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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경 Jan 11. 2023

계단

  남편과 광교산 등산을 나섰다. 정말 오래간 만의 산행이다. 예전에는 한 때 토요일마다 광교산을 올랐지만 고등학교에 나가고부터는 등산할 짬이 없어 포기하고 있다가, 겨울방학을 맞이하여 다시 남편과 함께 나온 산행이다. 등산복도, 등산장비도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채, 산책 나서듯이 나서는 것이 우리 부부의 일상이다. 그리고는 입구에 들어서면서  '아이고, 등산스틱을 가져올 걸'하고 후회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다행히 오늘은 등산화에 장갑은 챙겨 왔다. 날씨가 많이 풀렸지만 아직도 등산로 군데군데는 얼음판이다. 입구에 차를 대면서 한 번 얼음판에 넘어지고부터 정신이 바짝 든다. 

"절대 평지산책만 해라. 큰 일 난다. 우리 집안은 엄마 유전자가 있어서 뼈가 정말 약하다. 절대 산지를 오르지 마라."

작년 가을에 언니는 집 뒷산을 오르다가 넘어져 다리를 다쳐 깁스하고 치료하느라 벌써 넉 달째 고생하고 있다. 언니의 '절대, 절대 요주의'가 새삼스레 떠올라 조심조심 산을 오른다.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간단한 등산복에 배낭과 스틱, 물은 필수품으로 가져오는데 우리 부부는 이런 준비성이 정말 부족하다. 평산복에 물 한병 가져오지 않은 빈 손이다. 


  학교선생님들과 점심식사 후 커피숍에서 차 한잔을 마시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여행이야기가 나왔다. 

"전 남편이 여행스케줄을 다 짜요. 심지어 물품까지도 남편이 다 준비해요"

"와~ 부러워요. 우리 집에서는 제가 다 계획해요. 저는 남편이 짜는 계획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요. 물품도 잘 알아보지 않고 아무 데서나 사요. 그래서 신뢰할 수가 없어서 제가 꼼꼼히 알아보고 계획을 세워요."


두 부류로 선생님들의 편이 갈린다. 선생님이 계획을 세우거나, 아님 남편 혹은 아내가 세우거나.

"우리 집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에요. 어디 놀러 가자고 하고선 차에 시동 걸면서 '어디 가지?' 하는 게 저의 집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속 편하게 패키지로 가요. 계획을 잘 짰니, 못 짰니, 싸울 필요도 없고, 준비할 필요도 없으니까요."

내 말에 선생님들이 재미있다는 듯이 까르르 웃는다. 그래도 한 선생님은 아쉽다는 듯이 여행계획 짜는 순간부터 가슴이 들뜨는데 그런 기분을 맛보지 못하실 것 같다고 안타까워한다. 할 일이 너무 많아 계획 짜면서 들떠 있을 시간도 없다고 말하려다가 '너무 삭막한 인생'으로 보일까 봐 미소 짓고 입을 다물었다.  


  이런 성향의 남편과 나는 얼음판이 지천인 등산로를 바라보며 등산막대를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못내 아쉬워한다. 어쨌거나 앞에는 산이 있고, 길은 있어, 올라가야 하는 일만 남았다. 남편과 나는 쉬엄쉬엄, 조심조심 오르기로 했다.


"날다람쥐 같이 잘 오르더니만 오늘 왜 이렇게 느리지?"

남편은 헉헉대는 나를 뒤돌아보며 말한다.

"나이가 들었나 봐요."

나는 이 말을 하면서 웃었다. 


  작년 봄, 남편과 남편의 친구 두 사람과 나, 이렇게 산행을 했다. 

'아니, 아내들은 왜 다 집에 두고 남자들만 왔지? 나만 따라왔나?' 좀 멋쩍었지만  평소 알던 사람들이라 그냥 가기로 했다. 그때 나는 정신력으로 버텼다. 혼자 여자인 나 때문에 산행이 지장 받으면 안 되기 때문에 앞장서 걸었고 앞장서 가파른 산을 오르내렸다. 그때 남편은 친구 두 사람의 짐이 되었다. 오르지 못해 친구들이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고. 지금 생각해 보니 심장이 좋지 않아서 산행하는 것이 몹시 힘들었을 것 같다. 작년 5월에 심장수술을 받고 나서, 지금은 산을 오르는 것이 훨씬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수술 후, 남편은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친구분들과 산행을 했고, 내가 가고 싶다고 한 북한산도 다녀왔다. (첫 산행을 할 때 나보고 어떤 산을 가보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내가 북한산이라고 하니, 산행을 잘하시는 그분이 '북한산! 고난도 산이어서 초보자는 힘들다'라고 한 산이다. 또 학교에서 매 주말 산행을 하는 선생님에게 어떤 산이 가장 아름다운 산인지 말해보라고 했을 때 북한산이라고 해서, 나도 이 산을 말한 것이다.) 그때 친구분들이 나를 보고 날다람쥐 같다고 했고, 남편보고는 심히 걱정된다고 한 말이 생각난다. 순전히 정신력으로 버틴 것인데.


