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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경 Jul 24. 2023

"나 바보 아냐?"

코로나 끝나고 처음으로 언니 부부를 만났다.

"와~ 형부, 그동안 무사무탈 하셨어요?"

반가워서 손을 잡으려는데 어랴? 형부가 하얀 목장갑을 끼고 계신다. 아니 하얗다기보다는 조금 색 바랜, 노동판에서 일할 때 끼는 두터운 허연 목장갑! 나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고 언니가 얼른 상황수습을 한다.

"이 코로나 시기에 마스크, 장갑 꼭 껴야 한다. 나는 오늘 너무 바쁘게 나오다가 안 끼고 왔는데, 나도 어디 가든지 장갑 꼭 끼고 다닌다."

"엥" 

멋쟁이로 유명한 언니까지 하얀 목장갑을 끼고 다닌다고?

'야~정말 코로나라는 이 이상한 것이 사람을 이상하게 변화시켰구먼'


'하얀 장갑을 끼고 있는 사람'이란 콘셉트는 나에게 두 가지 형상을 생각나게 한다. 하나는 어디 시설물이나 행사를 처음 오픈할 때 하얀 (여기에서 끼는 하얀 장갑은 말 그대로 새하얀, 보들보들하고 야시끼리한 ) 장갑을 끼고, 가위를 잡고 팽팽하게 줄 쳐진 테이프를  멋들어지게 사악둑 자르는 연예인 수준의 사람들. 또 한 형상은 죄송하지만 이런 형상이다. 길거리나 예전 기차칸에서 시커먼 색안경을 끼고 손에는 지금 형부가 끼고 있는 두터운 목장갑을  낀 채 "지금까지 힘들게 살아왔지만 실패하고 지금 다시 새롭게 시작하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이 사람들은 자신의 실패를 대국민적인 문제로 부각해 대국민적인 지지와 호응을 호소함. 야~ 이 사람들 정말 스케일이 어마어마하게 큰 사람들이다. 자신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둔감시키다니. 또한 '너 나 안 도와주면 알지? 나 못 일어서거든!'이라는 협박 수준의 멘트까지!  나같이 순한 사람은 양심이 쫄아들어서, 그래도 나보다는 강심장인 남편을 쳐다보며 '어떻게 해?'라는 시선을 보내면 남편을 이미 눈을 감고 열심히 묵상중! '아이고 모르겠다. 하나님은 꾸고자 하는 자에게 꾸어주라고 했는데, 주님! 말씀을 어깁니다. 용서해 주세요' 하고 나도 눈을 얼른 감고 남편과 같이 묵상함. 에고~)이 두 형상 중 후자의 형상이 형부에게 더 오버랩되는 것은 이 무슨 나쁜 마음인가? (우리 형부는 덩치도 크고 건장하시다. 그래서 기차칸의 그분들과 더 닮았다고나 할까?)


그래서 언니에게 후딱 묻는다.

"언니야, 선글라스는 잘 안 끼지?"

언니는 동생이 무슨 의도로 묻는지 잘 모르는 채,

"선글라스? 끼지. 잘 봐라!"

"아이고, 언니야. 됐다. 그만해라."


혹시 이 부부가 마트에서도 허연 목장갑을 끼고 이 물건 저 물건을 만지면 사람들은 속으로 '혹 저 부부, 문둥병환자인가? 저 부부가 만진 것은 사지 않아야지' 하는 것은 아닌가? 갑자기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파동 친다. 또 저기에다 지팡이를 하나 짚는다! 아니지! 그건 아니야. 눈먼 분들이 선글라스 끼고 지팡이 집고 허연 목장갑 끼고 한 푼 달라고 쪽박 들고 다니던 모습이 이 동생의 머릿속에서 뱅뱅 돌고 있다.

"언니야! 언니 다리 다쳤는데 아직 덜 나았지? 지팡이는 짚나?"  

