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직딩단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직딩제스 Jul 23. 2017

종속된 삶

용돈 받는 삶에서 용돈 드리는 삶이 되었지만..

용돈 받는 삶과 용돈 드리는 삶

경제력이 없는 학생 때는 부모에게 용돈을 받으면서 주로 생활하고

경제력이 생긴 사회인이 되었을 때는 부모에게 용돈을 드릴 수 있는 여건이 된다.

이 두 삶을 가르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경제력이다. 경제적으로 자립을 해야 비로소 진정한 '자립'이라고 할 수 있고 어느 정도 부모의 손을 떠나서도 살 수 있게 된다.


즉, 경제적 자립은 나의 삶을 내가 얼마나 주도적으로 또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느냐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인 것이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누군가에게 종속되어 있을 때, 우리의 삶은 그 지분만큼이나 비독립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삶에서 독립적, 자립적, 주체적이라는 단어는 멀게만 느껴진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회사라는 조직은 아주 강력한 경제력을 쥐고 있다.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이라면 월급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노동을 제공하고 월급을 받아 생활을 영위해 나간다. 그러므로 직장인의 월급, 경제력을 쥐고 있는 회사에서의 직장인은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주어지 건 해야만 하는 구조인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의 회사원에게 주체적인 무언가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스스로 하고, 자신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방향대로 일을 이끌어 가고, 자신의 원하는 색깔을 스스로 색칠해 나가는 것, 그런 방향이 조직의 방향과 일치한다면 큰 문제가 안 되겠지만 그 방향이 다를 때, 맞출 수 없을 때 직장인은 피동적이 사람이 된다. 어쩌면 당연한 거지만, 조직의 방향을 거스를 수 없는 것이 직장인의 숙명적인 운명이 아닐까..


퇴근도 눈치를 봐야 하고, 있는 휴가도 윗사람 눈치를 봐야 쓸 수 있는 현실

보고서 내용, 이메일 내용, 자신이 쓰는 대부분의 것들이 윗사람에 의해 수정되고 필터링되는 구조에서 주체적으로 일하고 살아가기란 매우 요원해 보인다.


어쩌면 우리는 경제적인 자립을 위해 회사라는 조직을 선택했지만, 경제적 자립을 제외하면 내 삶에서의 주체성, 내 삶의 자립은 아직 미완성이 아닐까. 용돈을 받는 부모님에게서는 자유로워졌지만, 월급을 주는 회사로부터는 더욱 귀속이 된 삶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어쩌면 직장인은 회사에 있는 한 계속 미생(未生)의 존재로 남을지 모른다.

완생(完生)을 위해서는 조직을 위한 삶이 아닌 내 자신이 완성되는 삶의 방향으로 나가야지만 완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직장인 #삶 #주체성


매거진의 이전글 동요(動搖)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