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지의 걸작 Jun 04. 2023

프루스트와 인생, 그리고 시간

세 달의 시간을 정리하며

입대 전 나는 삶의 이유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집착하듯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었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탐냈다. 그때 난 사람은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희망으로 살아간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말이 조금은 맞는 것 같다. 내가 훈련소에서 그렇게도 힘들어 했던 것이 결국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으니.


첫 주는 입대 전의 삶을 떠올렸고, 슬픔 또는 허무함에 사로잡혔다. 이후에는 소중한 사람들과 제한적으로 소통할 수 있음에 고통받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보내준 편지 덕분에 무사히 수료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불을 끄는 일을 하게 되었고, 특기학교에서는 이것과 관련된 일들을 배웠다. 훈련소보다는 자유로웠으나,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2년동안 일할 곳을 결정한다는 사실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리고 자대에 왔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기 시작했다. 100페이지에 달하는 도입부는 잠을 자지 못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화자의 유년기로 나를 유도했다. 그 과정에 어색함이 없어 두 번째 독서에서야 나는 도입부와 본문을 구분할 수 있었다. 그 뒤에 따라오는 철학, 예술, 역사에 대한 프루스트의 심도있는 설명, 대화와 대화 사이에 삽입되어 삶의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서술까지, 나는 프루스트에 매료되었다.


프루스트는 바그너의 음악에 정통하며, 조지 엘리엇의 소설을 동경한다. 미술사에도 능통하여, 프리미티프 미술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곳곳에 드러난다. 또, 칸트와 쇼펜하우어 철학의 흔적이 직간접적으로 드러나며, 홉스 철학을 주제로 한 페이지를 할애한다. 인문학을 두루 공부한 사람이라면, 그를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들뢰즈가 프루스트를 자신의 문학 이론의 모범으로 삼았다는 것이 이해가 된다.


프루스트의 책이 이야기하는 것은 ‘삶’이다. 인생의 아름다움은 극적인 변화에 있다. 어린 시절을 함께한 친구들 중 누구는 바라던 목표에 도달하고, 누구는 사소한 불운이 겹쳐 몰락하게 된다. 몰락한 자가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회상하며, 유년기의 친구를 낯설게 인식하는 것은 삶의 매우 중요한 이야기이다.


인생을 바쳐 쓴 글인 만큼, 그의 글에서는 수많은 인물이 성공하거나 몰락한다. 화자, 혹은 프루스트 자신 또한 성공과 몰락의 경계를 넘나든다. 프루스트는 오랜 시간동안 자신이 글에 재능이 있는지를 의심했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상당 부분을 집필한 뒤에야 본인의 가능성을 확신했다고 한다. 그 깨달음은 곧 자신의 삶 그 자체가 소설의 주제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다.


나는 힘겹게 성공을 쟁취한 사람을 존경한다. 끊임없는 자기 불신을 겪어 온 프루스트나, 책을 출판해줄 곳이 없어 남편이 출판사를 차려야 했던 버지니아 울프, 파리에서의 여러 공연이 실패했던 바그너.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룰 수 없다는 의식이 생겨난 뒤로 나는 이러한 사람들에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한두 번 실패하더라도, 결국 저 사람들처럼 원하는 바를 이룰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런 일환에서 실은, 근 한 달 동안 소설을 썼다. 인생의 꿈이 작가이기에 주어진 시간을 활용해 나에게라도 만족스러운 작품을 쓰고 싶었다. 지금에서야 돌아보니 조악하여 누구에게 보여줄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쓰고픈 주제가 많다. 소설을 쓰며 나는 내게 시간이 있음을 처음으로 느꼈다. 대개 우리는 시간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며, 한 국면의 끝에 이르러서야 시간이 없음을 인식한다. 반면 나는 훈련소와 특기학교를 거치며 나만의 시간이 없음을 끊임없이 의식하였고, 이제는 나만의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곳에 오게 되자 그 대조에서 시간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야 느끼는 것은, 시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시간은 두렵기도, 아쉽기도, 만족스럽기도 하다. 전역 후 미래를 그려볼 때면 형언할 수 없는 막막함에 가슴이 아프다. 동시에 일과 중에는 눈치를 보며 내 공부를 포기하고, 일과 후에는 휴대폰에 눈이 팔려 하기로 했던 것들을 이루지 못하는 밤들을 보낼 때면 공허함을 느꼈다. 그럼에도 나는 주어진 시간을 활용하여 책을 읽거나 글을 써오고 있는데, 사회에서 내게 주어지던 과도한 업무들에서 해방되어 순수하게 문학에 집중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재밌는 경험도 많이 했다. 어두운 밤, 무지개빛 활주로를 지날 때면 나는 땅에서 별을 본다. 낮에 활주로에서 작업을 할 때 세상은 나에게 열려있다. 아무 것도 나의 시야를 가리지 못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단 하나, ‘시간’과 함께 한다. 시드니에서의 시간 이후로 나에게는 시간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누구든, 나와 만날 수 있다면, 나는 시간을 말하고 싶다. 그것만큼 중요하고 재밌는 주제는 없으니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