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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킴라일락 Jul 19. 2019

새로운 계절이 시작될 거야

 병원에서 유일한 나의 말동무인 Y양이 보이지 않는다. 어느 날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감기몸살을 심하게 하며 병실 밖으로 못 나오더니 회복되었나 싶었는데 어느새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서울에 있는 본 병원으로 급히 입원을 했다고 한다. 종종 일어났던 경련 증세가 심해진 걸까? 궁금했지만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카톡으로 안부를 주고받는 것도 행여 부담이 되는 건 아닐까 조심스러웠고 혹시나 좋지 못한 소식이 올까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그녀는 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함께 전기 모기채를 손에 들고 타닥타닥 모기 굽는 소리를 맡으며 산책을 하고, 내 방에 앉아 허브티를 마시며 함께 수다를 떨고, 야외 나들이때면 둘이서 같이 뒤처져 카페에 앉아 요양이나 하던 우리만의 일상들이 아련하고 그리워 왔다. 아무래도 너무 걱정되고 궁금해 조심스레 카톡을 남겼다. 

 "잘 살아있어요? 금방 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

"네 ㅋㅋ" 

하고 답장이 올 것만 같았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옆 병실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혹시나 하고 들어가 보니 짐이 다 빠져있었고 청소가 되어 있었다. 그날 저녁 그곳엔 낯선 환자가 새로 들어왔다. 

"선생님, 혹시 제 옆방에 OO 씨 소식 들은 거 없으세요?" 

늦은 밤, 평소 인상이 좋은 야간 당직 간호사 선생님께 조용히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전달받은 것이 없으니 주간 선생님들께 물어보라는 것. 소식을 모를 리 없을 텐데 말해주지 않는다는 건 무슨 뜻일까. 묻지 않기로 했다. 그때 보낸 카톡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확인 조차 되어있지 않다.




 한방원장님은 내가 처음 병원에 입원했을 때부터, 복도에서 마주친 인상만 보고도 상태가 많이 안 좋은 환자라 여겨 점찍어 놓고는 예의 주시하며 기다리셨다고 한다. 그런 탓에 내가 피부 문제로 진료를 보러 갔을 때부터 건강이야기뿐 아니라 일상적인 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책 이야기까지 다방면에 걸친 이야기들을 많이, 그리고 깊이 해주셨다. 심지어 심리를 어찌나 꿰뚫어 보시던지, 결국 내가 아무에게도 말 못 하는 심경까지 털어놓게 하셨다. 실로 놀라운 능력이다. 나란 사람이 속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일은 백 년 만에 한번 열릴까 말까 하는 바닷길이 열리는 걸 보듯,  정말 보기 드문 일인데 말이다.

  그렇게 속을 좀 터놓았던 원장님은 올 가을, 용인에서 한의원을 개원할 예정이라고 하셨다. 이번 달까지 이곳에 있으신다고. 참 잘 되셨다고, 축하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아쉬워 온다. 그래도 안녕히 가시길.




 한번 웃음이 빵 하고 터지면 쉽게 진정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웃을 일인가 싶은 일로 혼자 한참을 웃음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그들은, 가끔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 애처롭도록 웃음병을 앓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그런 나의 약점을 아는지 모르는지 치료사 선생님 중 유독 비글미 뽐내며 잘 웃기는 선생님이 한 분 있다. 어쩌면 웃을 일 없는 환자들을 위해 더 입담을 과시하신 것인지도.

"제가 국문학과 출신이라서 맞춤법, 띄어쓰기 이런 거 틀리면 그냥 안 넘어가죠. 카톡 틀리게 보내면 저한테 혼납니다. 예를 들어서 '할 수 있다' 쓸 때도 '할' 띄우고 '수' 띄우고...."

"크읔!"

결국 병이 도졌고 치료실 침대 위에 누운 채로 혼자 한참을 떼굴떼굴 구르다시피 했다. 

그는 아는 것 같았다. 웃다 보면 통증도, 컨디션도 어느 정도 회복된다는 걸. 그래서 몸이 안 좋을 때뿐 아니라 기분이 안 좋을 때도 치료실에 가는 시간이 유독 기다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유머 능력만큼이나 실력도 좋았던 그는 아직 젊은 나이에 맞게 의욕이 넘쳤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그는 더 자신을 성장시킬 방법을 고민하다가 해외로 공부를 하러 가기로 결정했단다. 젊을 때 어서 빨리 더 경험하고 더 공부한다는 건 정말이지 적극 지지하는 바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그의 비글미 넘치는 에너지를 못 받는다는 생각에 많이 아쉽긴 했다. 한편으론 그런 다양한 도전을 시도하는 그가 내심 부럽기도 했다. 

 마지막이 될 거라는 그의 치료를 받으며 나도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건강 잘 챙기시고 공부 잘하시고 오세요."

 "다시 여기로 돌아오라고요?"

마지막까지 말장난이시다. 



 

 얼마 후, 외부로 운동을 나가 만나는 테니스 강사님도 이번 달까지만 레슨을 하고 곧 신도시로 가게 됐다고 소식을 전해오고 함께 운동 가느라 차를 얻어 타는 환자분도 8월 정도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하신다. 7월은 한 사람씩 정든 사람들이 떠나가는 계절인가 보다. 이 조용한 곳에 그들은 정착하지 않았다. 어떤 모습으로든, 무엇을 위해서든 이곳을 떠났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이곳을 떠날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당연한 것이다. 환자에게 이곳은 더욱, 오래 머무는 곳이 아니어야 하므로. 다만 어떤 모습으로 이곳을 떠나게 될지, 무엇을 위해 갈지, 아직 방향을 잡지 못했다. 

 곧 이곳을 떠나야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다시 돌아가면 나는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치료를 받으며 건강이 회복되면 마음도 다시 예전처럼 강해져 줄 줄 알았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 예전처럼 신나하며 겁없이 뛰어도 들어보리라. 하지만 그 사이 나는 많이 움츠러든 느낌이다. 그런 의욕들이 어디로 다 가버렸는지. 지금 이곳에서의 시간이 마냥 편했는데 다시 나간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 편이 왠지 두려워온다. 어쩌면 나는 이곳에 '환자'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정당화하며 숨어있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돌아간 곳에서 또 새로운 만남과 새로운 일들이 나를 맞아주겠지. 그렇게 또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겠지. 그 계절을 맞으며 나도 어떻게든 적응하며 살아 가겠지. 지금은 그렇게 믿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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