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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경 Jul 07. 2023

한식의 세계화를 위한 단상(斷想)

"그래? 좋아. 그럼 이번 토요일에 만날 때 뭐 먹을까?"

초등학교 4학년인 예린이는 내 말이 입에서 떨어지자마자 냉큼 받아 답한다.

"마라탕요."

"마라탕? 응. 알겠어. 마라탕 사 줄게."


예린이와 헤어져,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 마라탕 먹으러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예린이가 마라탕을 사 달라고 해요."

"마라탕? 저번에 가 보니, 뭐, 자기가 먹을 것 담아 오라고 하더구먼."


학생들의 최애음식이 짜장면에서 마라탕으로 바뀌었다는 글을 SNS에서 읽은 적이 있다. 너무나 한국 시골 촌뜨기 아줌마의 입맛을 간직하고 있는 나에게는 마라탕이라는 음식은 이름도 생소하고, 거북이탕, 토기탕처럼 마라라는 동물을 잡은 탕인가 하는 약간의 혐오감정마저 느껴지게 하는 음식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알고 보니 마라탕이라는 이름 그 자체의 의미는 '맵고 얼얼한 뜨거운 국물'을 의미한다고 한다. 나는 무식의 극치였다.)


학교 아이들도 마라탕, 마라탕 하길래, 얼마 전 남편과 집 가까이의 대형 쇼핑몰 안에 있는 마라탕 음식점에 간 적이 있다. 사람들이 조금 북적댔다. 남편과 나는 테이블에 앉아 주문받기를 기다렸다. 2~3분을 기다려도 사람이 오지 않아 카운터로 가서 "주문받지 않느냐"는 질문을 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약간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저기 진열되어 있는 여러 가지 재료 중 드시고 싶은 재료를 그릇에 담아 오시면 요리를 해 드립니다."

남편과 나는 "뭐야?" 하는 표정으로 서로 마주 보다가, 생전 알지도 못하는 음식인데 어떤 재료를 그릇에 담아야 할지, 또 무슨 이런 귀찮은 일을 하면서까지 이 음식을 먹어야 하나 하는 생각에 그냥 나온 적이 있다. 


남편과 나는 너무나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다. 마라탕이 유행한 지가 벌써 꽤 된 것 같은데 TV가 없는(없는 것이 아니라 창고에 넣어두고 있다. 할 일이 너무 많아 TV 볼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고 있지만, 남편도 나도 영화를 좋아해서-- 특히 남편은 나보다 더하다--  TV가 있다면 아마 밤을 꼴딱 새우는 일이 많았을 것이다. 남편이 영화 보기에서 나보다 한술 더 뜨기 때문에, 할 일을 제쳐둔 채 영화를 보고 있는 꼴을 나는 그냥 넘기지 못한다.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지금 영화나 보고 있을 때냐고 눈을 흘기기 일쑤였고, 결국 우리는 TV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어쨌든 우리 집의 TV는 고생이 많다. 두 딸을 키울 때는 아이들이 드라마 보기를 좋아해서 아예 TV를 창고 속에 처박아 놓았었다. 아이들은 명절날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가기를 아주 신나 했다. 하루종일 TV 앞에 앉아 실컷 TV를 애청하다가 오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다 커서 시집을 가고, 남편과 나, 둘이 오붓하게 앉아 TV를 시청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 이것도 이제 생각과 습관의 차이로 쉽지가 않다. 나는 생활이 바빠 거의 영화나 다른 오락프로를 볼 시간이 없었다 보니, 이제는 TV 앞에 앉아있는 그 자체가 시간낭비로 여겨지게 되었다. 세상소식이 궁금하면 폰으로 잠시 살펴보면 되는데, 구태어 TV 앞에 앉아 뉴스를 들어야 하느냐는 생각까지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세상물정에 많이 어두울 수밖에 없다. 마라탕이 뭔지, 어떻게 먹는지 전혀 알지 못했고, 그래서 마라탕을 처음 먹으러 간 날, 재료를 주워 담는 일이 귀찮아 그냥 나온 것이다. 나는 지금 나의 무지함이 모든 정보의 산물인 TV의 부재 때문이라고, 나 자신을 합리화하고 있다.


