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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경 Jul 14. 2023

비 오는 날 가기 좋은 곳!

국립중앙박물관(2023년 7월 10일. 월요일)

새벽부터 비가 퍼붓듯이 쏟아진다. 장마철이다. 지구촌 곳곳이 물폭탄으로 난리이다. 

우리도 2층 창틀로 빗물이 들어와 바닥에 물이 흥건하다.

'아! 이런 수해(?)만 없다면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도 어느 정도 낭만으로 여겨줄 수 있는데' 

방 안의 수해현장 때문에 느긋하게 빗소리를 즐기려던 마음이 휑하니 달아나고, 걸레질로 물을 짜 내느라 빠쁘다. 설상가상으로 커다란 카펫까지 빗물에 몸을 담갔다. 이 덩치 큰 카펫은 은근히 물을 흠뻑 빨아들인 상태!  그냥 둔다면 이건 곰팡이의 안식처가 될 것이 뻔하다. 남편과 나는 젖 먹던 힘까지 총동원해 물에 젖어 축 늘어진 카펫을 1층 바닥으로 끌고 갔다. 마음 같아서는 내버리고 싶은데 이 대용량 쓰레기를 버리자니 값이 어마어마할 것 같다. 

'참아야지. 끝까지 사랑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바닥에 놓고 세제를 뿌리고 솔로 문질러 씻기 시작한다. 왜 갑자기 레미제라블의 첫 장면인 판틴의 "I dreamed a dream."이라는 노래가 떠 오를까? 이 처치곤란한 대형카펫 하나 때문에 갑자기 내 삶이 흔들리는 것은 아니겠지. 무한도전 정신으로 나는 솔로 열심히 카펫을 문지르고, 남편은 열심히 물을 끼얹는 협력작업을 통해 카펫의 얼굴을 쪼금 세수 시켰다. 

'야, 너 얼굴이  너무 큰 거 아니야? 너의 얼굴 씻기는데 두 사람이 매달려야 하다니. 대강, 대충 하자!'

나는 속으로 이렇게 구시렁거리면서 카펫을 씻어 의자 6개를 밑에 받치고 물이 빠지게 했다.

시계를 보니 밤 12시를 훌쩍 넘겼다.

"아. 피곤해라. 내일은 무조건 쉽시다."


다음날, 무조건 쉬기로 한 남편에게 나는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집에 있으면 왜 그렇게 할 일이 많을까? 이쪽을 돌아봐도, 저쪽을 돌아봐도 내 눈에는 해야 할 일이 계속 보인다. 안 보는 것이 상책이고, 나가는 것이 쉬는 것이다.

우산을 챙기서 찾아온 곳이 국립중앙 박물관. 비가 와도 실내에 있으니 떠 내려갈 염려가 1도 없는 곳! 전철을 타고 또 갈아타고 해서 도착하니 비는 어느새 그치고 햇살이 뜨겁게 내리쬔다. 아이고 더워라. 비 때문이 아니라 더워서 빨리 에어컨 빵빵한 실내로 들어가고 싶다.  그러나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라고 먼저 든든히 배를 채워야 구경도 신날 것 같아 박물관 바로 옆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갈 때는 용산 근처의 맛집을 갈 계획이었으나 후덥지근한 더위 때문에 맛집을 찾아 나설 생각은 한바탕의 희망사항이 되고, 빨리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 때문에 낙점된 이곳! 서울특별시까지 오느라 지쳐서인지 허기진 나에게 나의 메뉴는 돈 값에 비해 좀 부실했지만, 여직원의 친철로 흔쾌히 그 부실함을 맞바꾸기로 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니 비를 피해 온 사람들이 꽤나 많다. 외국인도 제법 눈에 띈다.

또 마침 해설사의 해설시간과 맞닥뜨려 해설사를 따라가게 되었다. 

 

첫째 작품은 구석기시대의 " 연천 주먹도끼"이다. 해설사에 의하면 이 주먹도끼의 발견으로 동양의 구석기시대의 역사가 한 단계 진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로는 "1940년대 초반 모비우스(Hallam L. Movius, Jr)가 세계의 이른 시기 석기문화의 전통을 두 가지로 분류하였는데, 서양은 주먹도끼 문화권(Hand Axe Culture)으로, 남부아시아와 동아시아는 찍개 문화권(Chopper-Chopping Tool Culture)으로 구분했다. 그는 북서부 인도, 버마, 북동부 중국, 자바 등지에서의 조사를 통하여 이 지역의 소안(Soan), 아니아티안(Anayathian), 주코우티안(Choukotien), 파지타니안(Patjitanian) 문화는 찍개문화권으로 특징지을 수 있으며, 주먹도끼가 전혀 없거나 몇 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주먹도끼가 발견된다 하더라도 기술적으로 차이가 나기 때문에 유럽의 주먹도끼 문화권과는 연관시키기 어렵다고 보았다. 찍개 문화는 서양에서는 아슐리안 문화로 발전해 나간 반면에 동아시아에서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이러한 석기문화권의 차이는 고 인류의 종류가 다른 데서 오는 것이라는 인종적인 언급까지도 하였다. (즉 서양인이 동양인보다 우등하다는 주장) 연천 전곡리 유적은 1978년에 발견된 뒤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서구나 아프리카의 전형적인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출토되는 이른 시기 구석기 유적으로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전곡리 유적은 서양의 주먹도끼 문화권과 동아시아의 찍개 문화권으로 구분된다는 기존의 모비우스 학설을 폐기하게 하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하였고, 동아시아 이른 시기 구석기 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 추천 소장품의 해설을 참조함) 이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동양인은 열등인종의 꼬리표를 내내 달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니 서양인의 이론 횡포에 기가 막히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어쨌든 고맙다. 연천 주먹도끼야!