"얼마 전까지 목발 짚었지."

'목발 짚은 걸인은 아직 본 기억이 없다. 아이고 다행이다!'

"이제 깁스는 풀었는데 아직 좀 절룩거린다. 지팡이 짚어야 되나?"

"아니, 아니! 됐다. 지금처럼 조심해서 걸으면 된다."


내가 알던 사람의 예전의 평범한 모습에서의 무엇인가의 변화는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요동치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아이고! 이 나쁜 생각들아! 썩 물러갈지어다!' 


"언니, 형부. 오신다고 고생 많으셨어요. 점심 먹으러 갑시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시는데도 형부는 목장갑을 벗지 않으신다. 목장갑과 손의 합체가 일어났나 보다. 

형부가 한 마디 하신다.

"대중교통수단, 마트, 음식점, 이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병균이 득실득실 한기라. 처제, 조심해야 해요."

나의 목구멍으로 꿀 넘어가듯 맛있게 넘어가던 음식이 으엑, 갑자기 목에서 막힌다. '혹시 이 안에도 병균이!'

언니도 한 마디 거든다.

"너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이제 나이가 있으니 코로나 걸리면 죽다가 살아난다. 아니 죽을 수도 있다! 조심, 조심이 최고다. 지금 마스크 다 벗으라고 했는데 안 된다. 지금도 꼭 껴야 된다. 가능하다면 장갑도 끼고. 알겠지?"

벌써 마스크를 벗어던졌고, 지금 장갑혐오증에 시달리는 착한 동생은 그래도 다소곳이 대답한다.

"응. 알겠어. 언니야!"

"그런데 형부, 가슴에 두르고 계신 그 가방은 왜 안 벗고 계세요? 무거우실 텐데."

"이거, 벗으면 큰 일 나요. 이건 잘 때 외에는 절대 안 풀어요."

언니는 '덧붙여 설명사'이다. '부창부수!'

"우리가 이제 나이가 있잖아. 얼마나 잘 잊어버리는지 모른다. 가방에 넣어서 메고 있지 않으면 다 잊어버린다. 차 안에 다 놓고 다 내린다."

"아! 그래서 가방을 항상 메고 계시는구나!"

그런데 형부의 멀쩡한 차림새에 가방을 가슴팍에 메고 계시는 것이 어쩐지 품이 좀 나지 않는다.

'지금 폼이 대순가? 물건 잘 챙기는 것이 우선이지' 

나는 이렇게 자문자답하면서, 남편을 쳐다본다. 


"둘째야, 미국에서 항상 메고 다닐 가방 한 개 사서 보내라. 너의 아빠가 물건을 곧장 잊어버린다. 이제 나이가 된 모양이다."

요즈음 남편은 폰을 수시로 찾는다. 

"내 폰 어디 있어?"

"내가 아나요? 쓴 사람이 알지?"

이렇게 말하고도 결국 찾아주는 사람은 나이다. 그래서 간혹 '이 바보와 죽을 때까지 같이 살아야 돼?' 하는 생각이 언뜻 스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을 입으로 표현할 만큼 나는 바보가 절대 아니다. 만면에 미소를 띠고, 남편을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머리에서는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나는 참으로 두 마음을 품은 자이다. 그런데 바보도 전염되는 것 같다. 요즈음 나도 깜박깜박해서 남편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다.

"내 폰 봤어요?"

우리 집의 에코 시스템이 이렇게 잘 되어 있는 줄 몰랐다. 나에게 똑같은 답이 돌아온다.

"내가 아나요? 쓴 사람이 알지."

답은 똑같은데 결과는 판이하다. 결국 내가 찾아내야 하니. 내 질문 내해결! 이건 뭐가 좀 잘못되지 않았나?


