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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딩제스 Sep 08. 2017

입사 7년 차

오늘은 아니 어제는 아니 엊그제는 입사 7주년 되는 날이었다.
2010년 8월 30일 입사.
7주년, 새삼 놀랍고도 긴 시간이다.

개인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날이라 뭔가 감회를 쓰고 싶었지만 첫 줄만 몇 번을 쓰다가 지우고 말았다. 그 후로 몇 번을 더 써보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왜 이렇게 안 써질까 생각해보니 이 7주년에 대해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축하를 해야 할지 위로를 받아야 할지 내 자신 스스로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사 7주년이었던 며칠 전 수요일도 여느 수요일과 다르지 않게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점심을 먹고 오후 일과를 마치고 퇴근했다. 사실상 평일에 무언가 하는 것은 매우 피곤하다. 특히 어떤 이벤트를 한다는 것은 더더욱 피곤한 일이다. 연락하던 몇 명의 동기에게 안부를 묻고 위로의 말을 건네고 하루가 지나갔다. 그리고 집에 오자마자 여느 평일과 다르지 않게 피곤함을 이불로 삼아 덥고 잠이 들었다.


입사 7년, 눈을 떠보니 7년 차 중견 회사원이 되어 있었다.


입사 7년, 눈을 떠보니 7년 차 중견 회사원이 되어 있었다.
그동안 내가 이룬 게 있나 돌이켜 봤다. 어떻게 보면 이룬 게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없는 거 같기도 하다. 연봉과 직급이 오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많은 경험을 했다. 첫 월급을 받아서 부모님 속옷을 사드렸고 해외출장 외국인 고객 앞에서 영어 프레젠테이션도 하고, 보고서도 쓰고 공장에도 들어가 보고 각종 사무 업무를 많이 했다. 해외 (중국) 출장도 빠질 수 없다. 회사가 아니었다면 결코 경험해보지 못했을 일들을 회사에서 경험하고 또 그 안에서 성장했다. 그리고 월급을 받아서 이런저런 할 수 있었던 것까지 합하면 이룬 게 많은 것도 같다. 경험적면으로 보면 대학생 때와의 비교해 지금의 내 경험치는 2~3배를 넘어 10배는 커진 것 같다.

그런데 앞으로가 문제다. 연봉과 직급은 앞으로도 오르겠지만 더 성장하고 더 경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의구심이 든다. 회사 내에서 주어진 역할만 하다 보면 더 성장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이렇듯 성장 측면에서 보면 확신이 서지 않는다. 더 이상의 기회, 더 이상의 성장 동력은 보이지 않는다. 연봉 상승, 직급 상승 어쩌면 이 두 개만이 남았다. 어쩌면 그게 다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더 이상 이룰 수 있는 게 없어 보이고 더 이루고 싶은 게 없다.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회사가 꿈을 이뤄주는 곳이 아니라를 것을 알아 버렸다. 물론 처음에는 이 회사에 취업이 꿈이었다. 그러나 이제 회사라는 조직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위에 사람이 ‘시키는 것을 잘 해야만 하는 곳’이 회사라는 것을 이제는 너무나 잘 안다. 나의 의견을 개진할 틈은 없다. 성장, 동기부여는 고사하고 시키는 것을 어떻게 하면 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나의 포부는 없다. 오래 살아남는 것이 포부라면.. 할 말이 없다.



그러면 왜 계속 회사를 다니는가


그러면 왜 계속 회사를 다니는가. 지금은 회사를 먹고살기 위해 다닌다는 표현이 가장 적합할 것이다. 이 ‘먹고 살기’라는 일반인이 살아 가는데 있어 가장 핵심이다. 갑부가 아니라면 '생계'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이 '생계’ 앞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좋아하는 일은 '꿈’이 아니라 잠꼬대처럼 허황되게 들린다. '생계' 앞에서는 꿈도 사라진다. 여기에 가족의 생계까지 달려 있으면 나 자신도 사라진다.
나의 꿈은 설 자리가 없다. 나는 그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회사를 묵묵히 다니며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오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게 나의 역할이다.

생계유지.
그렇다 생계를 위해 회사를 다닌다.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월급이 없으면 당장 생활이 막막하다. 카드값, 보험료, 집세, 적금 등 각 종 요금들.. 당장 이 비용들을 막아낼 자신이 없다. 물론 퇴직금을 받으면 어느 정도 생활유지는 되겠지만 그 기간은 한계가 있다. 퇴직금이 바닥나는 순간부터 생계 절벽이 시작된다. 진정한 백수가 된다.

회사 7년 차.
성장의 정체. 나갈 수도 머무를 수도 없는 상태.
머무르면 도태되고 나가면 아사한다. 이도 저도 결정을 못 내리고 시간만 흐른다. 흐르는 시간 속에 나이만 먹고 꿈은 멀어져만 간다. 이렇게 살다가 결혼하고 애 낳으면 애기 크는 거 보면서 만족해야 할까. 물론 대부분 가정에서 에너지를 찾고 행복을 찾는다. 그런데 미혼인 나는 가정도 없고 애기도 없다. 나중에(?) 생기겠지만 나는 지금 당장 삶의 의미를 찾고 싶다. 나의 가치를 높이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나만이 능력으로 먹고살고 싶다. 회사에 기대지 않고 조직의 힘에 굴복하지 않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고통스럽게 밤늦게까지 하지 않고 '나를 나로서, 오롯이 나로 존재'하는 것.
이것이 그렇게나 허황된 꿈일까..

한 번 사는 인생, 나의 인생.
나는 내년에 죽는다 해도 후회하지 않을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지금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 나는 아직 해보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다. 나는 아직 가고 싶은 곳이 너무나 많다. 나는 아직 알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다.


남은 나의 인생은 역할로서의 삶이 아닌 즉, 주어진 일을 해야 하는 삶이 아닌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나로 살고 싶다.
직장인이 아닌 '나로서' 살아보고 싶다.


- 입사 7년 차 직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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