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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딩제스 Jan 03. 2018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책방에서

책방에서의 단상

아주 조용한 책 카페였다. 
사람은 적었고 공간은 아늑했다. 바깥 공기가 차가워 책방 안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다.

나는 편안한 소파에 앉아 시집을 읽었다. 아주 오랜만에 읽는 시집이었다. 시의 한 문장, 한 음절을 아주 천천히 읽어 내려가다 문득 마지막으로 읽은 시집이 언제였는지 떠올려 봤다. 이해인 시집이었는지, 류시화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주 오랜만의 시집이었다. 도종환 시집 ‘당신은 누구십니까.’  

카페에서는 인생의 회전목마 피아노 버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람이 거의 없어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릴만큼 고요했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고 공기는 따뜻했다. 시의 음절과 피아노 운율이 하모니를 이루는 공간이었다.


시집을 읽다가 문득 나는 신명조체가 참 이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획의 시작과 끝이 얇고 뾰족한 게 마치 붓으로 쓴 것처럼 예리했다. 끝은 뾰족했지만 전체적인 글씨체는 부드러웠다. 생각해 보니 온라인에서는 대부분 딱딱한 글씨체를 썼다. 고딕 또는 굴림, 선의 시작과 중간 끝이 모두 같은 굵기였다. 끝은 깎은 듯 날카롭고 글씨체 전체가 컴퓨터로 찍어낸 정 직각이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도종환

그런 딱딱한 글씨체만 보다가 종이 위에 쓰여진 신명조체를 보니 매우 새로워 보였다. ‘ㄱ’과 ‘ㄴ’의 모양도 단순히 각도만 바꾼 것이 아니라 그 모양 자체가 달랐다. ‘ㄴ’의 아랫선은 곡선이었고 ‘ㄱ’또한 받침 ‘ㄱ’과 자음 ‘ㄱ’도 모양이 달랐다. 글자 하나, 하나 자기 모양으로 존재했다.

나는 시집의 글과 함께 글씨체까지 좋아져 글자 모양까지 음미해 가며 시를 읽어 갔다. 아마 그렇게 한 글자 한 글자를 또박또박 본 것은 처음이 아닐까.. 하루에도 수 백, 수 천자의 글자를 보고 타이핑을 치지만 그렇게 글씨체와 단어를 음미하면서 본 건 처음이었다.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글도 천천히 읽혀졌다.
그 어느 때보다 천천히 흘러간 일요일 오후였다. 시간이 이렇게 천천히 흘러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시간과 공간은 같이 존재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시간만 따로 있거나 공간만 따로 존재할 수 없다. 책방이라는 공간의 시간과 사무실에서의 시간은 엄연히 달랐다. 시를 읽는 1분과 모니터를 보는 1분은 달랐고, 사랑하는 이의 눈을 보는 1분과 스마트폰을 보는 1분은 같은 60초 일지라도 그 시간이 다르게 느껴진다.

우리는 시간은 통제할 수 없지만 공간은 선택할 수 있다. 시간이 느리게 가는 곳과 시간이 빨리 가는 곳. 여태까지는 시간이 빠르게 아니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는 공간에 주로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곳에 더 있고 싶어 졌다.

이 공간이 매우 좋아질 것 같다.
그리고 늘 꿈꿨던 것처럼 언젠간 사방이 책으로 둘러 쌓인 그런 공간을 가지고 싶다.


#책방에서_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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