형부의 가방에 영감을 받아 우리도 가방을 메고 다니기로 했다. 세계 유행의 노른자위인 뉴욕을 오가며, 뉴저지에 사는 딸아이가 유행의 최첨단을 달리는 멋진 가방을 보내리라 믿으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딸이 보내온 가방이다. 둘째 딸은 통이 크다. 세 개를 한꺼번에 보내오면서 '마음대로 골라 사용하슈'이다.

첫 번째 가방.

"여보, 이거 짜장면 배달하는 아이들이 허리에, 혹은 가슴에 두르고 다니는 거 아니야?" 나의 말에

"응. 맞는 거 같은데. 미국에서는 이게 유행인가 보지!"

두 번째 가방.

"이건 좀 얌전하다. 당신 한번 해 봐요." 나의 말에

"어어! 이상하네. 이게 뒤로 메도록 되어 있어. 그 도독 놈 많은 뉴욕에서 요즘 가방을 다 뒤로 메는 모양이지. 아니 뉴욕의 양심이 살아난 거야?"

세 번째 가방. 딸이 유독 강조한 가방.

"엄마 파타고니아 알지? 지금 유명해."

"엄마도 안단다. 이본 쉬나드라는 사람이 설립한 친환경 제품."

"와. 우리 엄마 박식하네~"

박식하기는! 고등학교 기간제 할 때 그 학교의 연구부장이 파타고니아에 꽂혔는지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 서핑을" "파타고니아" "왜 파타고니아는 맥주를 팔까" 등을 사서 학생들에게 읽히고 환경활동 및 독후감 쓰기 활동을 하는데, 각 학급에 나눠준 책들을 나도 한번 읽어본 경험 때문에 내가 파타고니아를 아는 것이지, 나의 머릿속에는 파타고니아 하면 남미에 있는 아름다운 지역정도로 알았지, 그게 친환경제품을 만들어내는 회사일 줄이야!

"여보, 이것도 뒤로 메게 되어있다!" 나의 말에

"와~ 미국이란 나라가 이제 백팩 대신에 이게 주류인가 보다. 뒤로는 좀 아닌 것 같은데"

 남편은 외출할 때 물건을 잃어버릴 까봐 걱정이어서 가방이 필요한 것인데, 정장 옷차림과는 어찌 좀 안 어울리는 것 같아서,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유품으로 가져온 구닥다리 가방을 애용하고,

 수고하여 골라준 딸의 정성이 너무 고마워 남편과 나는 등산 갈 때,  세 가방들을 돌려가면서 열심히 메고 있다. 

"딸아! 고마워. 등산 가니까 늙은이는 다 등산가방, 젊은이들은 네가 보내준 짜장면 빼달 용 돈주머니 가방에서부터 파타고니아 가방 같은, 뒤로 메는 가방을 다 메고 오더만. 이 늙은이들을 최신 유행에 끼어들게 해 주다니, 고맙고 고맙다!"


요즈음 바보 오염이 좀 더 된 것 같다.

"통장 비밀번호를 5회 잘못 눌러서 온라인 통장이 동결되었어요!" 나의 말.

"아니 바보 아니야? 통장 비밀번호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속으로 '더 바보가 바보에게 뭐라 하네. 비밀번호가 두 가지인데 헷갈려서. 그리고 그 비밀번호는 자기가 마음대로 정해서 나에게 사용하라고 한 거잖아!' 그러나 나는 이런 말을 입 밖으로 내는 바보는 절대 아니다.

"그러게요. 바보가 되어가나 봐요. 어떻게 하죠?"

"은행에 직접 가서 해결해야 해요."

"네! 알겠어요."


은행사람들은 다 돈맛을 아는 사람들이다. 저번에 허지부지한 차림새로 갔더니만 대우가 영 아니었다. 돈맛을 아는 사람에게는 돈맛이 좀 폴폴 나는 차림새로 가야 하는데 어떻게 가지? 나는 호주 첫째 딸이 큰맘 먹고 사준 명품 선글라스를 끼고, 최신 유행하는 펄럭펄럭 휘날리는 통바지를 입고, 위 상의로는 와인색의 붉은 블라우스를 입고 은행에 들어선다.

