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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경 Feb 25. 2023

화이팅! 나의 친구!

"너의 호주 여행기 잘 읽었다. 잘 지내고 있지?"

"응. 너는?"

"나 요즘 취업해서 출근하고 있다."

"뭐?"

오래간만에 전화한 이 친구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 이 친구는 이름도 나와 끝자가 같은 유경이다. 해경(나의 이름), 유경(친구의 이름).


내가 남편과 결혼하게 만든 사람이 이 친구이다.

"해경아, 너 어떻게 집에 있었냐? 어휴, 정말 다행이다. 한 가지만 부탁하자. 오늘 신랑 될 사람이 서울에서 내려오는데 네가 가서 좀 앉아있다가 오면 안 되니? 결혼 안 해도 된다. 그냥 앉아있다가 오면 된다."

"네? 권사님, 저 지금 아파서 오늘 학교에 못 가고 누워 있는 중인데요.(이 당시 대학원 조교로 매일 대학교에 출근하고 있었다.)"

"그래그래. 다 안다. 그런데 내가 아는 다른 교회 권사가 신부 될 처녀 소개해 달라고 해서, 내가 우리 교회 참한 처녀 소개해 주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지 않니? 나는 유경이를 생각했거든. 그래서 오늘 전화했더니 걔가 약혼을 했다고 한다. 무슨 이런 일이~. 그러니 너는 그냥 잠시 앉아있다가 오면 된다. 제발 부탁한다. 내가 그 권사에게 약속을 지켜야 하거든."

먼저 유경이가 소문 없이 약혼했다는 소식에 놀랐고, 그다음 참한 처녀도 아닌 나에게 이렇게 사정하시는 권사님에게 약간 짜증이 났다. 전화를 받아서 넘겨준 엄마는 옆에서 통화내용을 듣더니만 고개를 끄덕이면서 간다고 하라고 무언의 압력을 준다. (교회에서 엄마와 절친인 권사님이시다.)

"저 지금 감기몸살이어서 상태가 엉망진창인데요, 권사님!"

"뭐 어떠니? 결혼할 것도 아닌데! 제발 부탁하자. 신랑이 아무 때나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서."  

제발 한번 부탁을 들어주라는 엄마의 간청과 권사님의 막가파식 요청에 어쩔 수 없이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남자와의 약속시간에 남은 시간이 2시간도 안 된다.

'와~ 유경이는 항상 언제나 부르면 뛰어나갈 준비가 된 참한 처녀였나? 그런데 이 상태로 나가면 나를 미친 여자라 하지 않을까? 부스스한 머리에 아파서 퀭한 눈! 그래도 내 체면이 있지, 머리만 감고 가자. 아이고 귀찮아라!! 엄마 친구의 관계를 지켜주기 힘드네'

나는 이렇게 구시렁거리면서, 머리만 감고, 아직 물기도 채 가시지 않은 젖은 머리로, 택시를 타고 약속장소로 갔다.


나의 친구, 유경이! 참한 처녀가 맞다. 피아노 전공에 날씬하고 예쁘고 얌전한 아가씨! 교회생활도 열심히 했다.(그 당시 나는 유경이에 비하면 그다지 열심히 아님. 그러니 권사님의 눈에는 우리 교회에서 1등 신붓감이었으매 틀림이 없다.)그런데 그 유경이가 권사님의 기대을 배반하고, 서울 공기업의 연구원과 약혼을 한 것이다. 


남편은 그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머리를 다 말리지도 않은 한 여자가 와서는 묵묵부답으로 앉아 있더라나. 그래서 소개 권사님에게 들은 대로 "피아노를 잘 치신다면서요?"라고 말을 건넸더니만 "피아노요? 피아노 못 치는데요. 언니가 잘 쳐요.(언니는 피아노 전공이다)"라고 하더란다.(나는 정말 전혀 기억이 없다.) 남편도 기가 차서 이게 또 무슨 영문인가, 했다나?


