤비기보다 한 걸음 아니, 두세 걸음, 때론 열 걸음 떨어져서 볼 일이었다. 그리고 드라마틱한 상황은 현실에 없다는 걸 인정하면 마음속 섭섭함도 어느 정도 가라앉는다.
결국 문제는 “왜 내 말대로 안 해줘!”하는 어린아이 투정 같은 내 마음이었다. 지금 잘라내야 하는 건 상대의 모습이 아니라 상대를 향한 내 욕심이라는 것. 포기할 걸 포기하고 내려놓을 걸 내려놓고 이해할 걸 이해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그 후 우리 집이 변한 건 하나도 없지만 대신 예전보다 훨씬 아빠와의 사이는 따뜻해지고 편안해진 걸 느끼고 있다. 그것으로 이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