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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딩제스 Jun 09. 2017

이해할 수 없는 외로운 고독

이해할 수 없는 외로운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업무도 바쁘지 않고 날씨도 화창하게 좋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나쁠 게 하나도 없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나는 이상하게 외로웠다. 봄도 아니고 가을도 아닌 이 초여름에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외로움에 쌓였다. 고독이라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일지 모른다.

고독해서 그랬을까. 5일 내내 연달아 술을 마셨다. 매번 걸어올 수 없을 만큼 취해 비틀거리며 집으로 간신히 돌아왔다. 옷을 입고 잠이 든 날도 몇 번 있었다.


왜 그럴까…

사실 나는 요즘 정말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여느 때와 같이 아침에 출근하고 책상에 앉아 일을 하고 점심이 되면 밥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커피를 한잔 사서 마시면서 사무실에서 일을 하곤 했다. 딱히 바쁜 업무도 없고 회사에서 누구 하나 괴롭히는 사람도 없다. 야근도 하지 않고 6시가 조금 넘으면 퇴근을 했다. 퇴근할 때 눈치도 보지 않았다. 요즘 같이 이렇게 여유 있게 회사를 다녀본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별 탈 없이 시간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일을 하다가 문득, 퇴근하는 길에 문득, 자기 전에 문득, 아침에 출근하는 길에 문득 내면의 빈 공간 같은 게 느껴졌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그런 빈 공간이 내 안에 있었다. 보통은 잊고 지내는데 그 공간이 손 끝으로 가슴 끝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이 빈 공간을 느끼지 않으려 나는 평소에 쉴 새 없이 무엇인가 계속한다. 원체 외향적인 성격이고 활달한 성격이라 가만히 있으려고 하지 않는다. 주말에는 집안에 있지 않고 사진을 찍으러 다니거나 운동을 하거나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서 돌아다니고 여유가 있을 땐 여행을 계획하거나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퇴근길에 약속을 잡아 친구들과 술을 마시곤 한다. 그렇게 하면 외로운 순간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다. 적어도 느낄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외로움은 양상이 조금 달랐다. 무력감에 빠져버린 것이다. 무력해지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게 된다.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걸 알지만 하고 싶지 않게 된다. 누구라도 불러서 놀고 싶은데 아무도 부르고 싶지 않고 싶어 진다. 혼자 있고 싶다. 무엇이라도 하고 싶은데 하기 싫다.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만 그 무엇도 하고 싶지 않은 기분. 무기력감.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아무것도 ‘할 힘이 안 난다’에 가깝겠다. 정말 힘이 없다. 무력감(無力感)..


이럴 때는 누군가 곁에 있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갑절로 든다. 그 누군가는 내가 무엇을 해도 떠나지 않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편이 되어 줄 것만 같은 사람이다. 아무나 가 아니라 나만을 위한 사람, 그런 사람을 필요했다. 그 사람 곁에 기대면 빈 공간이 조금이라도 채워질 것 같았다. 나 스스로도 채우지 못하는 이 빈 공간을 그 사람은 채워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런 희망이 든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아무도 없다. 아무도 이 공간을 채워 줄 수 없다. 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면 이 빈 공간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로 남게 된다. 내면에 있는 무(無) 공간. 채우려 해도 채워지지 않고 채울 수도 없는 무(無)가 된다.

누구나 이런 느낌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없을 수도 있다. 잘 모르겠다. 남들은 이 느낌을, 이 공간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그러나 나는 이 공간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읽을 때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루키는 이 무공간을 알고 표현할 줄 아는 작가다. 그래서 나는 하루키 소설을 읽는다. 그의 소설을 읽을 때 조금 위로를 받는다.


그러나 이 채울 수 없는 무공간이 느껴질 때 나는 술에 취하고 싶다. 혼자가 아닌 누군가라도 있으면 좋겠다. 이럴 때 그 누군가는 여자여야 한다. 여자였으면 좋겠다. 그냥 친구 같은 여자 말고 여자 같은 여자. 나는 그런 여자를 찾는다. 연락을 하고 카톡을 하고 누구라도 찾고 싶어 진다. 그래야 채워지지 않는 내면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술이든 여자든 무엇으로든 채우고 싶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이것은 ‘싶다’와 같은 욕구가 아니다. 채워'야만’하는 필수적인 것이다. 갈증이다. 채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치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이 물을 필요로하는 타는 갈증이다. 갈구다. 그렇게라도 채우지 않으면 이대로 무(無) 공간에 온 몸이 지배 당해 내 존재 자체가 무(無)가 되어 버릴 것만 같다. 아무것도 없는 내가 아예 아무것도 없는, 완전한 무(無)가 된다. 그래서 무엇이라도, 누군가라도 곁에 있어줬으면 한다. 그 누군가가 채워줬으면 한다. 채워주지 못하더라도 잠깐이라도 적셔주기를.. 갈구한다.