어쨌거나 휘몰아치는 결혼의 소용돌이 속에서(엄마는 그 당시 걱정이 많았다. 유경의 약혼소식까지 더해져서 내가 노처녀가 되는 것은 아닌지(그 당시 나는 27세. 그때는 보통 25~27세에 여자들이 결혼을 했다.) 그래서 엄마는 결혼하기를 강요했다. 나는 대학원 4학기 논문을 쓰고 있는 와중이라 정신이 없었고 '엄마. 알겠어. 응응~' 한 것이 결혼승낙이 되었다. 나는 정신력이 약한 엄마의 소원을 들어준 착한 딸이다.) 한창 논문을 쓰는 중인 10월에 논문 때문에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서 남편과 결혼을 했다.


유경이는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도 하고 성가대 지휘도 하면서, 아주 착실히 신앙생활을 한다. 남편은 공무원(나라에서 운영하는 연구소임)이라는 안정된 직업에, 안정된 봉급을 받아오는 착실한 남편인 것 같았다(장로님이시다.) 이 집은 아들만 둘인데, 한 명은 미국에서 대학교를 마치고 역시 서울의 공기업 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취직했다.(그의 아빠와 거의 같은 길을 가고 있다. 유경이는 살아보니 남편의 직업이 안정적이어서 너무 좋았단다. 그래서 아들도 그 길로 가기를 바랐다고 한다.) 둘째 아들은 카이스트 박사 출신으로 지금 대기업에 취직해 잘 다니고 있다. 둘 다 결혼하여 손자, 손녀도 세명이나 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가정이다. 그런데 첫째 아들이 결혼하기 전 갑자기 전화해서 나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해경아, 너의 첫째 딸과 우리 첫째 아들을 결혼시키면 어떠니?"(음~남편이랑 결혼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은 아니겠지. 나의 첫째 딸이 얼마나 잘 난 아이인데!)

"응. 좋지. 그렇게 해. 우리 딸은 그런데 호주에 정착하려고 하는데, 너의 아들이 호주에 가서 살아도 돼?"

"그래? 우리 아들은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고생을 했는지, 한국에서 살려고 하던데. 어쨌든 기도해 보자."

"그래, 알겠어."


나의 경우, 미국의 둘째 딸이 먼저 결혼을 했기 때문에, 호주의 첫째 딸도 은근히 결혼에 대한 압박을 받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걱정하지 마라. 엄마 친구 아들이 있다!"라고 한 그 아들이다.

그런데 몇 달 후, 유경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 아들 결혼한다."

"뭐? 누구와?"

"나는 몰랐는데 교회에서 사귀는 사람이 있었나 봐. 취직되자마자 그 아이에게 프러포즈했다고 하네. 그래서 결혼날짜를 잡은 거야."

"아! 유경아, 두 번 뒤통수를 친다. 한 번은 우리 남편에게, 한 번은 우리 딸에게! 유경아, 너 너무 한 것 아니야?"

"어떡하니?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나 봐."


간혹 유경이와 전화를 하면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우리 남편(유경이의 남편)은  활동적이야. 은퇴 후의 꿈이 세계일주야. 여행 다니는 것을 엄청 좋아해. 저번 주에 네팔을 여행하고 왔는데, 나는 너도 알다시피 나다니는 것 안 좋아하잖아. 집에 가만히 있고 싶은데, 자꾸 여기저기 여행을 다녀. 힘들어서 죽는 줄 알았다. 그런데 경치는 좋더라. 또 한국어과 자격증(내가 딴 자격증이다)을 따서 온라인으로 외국인을 가르치고, 요즈음은 드론 자격증을 딴다고 날마다 밖으로 나가. 감당이 안 된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아~ 저 남편, 나와 똑같은 취향인데! 여행하기 좋아하고, 호기심 많아 여기저기 기웃하기 좋아하는 나와 딱 어울리겠는데!'란 생각이 들어 옆에 있는 남편을 쳐다본다. 나의 남편은 조용하고 집에 있기를 좋아한다. '아! 유경이와 딱 어울리는데. 둘이 조용히 집에 들어앉아 있겠지!'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로마서 11:29)"는 말씀이 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이 자리에 '유경'이에서 '해경'이로  교체를 하셨을까?  유경이와 몇 차례의 통화 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유경이의 말이다.

"나 사실 몸이 약해서 권사지만 새벽기도를 못 하고 있어. 우리 교회 목사님에게도 말씀드렸어. 그래서 나는 너의 그 자리를 감당하지 못해."