정신력! 나는 정신력 하나는 강한 것 같다.  이번 고등학교 2학년 담임을 생전 처음으로 해 보면서, 내가 또한 느낀 점이다. 2학년 교무실의 12명의 선생님들이 나를 보고 칭찬 반, 걱정 반으로 대단하다고들 했다.(속으로는 무모하게 뛰어들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담임이 처음이라 하나하나 배워야 했고, 고등학교가 처음이라 영어수업을 하나하나 준비해야 했다. 수능특강 영어지문의 속 뜻이 어찌나 어려운지, 나는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가르쳤다. 또 내가 맡은 반은 여학생들이 14명, 남학생이 9명으로, 여학생들은 매달 꼬박꼬박 생리결석(인정결석으로 처리됨)을 사용하고, 남학생 한 명은 학교에 오는 것이 본인에게는 커다란 스트레스여서 조퇴 내지 질병지각을 날마다 하고, 또 한 여학생도 별로 학교에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툭하면 결석을 하다 보니, 12반 중에서 출석계가 매달 두툼한 한 권으로 나온다. 마음씨 좋은 출결 담당선생님이 매달 수고 많으셨다고 인사하시곤 했다. 나 또한 첫 달은 출석계를 정신없이 정리하다가, 다음 달부터는 '이 아이들이 너무 한 것 아니냐'는 생각에 결석에 대해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었지만, 별반 달라지는 것이 없어서 '내가 영어를 가르치러 왔나? 아님 출결 정리를 하러 왔나?' 하고 자책한 순간도 있었다. 


   2학년 부장이자 같은 영어과로 1반부터 4반까지는 부장선생님이 가르치시고,  5반에서 8반까지는 다른 한 여선생님이, 그리고 9반부터 12반 까지를 내가 가르쳤다. 1학기에는 앞반이 이과성향의 반이어서 부장님이 가르치는 반이 늘 영어성적이 좋았던 것 같다. 2학기에는 내가 가르치는 9반은 모든 면에서 우수한 반이어서 영어성적도 1등이다. 그런데 마지막 기말고사에서 9반 아닌 내가 가르치는 다른 반이 최고의 영어성적을 내었다. 나도 놀라고 담임 선생님도 놀랐다. 


"영어 가르치는 거야 어떤 의미에서는 중요하지 않아요. 생활기록부를 정말 잘 써야 합니다. 생기부가 중요해요." 


부장님이 수시로 하시는 말씀이다.  소위 세특, 즉 영어교과세부특기사항은 2024년 대학입시에서 자기소개서가 없어지기 때문에 특히나 중요하다고 강조를 하신다. 도대체 고등학교 세특을 본 적이 없으니 감이 잡히지가 않았다. 

"부장님 쓰신 세특 좀 보여주세요. 봐야 감을 잡을 것 아닌가요?"

부장님은 한 장을 복사해서 참고하라고 주신다. 그 용지를 이리 읽어보고 저리 읽어보면서, 세특에 무슨 원리가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했다. 그리고 인터넷 여기저기를 뒤져보면서 나도 나름대로 감을 잡게 되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중간중간에 있는 수행평가를 채점하고 나서, 남들보다 일찍 생기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특성을 살피고, 발표를 시키고, 발표문을 제출하게 했다. 작년 2학기에 토, 일요일을 쉬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또 온라인 대학 마지막 학기까지 겹쳐서 정신적으로도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다. '할 일이 태산 같다는 말이 이런 의미이구나'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교무실의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생기부로 힘들어할 때, 나는 거의 마지막 정리단계였다. 그리고 제출하는 날, 다른 선생님들보다는 조금 일찍 제출함에 서류를 집어던졌다. 문서를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큰 스트레스였기 때문이다. 교무실의 모든 선생님들이 놀라워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얼마나 밤잠을 설치며, 스트레스받으며, 새벽마다 '하나님, 저를 도와주세요. 저에게 지혜를 주세요."라고 기도했는지를 모를 것이다. 오로지 정신력 하나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이 한 학기를 마무리한 것이다. 


  남편은 설렁설렁 걷다가 본인도 계단에서 쭈르르 미끄러졌다. 나보다 더 많이 넘어져서 옷에 진흙까지 묻혔다. 

"아이고 조심해요!"