그러나 그런 기대를 채워 줄 사람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내가 관심이 있는 사람은 내게 관심이 없었고 별 관심이 들지 않는 사람이 아주 조금의 내게 더 관심을 보였을 뿐이었다. 그 두 쪽다 아무것도 채워주지 못한 채 기억이 되어 버렸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오히려 더 짙은 무력감이 찾아왔다. 아침에 일어나 머리가 아팠고 비몽사몽 한 채로 출근했다. 사무실에서도 몽롱하게 일을 했고 더 무력해졌다. 그러면 또다시 여자를 찾았다. 이런 날들의 반복이었다.


사실 글을 쓸 수 없을 만큼 무기력 한 날들이 계속되다가 이제 조금 괜찮아졌다. 큰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여행을 다녀와서 긍정적인 기운을 받아서 그런 것 같다. 여행 덕분에 평소로 돌아왔을 뿐이다. 근본적인 것은 바뀐 것은 없다.

나는 조금 괜찮아져 내가 느끼는 이 무(無)에 대해서 써 보고 싶었다. 나는 글로 써야 뭔가 정리가 되는 것 같다. 내 안에 있는게 무엇인지 끄집어내서 단어로 풀어 문장으로 펼쳐놔야 이게 무엇인지 알 수 수 있을 것 같다. 언어가 아니면 정의할 수 없을 것만 같다.


다시 문장이라는 것으로 내 감정을 표현하면 이렇다. 나는 무탈하게 잘 지내다가 고독감이 나를 엄습해 왔다. 나의 고독은 무기력함에서 왔고 그 무기력함은 채워질 수 없는 내면의 빈 공간 때문이다. 무(無)라는 공간.


그렇다면 이 무의 공간은 어디서 왔을까..

이 무(無)가 최초로 느껴진 순간은 사랑 후에 온 이별 때문이었다. 이별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속이 뚫려 버린 것 같았다. 빈 공간이라는 것을 처음 느꼈다. 아주 오래전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랑을 하기 전에는 이런 공간을 몰랐다. 그러나 사랑하고 이별을 후에 사랑이 남긴 행복감보다 더 크고 짙은 무(無)가 내 안에 자리 잡았다.

그 이후로 사랑이 두려워졌다. 두려운 사랑이었지만 다시 찾아왔고 또 그만큼의 아픔을 주고 떠나갔다. 내가 떠나보낸 건지도 모른다. 아무튼 결론은 똑같다. 나는 혼자 남겨졌다.


매번 사랑을 할 때마다 나는 이 무(無) 공간이 채워지기를, 채워 주기를 기대했다. 그 사람을 나를 채워주는 것만 같았다. 같이 있을 땐 차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별 후엔 이 무(無) 공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다행이라고 한다면 처음 겪은 이별 후에 빈 공간의 크기보다는 많이 줄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불행이라고 한다면, 이제는 아무도 이 빈 공간을 채울 수 없을 것 같다. 누가 과연 채워 줄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기나 할까. 어쩌면 이 마른 샘은, 비어버린 공간은 나 스스로가 채워야 할지도 모른다. 아무도 채울 수 없다는 것은 기정사실인지도 모른다. 기대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내게 희망 고문일 수도 있다. 이제 포기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믿으면 안 되는 것일까,

사랑을 믿으면 안 되는 것일까..


여전히 잘 모르겠다. 사랑을.

여전히 사람을 기대하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빈 상태로 남아

여전히 사랑을 찾지만

이 빈 공간을 채울 수 있을지 없을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 비어 있는 채로 살다 죽을지도 모른다. 아마 대부분 그렇게 살다 갈지도 모른다. 무(無) 공간을 그대로 비어 있는 채로 다시 무(無)로 돌아간다. 어쩌면 그게 자연스러운 것 같다.


그러나, 조금 그래도 희망을 같고 싶은 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땐, 내 빈 공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무(無)가 아니라 나는 분명 유(有)였다. 완전히 존재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사랑하는 순간에는 분명히 나는 유(有)였다. 내가 나로서 온전히 살아 있는 것처럼. 내가 온전히 나로서 존재했다.


모순적인 말처럼 들리겠지만 사랑 때문에 나는 이 무(無) 공간이 생겼고 또 사랑으로만 이 무(無) 공간을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대체 사랑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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