나의 시어머니는 기도를 많이 하시던 분이셨는데, 설마 그 기도가 통했나? 하나님은 체력테스트에서 합격한 나를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만들어 그 자리에 밀어 넣어셨다. '아! 우리 시어머니, 기도를 좀 더 하시지 않으시고! 체력 튼튼, 성령충만한 사람이 왔어야 했는데!"

(이 사실을 알기 전에도 나는 밤에 2시간 잔다 해도 새벽기도는 꼭 한다. 기도는 체질화되어 있다. 그런데 아직 성령충만은 아니다. 성령충만하려고 노력 중이다.)

심지어 남편은 나를 이렇게 평가한다. 명절에 시댁에 내려가서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릴 때, 농담조로 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여기 튼실한 몸종이 왔습니다!"


이렇게 몸이 약한 유경이가 갑자기 사회생활을 한다니? 집과 교회밖에 모르던  친구가!

"그래 어떤 일을 해?"

"너, 노인 일자리 들어봤니?"

"아니. 뭔데?"

"노인 돌봄 매니저야."

"그게 뭐 하는 일이야?"

친구의 이야기를 종합하건대 여러 노인 일자리가 있지만 대부분이 65세 이상이고, 이 일자리만 60세 이상이란다. 즉 이 일자리는 그래도 지력(지성, 혹은 지식)을 필요로 하는 일자리라는 것이다. 월, 수, 금. 일주일에 3일을 하루 5시간 근무한다고 한다.

"월급은 작지만 생활에 활력소가 돼. 결혼 후 나의 첫 사회생활(결혼 전, 유경이는 시립합창단 지휘자였음)이잖아. 재미있어."

"와~ 축하한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해?"

"경로당에 가서 1시간은 스마트 기기로 영상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줘. 그리고 나머지는 아직 프로그램이 확정되지 않았어."

"그래? 그럼 너 잘하는 피아노 치고 노래하면 되겠다. 가요, 동요, 부르다가 CCM도 부르고."

"응,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현실은 아니더라."

"그래? 그럼 나머지 시간에 뭐 하는데?"

"고스톱 쳐!"

"뭐? 고스톱?"

"너 고스톱 칠 줄 알았어?"

"아니, 몰랐지. 그런데 어르신들이 나에게 고스톱 가르쳐 주시는 것을 너무 좋아해!"


조금 큰 돼지저금통 두 개에 10원짜리 동전이 가득 채워져 있다고 한다. 노인들이 1시간 영상을 보고 난 후, 하루종일(오후 5시에 집으로 가신다) 고스톱을 치신다고 한다. 10원짜리 동전은 이 저금통에서 저 저금통으로 부지런히 왔다 갔다를 반복하고. 그런데 이 어르신들이 선생님에게 고스톱을 가르쳐 주는 일을 너무 신나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조금만 잘하면 "아이고 선생님! 선수가 다 됐네요!" 하시면서 좋아하신단다. 

처음 친구가 프로그램을 해 보려고 했는데, 모든 노인들이 고스톱이 제일 재미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해서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단다. 그래서 이 어르신들과 먼저 친해져야겠다고 생각해서, 고스톱판에 끼어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왜 나를 이곳에 보내셨는지 잘 모르겠어."

"유경아. 설마 고스톱 배우라고 너를 그곳에 보낸 건 아니겠지. 친해져서 결국은 영혼구원이 아니겠어?"

"그래 말이야. 기도해 줘."


친구의 말을 듣고 기도하다가 이런 생각이 떠 올랐다.

"유경아, 고스톱 잘 배워서 그 경로당을 깡그리 점령해 버려! 그럼 어르신들이 깜짝 놀라서 '선생님,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물을 것 아니야? 그럼 이렇게 말하는 거지. '예수님 안에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 감추어져 있느니라(골로새서 2장 3절)' 내가 믿는 예수님 잘 믿으시면 고스톱 1등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이야. 그리고 덤으로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 천국도 주시는 분이라고 말하면 어떨까?"


내 사랑하는 친구, 유경이가 노인 돌봄 매니저 역할을 멋들어지게 잘해 내기를 기원한다. 


유경아, 힘내! 기도할게!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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