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in 도쿄
결혼 전 남편이 내게 약속한 것이 있다.
“쟈스민, 네가 하고 싶은 것 만 하면서 살게 해 줄게. 하기 싫은 것도 하면서 살기에 우리 인생은 너무 짧아. “
살면서 처음 듣는 말이었다.
이 세상을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하며 사는 곳‘이라고 정의 내리고 살아온 내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 중 가장 많이 뱉는 말 중 하나가
”그래도 해야지. “이니까 말이다.
남편이 저런 말을 건넨 배경엔 나란 사람이 하기
싫은 일도 열심히 하는 류의 인간임을 알아서일 테다. 또, 빈말은 하지 않는 남편의 진심이기도 했다.
그런 내가 결혼 후 하기 싫은 것이 생겼다.
바로.. ‘귀성길‘
결혼 전 명절은 주로 조부모님 댁을 찾았다. 평생을 수도권에서만 살았고 양가 조부모님도 수도권에 사신다. 말로만 듣던 귀성길을 경험해 봤을 리 만무하다.
결혼 후 처음으로 명절 귀성길에 올랐다. 이거야말로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헬게이트‘였다.
평소 주말에 3시간~3시간 30분이면 가는 곳을 거의 6시간을 가고 있었으니 남편의 안구건조가 극에 달할 수밖에. 운전 공포증이 있는 난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 채 시린 눈 비비는 남편에게 인공눈물을 건넬 뿐이다.
그날은 명절 왕복으로만 11시간이 걸렸다. 하루를 거의 통째로 도로에서 보낸 셈이다.
고생해 준 남편에게 고맙고 함께 운전해 주지 못함에 미안했다.
“쟈스민, 앞으로 명절 기차표 (SRT) 예매 못하면 명절 피해서 부모님 댁에 방문하자. “
“난 괜찮지만, 부모님도 괜찮으실까?”
“이해하실 거야. 일부러 뵙기 싫어서 안 가는 것도 아닌데 뭐. 그리고 명절의 본질이 뭐야? 가족끼리 서로 얼굴 보고 즐거운 시간 보내는 건데 고생하고 힘든 게 뭐 얼마나 의미 있겠어. 명절 이후에 여유로울 때 만나는 게 서로 더 행복하지. “
이 대화를 기점으로 명절 귀성길은 역사 속의 무언가로 남게 되었다. 이렇게 명절엔 한국이 아닌 어딘가에서 보내게 된다.
남편은 ‘본질‘을 중요시 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난 결혼 후 남편의 ‘본질라이팅‘에 당했을 수도 있다.(내가 자의로 당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이 허례허식하는 것들을 모두 없앴다.
결과적으로 결혼 후에서야 진정으로 풍성하고 즐거운 연휴를 보내게 됐다.
결혼 전 명절은 괴로운 나날들이었다. 내가 힘들어서가 아닌 힘들어하는 주변인들을 보기 힘들었다.
그것이 나의 가족이 아니더라도 명절에 얼굴 붉히는
많은 주변인들을 보며 명절=괴로운 날 이란 공식을 만들게 된 셈이었다.
내 삶에 명절은 더 이상 힘든 날이 아니다. 아이가 없는 우리 부부에겐 그저 고요함을 겸한 긴 연휴.
서로 연차와 휴가 맞추기 정말 어려운 상황인 남편과 내가 모든 것을 홀연히 떠날 수 있는 자유의 날이 된 셈이다.
편할 때 오라고 말씀해 주시는 시부모님은 손주 재롱 없이 보내는 명절에 아들과 며느리가 오지 않아도 크게 개의치 않으신 것 같다. 물론 이 사실과 별개로 우리의 편의를 봐주심에 감사할 따름이다.
딩크부부, 아니 오늘은 특별편 답게 딩크라는 수식어를 배제한다. 우리 부부에게 설 연휴는 더할 나위 없이 멋진 명절이자 오래간만에 휴식이 되었다. 연휴 한정 자유부부는 도쿄 디즈니에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본질을 잊지 않는 삶.
꼭 필요한 자세다.
결혼의 본질, 부부의 본질, 가족의 본질, 명절의 본질
본질이 누락된 삶은 왜곡되고 고통스럽다.
누군가에겐 고통으로 또 누군가에겐 휴식과 해방인 민족 대명절, 본질을 잊지 않은 채 진심으로 서로를 위하는 날이 되길 바라본다.
하기 싫은 건 하지 않게 해 준다고 약속 한 남편.
물론, 시부모님을 뵙기 싫지 않다.
오롯이 운전을 도맡아야 하는 그의 피로도와 건강이 걱정되는 마음이다.
그럼에도 본질을 따져가며 교통 체증 헬게이트 앞에서
EXIT(출구)을 제공해 준 반려자와 함께, 마침내 신명 나는 명절은 지금껏 그랬듯 앞으로도 ‘본질‘과 함께 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