두 번째 작품은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 토기"로, ‘빗살무늬’의 곡선적인 형태와 선각(線刻) 무늬를 통해 당시 사람들의 미의식을 엿볼 수 있다.


세 번째 작품은 청동기실의 "농경문 청동기"인데(보물), 이 청동기는 지배계급의 상징이자 의례행사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네 번째 작품은 보물 제339호‘서봉총 출토 금관’을 비롯한 각종 장신구들로 선보이는 신라의 황금 문화인데, 신라인의 미적 감각과 공예기술을 선보임과 동시에 전시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고 있다.

"금관과 금허리띠"이다.(국보)

금허리띠의 또 다른 면이다.

다섯 번째 작품은 복도에 세워둔 고려시대 "경천사 10층 석탑"이다(국보). 경천사 십 층 석탑은 약 13.5m의 웅장한 규모의 석탑으로, 석탑 전체에 불교에 관한 내용이 층층이 가득 조각되어 있다.


경천사 석탑의 형태는 기존의 간결한 전통적인 석탑의 외형과는 매우 다르다. 석탑의 기단부와 탑신석 1층에서 3층까지의 평면은 소위 한자의 아(亞) 자와 같은 형태로, 사면이 돌출되어 있다. (하단 사진 참조)

이러한 평면은 원나라대에 유행한 몽골, 티베트계 불교인 라마교 불탑의 기단부나 불상 대좌 형태와 유사한 외래적 요소라고 한다. 

반면 탑신부 4층부터 10층까지의 평면은 방형 평면으로, 경천사 석탑은 전통적인 요소와 외래적 요소의 조화 속에 탄생한 이형 석탑임을 알 수 있다.(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 추천 소장품의 해설을 참조함)


여섯 번째 작품은 "청양 장곡사 괘불"이다(국보).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올 때 괘불을 밖에 걸어놓고 의식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그림을 그리는데 엄청난 돈이 들어갔다고 한다. 모든 염료가 나무, 풀에서 채취했기 때문에 돈이 없으면 감히 이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일곱 번째 작품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고려시대 범종인 "천흥사 종"이다.(국보)

여덟 번째 작품은 고려시대 청자이다. 아래 작품은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이다 (국보)

"물가풍경무늬 정병"이다(국보).

아홉 번째가 조선시대의 "백자 달항아리"이다.(보물)

백자 항아리의 다양한 모습이다.

마지막 열 번째가 '사유의 방'에 단독 전시되어 있는 "금동반가사유상"이다(국보).

왼쪽의 것이 6세기, 오른쪽이 7세기 전반에 제작되었다고 한다. 해설사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작품은 오른쪽 7세기 전반의 것으로 '완벽'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것이 6세기 작품.

이것이 7세기 전반의 작품.

해설사의 해설에 의하면 6세기의 것은 여성스럽고 옷의 선이 단순한 반면, 7세기 전반의 것은 남성스럽고 옷의 선이 아주 유연하다고 한다. 

뒷모습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팜플랫에도 이 열 가지 작품이 대표작으로 나와 있다. 여기까지가 1시간 좀 더 되는 시간에 해설사가 해설한 작품들이다.


남편은 피곤해서 쉬고 싶다고 한다.


옛날,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그 당시 대학생이었던 둘째 딸은

"엄마, 피곤해서 더 이상 못 보겠어"라고 2~3시간 후 관람을 포기했지만, 대한민국 아줌마 근성으로 똘똘 뭉친 나는 혼자서 열심히 박물관을 오르내렸다.(그래도 다 못 봤다!) 오늘도 마찬가지이다. 남편이 쉴 동안 나는 나의 안목의 정욕을 위해 부지런히 해외 작품전시실의 여러 방을 돌아다닌다. 각 실의 한 작품씩만 소개한다.


메소포타미아실의 판사들의 판결문. 앗슈르어로 기록한 문서(쐐기문자)이다.

결투장면을 새긴 원통형 인장.

일본실의 갑옷.

그리스. 로마실에서는 전쟁의 여신 아테네(로마에서는 미네르바라 함)상.

중국실에서는 무덤의 인형들.

중앙아시아실에서의 도자기.

인도실에서의 그림.

쉬고 난 남편이 집에 가자고 한다. 전철을 2번 갈아타고 집에 가야 하니 서둘러야 하긴 하다. 소장 유물 15만 점, 상설 유물 1만여 점으로 우리나라 최대의 박물관이며, 세계적으로도 규모적으로 상당한 규모라고 한다. 해설사의 말로는 전시유물을 꼼꼼히 보려면 한 달은 걸린다고 하니 오늘은 그저 조족지혈(鳥足之血)!


'무조건 쉬자'라고 한 오늘이 '무조건, 최대한, 돌아다니자'의 날이 되었다. 국립중앙 박물관의 야외 정원이 너무 멋진데, 너무 돌아다녀 피곤해서 오늘은 그만 집으로 가야겠다. 어느 비 오는 날, 다시 방문하기로 계획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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