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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에 야채 팔고 계신 할머니

by 직딩제스

집에 가는 길에 노상에서 한 할머니께서 야채를 팔고 계셨다. 나는 주로 공덕역에서 버스를 갈아타는데 오늘은 261을 타고 와서 조금 돌아왔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오늘 아침 출근길에도 이 할머니는 이 자리에 계셨다.
'아이코.. 아침 8시부터 지금까지, 저녁 8시까지 여기서 야채를 팔고 계셨던 것인가..'
그 생각에 미치자 나는 갑자기 울컥했다. 아.. 나는 에어컨 나오는 사무실에서 있는 동안 이 할머님은 이 더위에 온종일 밖에 계셨던 거구나..

그냥 지나갈 수가 없어서 부랴부랴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집에 야채 필요한 거 없어요?" 하고 여쭤 봤다.
"아니 왜 갑자기?"
"아, 여기 퇴근길에 야채 싸게 파는 데가 있어서 사가려고요." (사실 야채가 싼 지 비싼지 모른다.)
"어, 그래? 뭐 있는데?"
"뭐 오이랑 호박, 가지, 콩나물, 양파 등등요"
"그라믄 오이랑 뭐 가지만 몇 개 사온나. 요즘 야채도 비싸서.."
"오이는 얼만데요?"
"한 뭐 3개에 2천 원 하고 그란다."
"네네, 그럼 몇 개 사갈게요."
그렇게 전화를 끊고.
"안녕하세요. 할머니~ 여기 오이 어떻게 해요?"
"으응~ 4개 2천 원."
심지어 싸다. 그러면 가지는요.
"가지도 4개에 2천 원."
"그러면 저 가지랑 오이 이렇게 주세요."
"으응~ 그럼 4천 원."
"넵"
"아니 근데 젊은이가 야채를 사고 그래?"
"아.. 어머니가 필요하다고 하셔서요. 지나가는 길에 생각이 났어요."
"아휴~ 그래? 어머니가 맛있는 것도 해주시구 좋네."
"네네, 가지 무침 맛있게 잘하세요." ^^
"아, 그런데 혹시 아침에도 여기 계시지 않았어요?"
"으응~ 아침에 왔지."
"그럼 여기에 땡볕에 하루 종일 계셨던 거예요?"
"아니아니~ 저기 양산 치고 있었지."
가리키는 곳을 보니 파라솔과 돗자리 같은 게 있었다.
"아.. 그러셨구나. 그래도 많이 더우실 텐데.."
"근데, 이렇게 있어도 요즘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 더워서 밖으로 안 나와.."
"아, 그렇죠. 너무 더워서.."
그러면서 지갑을 열어보니 5천 원짜리 밖에 없었다. "저기 저 호박도 2개 더 주세요."
"으응~ 호박은 2개 천 원. 그럼 총 5천 원."
"네, 여기 있습니다."
"아이고, 젊은이 고마워."
"아아, 아닙니다."


사실 할머니께서 고마워하실 건 없었다. 나는 가격을 지불하고 물건을 샀을 뿐이다. 오히려 더 많이 사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 든 건 내쪽이었다.
"얼른 마무리하시고 들어가세요. 또 오겠습니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짠한 기분이 들면서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길을 건너오는데 돌아가신 친할머니 생각이 났다. 내가 너무 어릴 때 돌아가셔서 할머니에 관한 기억이 많진 않은데 아마 살아계셨다면 저기 저 할머니 정도 연세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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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마트다 무슨 할인마트다 우리는 에어컨 빵빵 나오고 주차장 넓은 곳에서 쇼핑을 한다. 재래시장이고 노점상이고 잊은 지 오래다. 있어도 불편해서 잘 안 간다. 우리가 편한 곳으로 눈을 돌린 사이 한편에선 불편하게 장사를 하고 계신 분들이 있었다.

고령화 사회라고 한다. 노인빈곤율 OECD국 중 Top이라고 한다. 정부는 계속 무관심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 봤지만 명확히 떠오르는 답은 없었다.
야채 5천 원어치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딱 이 무게만큼이라도 할머니의 마음이 가벼워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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