"어떻게 먹는지는 알아두어야 예린이와 그 친구아이들을 데리고 먹으러 갈 수 있지 않을까요?" 

나의 이 말에 남편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아는 분과 마라탕을 먹으러 갈 일이 생겼다. 최소한의 음식 금액이 6,000원이었는데, 채소 위주로 담고 맵기 정도는 0(7가지 레벨이 있었다)으로 해서 7,000원 정도의 재료를 담았다. 요리되어 나온 마라탕은 그런대로 먹을만했다. 마라탕과의 첫 만남은 그렇게 수더분하게 지나갔다. 전혀 맵지 않은 0 단계로 먹으니 특별히 중국음식으로 인식될 것도 없었다. 


오늘 남편과 다시 마라탕 집에 가 보기로 했다. 이번 토요일, 예린이와 그 친구들을 만나는데, 만약 먹고 싶은 대로 담는다면 바용이 얼마나 들까를 확인해 보기 원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15,000원 정도, 나는 12,000원 정도의 재료를 담게 되었다.  그런데 첫 대면 때의 '먹을만하군'하던 입장이 오늘은 좀 바뀌었다. 먹고 싶은 만큼 먹게 되니 0단계의 음식에서는 '아! 김치가 좀 있으면 좋겠는데'하는 생각이 먹을수록 간절해졌다. 그 위 단계의 매운맛은 어떨지 알 수 없지만(매운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음식은 내 취향은 아니라는 생각까지 들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이 마라탕집은 저번에 왔을 때도 느낀 점이지만  온통 중고등학생들 천지이다. 학생들이 떼 지어 들어오고, 떼 지어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남편과 나는 빨리 먹고 자리를 비워줘야 할 것 같은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래서 디저트로 주는 아이스크림을 들고는 대기석으로 이동했다.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이 빨리 자리를 잡고 먹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때 중학교 1학년 아이들 5명이 함께 모여 먹고 있는 테이블에, 1명이 그냥 음식을 쳐다보고만 있다.

"저 아이 음식을 내가 사 줘야 할 것 같아요. 친구들이 다 먹고 있는데, 얼마나 먹고 싶겠어요."

내가 남편에게 말하자, 남편은 그 테이블을 한번 쳐다보더니만 나의 팔을 꽉 붙잡는다.

"기다려 봐. 아직 안 나왔을 수도 있잖아."

아니나 다를까 좀 있다가 그 아이 앞으로도 음식이 나온다.

이 마라탕 집은 주문한 순서대로 음식이 나오기 때문에 친구와 순서가 맞지 않는다면, 까딱하면 다른 사람들이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오지랖이 넓어지는 것 같다. 아니면 감정이입의 스펙트럼이 더 넓어진 것일까?)


마라탕이 중고등학생들에게 이렇게 인기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서 (자신이 가진 돈과 자신의 취향에 맞게 재료를 선택할 수 있고, 또 맵기 조절도 가능하여 올 때마다 다양한 선택과 다양한 맛을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호기심 많은 아이들에게는 아주 제격인 음식인 것 같았다.) 나는 애국충정이 발동하여 이런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대표음식인 비빔밥도 마라탕 같은 주문구조를 가지면 어떨까? 비빔밥에 들어갈 여러 재료를 나열해 놓고 자신에게 맞는 재료와 밥의 양까지 선택해 오면 그걸 보기 좋게 정리하여 밥 위에 올려준다. (재료와 밥의 비율을 어느 정도 정해줄 필요는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고추장의 맵기 정도도 단계를 정해 놓는다. 그러면 외국인들은 비빔밥 위에 올라갈 다양한 재료를 선택하여 다양한 비빔밥을 맛보게 되지 않을까? 그러다가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조합을 찾게 되고 비빔밥 마니아가 되어 가지 않을까? 여기에 김밥도 역시 이런 주문구조를 가지게 된다면 어떨까? 참치김밥, 쇠고기김밥, 김치김밥등 고정된 김밥형태가 아니라 그 나라의 재료에 따라 다양한 김밥이 탄생하지 않을까? 또한 떡볶이에도 이러한 요인들이 적용되지 않을까?

마라탕 때문에, 나는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열심히 궁리해 본, 애국자가 되어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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