우리는 마주 보면서 서로의 조심을 당부한다. 젊은 시절, 별로 잘 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그렇게 잘 난 척하던 사람이, 이제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 세월의 물살에 깎이고 닦인 결과일까? 한편으로는 남편에 대해 애잔한 마음이 든다. 

  

  언 땅, 녹아서 질펀한 땅을 밟고서 곧 정상에 다다른다. 그런데 이곳에 엄청난 수의 계단이 있다. 남편과 나는 계단의 줄을 잡고서 한 계단, 한 계단을 오른다. '이곳에 계단이 없다면 정상에 오르는데 얼마나 더 힘이 들까?' 이 생각을 하니 지루하고 힘든 계단이 고맙기 그지없다. 그렇다. 우리 인생에는 힘든 시기를 그래도 잘 지내게 도와주는 계단들이 많았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이번 2학기의 학교생활이 그렇다. 2학년 부의 부장선생님을 포함한 12명의 선생님들이 너무 좋았다. 최상의 팀워크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최선을 다해 도와주셨다. 그들은 계단이었다. 일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그들의 도움을 한 계단, 한 계단 밟고 나는 올라온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를 '운이 좋다'라고 하는데, 나는 도움을 준 선생님들이 너무나 고맙고, 또한 이런 환경을 예비해 놓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말 내 인생에 이런 계단이 많았다. 도저히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에 하나님은 계단을 놓아주셨다. 

안동의 국립대학교에서 강의를 오래 한 후, 남편의 직장을 따라 서울로 올라왔다. 학교를 떠나 산 지 18년 만에(나는 얼마의 세월이 흘렀는지 계산해 보지 못했는데, 이번 고등학교에서 면접을 보면서 교감선생님이 18년간 무엇을 했는지를 물으셨다.) 학교로 다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간제 자리에 남편의 말로는 50통쯤 이력서를 넣은 것 같다. 그런데 아무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답답했다. 이제는 이력서를 그만 넣으리라고 생각하고, 우연히 지역교육청의 홈페이지를 뒤적이다가, 한 학교에서 영어선생님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전화를 했다.

"혹 영어선생님을 뽑고 있나요?"

"네. 뽑고 있습니다. 교감입니다. 어디 사세요?"

"저, 수지에 살고 있는데요."

"아! 그래요? 그럼 이력서를 가지고 지금 학교를 방문하실 수 있나요?"

"네. 알겠습니다."

이력서를 가지고, 생전 처음 가 보는 곳으로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갔다.

'면접을 본다는 건가? 이게 뭐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남편과 함께 간 학교에서, 교감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일부터 나오셔서 일을 배우세요. 그리고 저도 수지에 사는데 제 차가 지금 수리 중이어서 혹시 아침에 올 때 저를 좀 태워 주실 수 있으세요?"


나는 한편으로는 너무 놀랍고 한편으로는 너무 기뻤다. '차 좀 태워드리는 거야 뭐가 어때서'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바로 옆의 아파트였으니까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각 학년이 두 학급인 총 6 학급이 있는 작은 학교. 그 학교는 나에게 일을 가르치지 않으면 학교가 돌아가지 않는다. 행정실무사와 모든 선생님들이 나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나는 그곳에서 18년의 공백을 뛰어넘으며, 학교의 일을 다시 배웠다. 그런데 나와 거의 동년배인 교감선생님과 같이 학교를 오고 가는 일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마침 집의 전세계약도 끝나서, 주말 동안 나는 다른 곳으로 이사가게 되었다. 이제 교감선생님의 아파트와 거리가 생기게 된 것이다. 그래서 죄송하지만 이제 같이 카풀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말씀드렸다. 나는 '일주일은 지났으니 이제 차량수리는 다 끝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그때 조금 난감해하시던 교감선생님! 나중에 알고 보니 교감선생님은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상태였고, 그곳은 교통이 불편해서 대중교통 이용이 힘든 지역이었다. 교감선생님은 나를 영어교사로 채용한 것이 아니라 운전수로 채용한 것인데, 내가 이를 몰랐던 것이다. 하나님은 경력단절로 인해 도저히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내가 학교에 들어갈 수 없으니 이런 비상사태의 계단을 만드시고, 나에게 가장 적합한 학교로 집어넣으신 것이다. 또한 좋으신 하나님은 나를 곤란하지 않게 하시려고, 바로 이틀 뒤 같은 수지지역에 사시는 남자 선생님이 이 학교로 전출을 오셨다. 그래서 그 남자선생님의 차를 교감선생님은 3년간 애용하시다가 다른 지역으로 가셨다. 정말 놀라우신 하나님의 계단이었다. 


  계단을 밟고 정상에 올랐다. 남편과 나는 청명한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찍는다. 그리고 맑은 공기을 들이키며, 삶의 여유를, 삶의 평강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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