"저 비밀번호 오류로  왔어요."

안내데스크에 있던 아가씨가 나를 비밀의 방으로 데려간다. 

화면에 나의 옷색깔보다 더 화려한 빨간 옷을 입고 빨간 루주를 흠뻑 칠한 아가씨가 나타난다. 

'이 아가씨가 손님 기 죽이려 하네. 흠, 안 되지!'

나도 자세를 꼿꼿이 하고 그녀를 쳐다본다.

"손님, 먼저 선글라스를 좀 벗어주세요. 본인 인식을 해야 해요."

'뭐라고! 은행통장에 내 얼굴이 찍혀있는 것도 아닌데, 왜 내 자존심을 벗어라는 거지! 이건 예상치 못 했어. 난 지금 화장도 안 한 맨 얼굴이잖아!'

어쨌든 나는 순종파이다. 끽소리 없이 내 자존심을 벗는다.

"이제 비밀번호를 재설정해서 누르세요. 네~ 다 끝났습니다."

"아~ 잠깐만. 한번 해보고 갈게요. 집에서 해서 안 되면 다시 와야 하잖아요."

나는 나의 똑똑 기를 발휘해서 한번 실습해 보고 가겠다고 말한다.

"네~ 한번 이체해 보세요."


"이체했는데 비밀번호 누르는 것이 안 떠요!"

"혹시 손님의 명의로 되어있는 다른 통장으로 이체하신 것 아닌가요?"

'어! 내 이름으로 된 다른 통장으로 이체했거든. 그럼 비밀번호가 안 뜨는 건가?'

약간 기가 죽어 "다시 할게요!"

그런데 통장으로 들어가려니 갑자기 이제 공인 인증서의 번호가 생각이 안 난다. 한번 오류! 당황! 나 갑자기 바보 된 거야?

"손님! 복잡한 인증서 사용하지 마시고 간편 인증서 6자리 사용하셔요."

그러면서 간편 인증서 화면을 보내준다.

더듬더듬, 조심조심! "아, 되네요. 남편에게 보내볼게요. 이제 비밀번호가 떠요. 아! 되네요"

화면의 붉은빛 투성이 직원은 붉은빛 미소를 띠고 나를 쳐다보더니 붉은빛 목소리로 "안녕히 가세요!"하고 화면 속으로 쏙 사라진다.

그녀의 붉은빛이 내 뺨에 와닿아 불그레하게 달아오른 뺨에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이  불그레하게 떨어진다.


은행문을 나서며, '나 바보 아냐?'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면서

"나이아 가라" "나이아 가라!" 폭포를 외친다.


P.S. 얼마 전 전화하니 언니 목소리가 이상하다.

"언니야, 목소리가 왜 그래?"

"형부가 코로나 걸려서 죽다가 살았다. 나는 걸린 것은 아닌데, 나도 간병하다 보니 목소리가 갔다."

"아이고. 괜찮나, 언니야?"

"딱 일주일 지났는데, 이제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

확실히 형부와 언니는 혜안과 병(병균을 보는) 안이 발달된 사람들이다. 작년 겨울에 남편이 걸려서 나도 걸렸는데, 나는 그저 흐지부지 지나갔다. 그런데 지금까지 걸린 적 없던 형부가 이제 코로나에 걸렸다고 한다. 세월이 가서 나이 든 코로나가 키가 자라듯이 힘이 세지질 것을 미리 아신 형부. 그래서 코로나 걸리면 죽을 만큼 고생하신다더니 그 말을 적중시킨 그 혜안! 병안이 발달되어서 마스크에 목장갑을 열심히 끼셨을 텐데, 너무 열심히 끼셨어 장갑에 구멍이 뚫렸었나? 

"형부, 언니! 빨리 완쾌하셔요!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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