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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경 Jan 25. 2024

철수 씨의 이상한 나라!

철수 씨는 오늘 이상한 별에 도착했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헤벌레 웃고 있다. 

'이 별에는 바보들만 사나?'


이 별의 모토가 쓰인 돌덩어리가 출입구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서로 사랑하라! 행동강령: 오른쪽 빰을 때리면 왼쪽 빰도 내밀라"


내가 살아남기 위해 오른쪽, 왼쪽 할 것 없이 상대방을 마구 때리고 짓밟고 올라온 이 자리!

부사장에게 주어진 특별여행으로 선택한 이 별 여행은 첫 순간부터 철수를 당황하게 만든다.

'이게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정말 바보들만 사는 곳인가 본데. 정말 여행지를 잘 못 선택했네!

그 똘똘한 양비서가 왜 이곳을 여행지로 선택해서 비행기표를 끊었지? 정말 알 수가 없네. 돌아가서 야단쳐야겠구먼.'


철수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진풍경인가?

자리 잡고 앉은 테이블 바로 옆에는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이 긴 숟가락, 긴 젓가락으로 열심히 상대방을 먹이고 있다. 테이블에는 모두 쌍쌍으로 앉아있다.

'어! 이건 또 뭐지? 이 여행에 따라오려는 집사람을 열심히 구슬려 내팽개치고 왔더니만, 이 별은 부부가 같이 와야 밥을 먹을 수 있는 건가?'

일단 철수는 메뉴판을 보고 식사를 주문했다.


조금 있으니 잘 차려진 밥상을 웨이터가 들고 오더니, 철수 앞자리에 앉는다.

"자. 제가 잘 시중들겠습니다. 입을 벌려 주시기 바랍니다."

웨이터는 밥과 반찬을 골고루 떠서 그 긴 숟가락을 내 입에 넣어주며 친절히 미소를 짓는다.

"밥 드시는 속도, 영양을 생각해서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모십니다. 마음껏 식사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이 웨이터는 철수의 마음을 어떻게 아는지 철수가 먹고 싶은 것을 딱 골라서 입에 넣어준다. 허겁지겁 밥을 먹어치우던 철수의 속도에 비하면 아주 느린 속도이지만, 꼭꼭 씹어먹기에 알맞은 속도로 밥과 반찬을 넣어주고 있다.

'와! 이건 완전 황제 대접이군. 그래서 양비서가 이 별을 골랐나?'


그런데 철수의 손은 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스마트폰이 하나 손에 쥐어져 있다.

철수는 떠나온 별의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메시지를 전송해야 한다. 이 일은 철수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다. 밥 먹으면서 문자  보내기야 '식은 죽 먹기'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지금은 웨이터가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을 입에 쏙쏙 넣어주고 있는데 이것쯤이야. 

가장 먼저 아내에게

"여보, 그동안 고생 많았지? 내가 당신에게 너무 소홀했어. 사회활동 한답시고 당신을 무시하고 당신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 미안해. 이제부터라도 잘할게!"

철수가 손에 건너 받은 스마트폰은 신기하게도 철수의 마음을 읽어서, 폰 스스로가 문자를 써 내려간다. 이 별을 예약할 때 미리 전화번호를 다 파악한 것인지 메시지를 누르니 '딩동!' 하면서 아내에게 메시지가 간다. 그런데 아내에게서 답장이 오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아내는 즉각 즉각 답장하는 스타일인데, 무슨 일이 있나?

철수는 다시 문자를 보낸다.

"여보, 지금 여기 식당에서 혼자 밥 먹고 있어. 주위의 다정한 부부를 보니 같이 가겠다고 나에게 투정 부리던 당신이 생각나네. 나도 당신을 데려오지 않은 것이 좀 후회가 되네. 당신이 또 나를 의심할까 봐 걱정되기도 해서 지금 문자를 보내는 거야. "

웨이터는 이런 염려하는 내 마음을 아는지 시원한 물을 한잔 건넨다.

그 물을 마시고 나니 마음이 좀 가라앉는다. 철수는 그동안의 자기 행동이 어땠는지를 아는지라, 주위 부부의 밥 먹는 모습, 자기 혼자 밥 먹는 모습을 찍어 사진을 전송한다. 

"딩동, 딩동"

그런데도 아내는 무반응이다.

"여보, 정말 사랑해!!"란 메시지가 아내에게 전송되는 것을 본다. 마지막 필수 전송문자인가 보다. 아들에게 문자를 보내려고 화면을 이동하려고 하는데, 아내에게 이 메시지가 자동으로 보내어진다.


이제 철수는 아들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신기하게 이번에도 역시 철수의 마음을 읽고 폰 스스로가 문자를 써 내려간다. 

"아들아! 내가 너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은 알고 있지? 네가 나의 권위를 무시한다고 너의 빰을 때린 것 정말 미안하다. (내가 아들 뺨을 때린 것을 어떻게 알고 이런 메시지까지! 철수는 조금 놀란다.) 그러나 소위 일류 대학의 경제학과에 다닌다는 놈이  '아빠. 출세가 전부가 아니에요. 서로 사랑하며 도우며 살아야죠. 그리고 이 세상이 다가 아니에요. 영원한 세상도 있어요. 그날도 준비하셔야죠'라는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길래, 내가 너를 한 대 때렸지. 이 세상에서는 성공해야 해! 너의 인생길을 가로막는 무수한 경쟁자들을 어떻게 물리치겠어? 실력이 최고가 아니겠어? 학생은 오로지 공부, 공부야! 그리고 스펙을 쌓아야지. 그게 네가 성공하는 길이야. 그런데 너는 무슨 그런  석기시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거야? 서로 돕기는 무슨! 수렵시대, 농경시대도 아니고!  맞고도 오른쪽 뺨까지 돌려댈 너의 기세에, 내가 왜 너에게 손찌검을 했는지 좀 후회되기는 하더라. 미안하다 아들아!"

철수는 울컥 미안함이 올라와 목이 약간 메었다.  이를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웨이터가 즉시 동치미 한 숟가락을 입에 넣어준다. 참으로 이 별은 신기하다. 웨이터도, 이 스마트폰도 철수의 마음속 깊은 것까지 다 알고 있는 것 같다.


입에 들어오는 밥과 반찬은 눈 녹듯이 입에서 사르르 녹으며 최고의 미각을 준다. 역시 아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는

"아들아 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란 메시지가 자동으로 전송된다.


마지막으로 딸에게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그런데 철수에게 준 이 폰은 이번에도 철수의 마음을 얼마나 잘 읽고 있는지, 철수에게 꼭 맞는 메시지가 뜬다.

"귀염둥이 내 딸, 잘 지내고 있지? 너는 왜 맨날 아빠에게 구원받아야 한다고 말하지? 중학생인 너는 십원에서 일원 뺀 구원이 무엇인지 알고나 말하는 거야? 아빠는 전공이 천체물리학이야. 아빠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도 받은 사람이잖아! 나사에서도 잠시 근무했지! 천체를 관찰하면서 우주의 질서 정연함에 좀 놀라기는 했어. 저절로 진화해서 생긴 우주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논리적인 정확한 질서 때문에 아빠도 좀 놀랐어. 그래서 나사에 근무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네가 좋아하는 예수님을 믿어. 나의 직속 부장도 무신론자였다가 나사에 들어와서, 알면 알수록 이 신묘막측한 우주의 모습에 놀라, 누군가 이 우주를 창조한 자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더군. 그리고  그 창조주를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더군. 그때 아빠도 잠시 흔들렸지. 그런데 이 아빠가 어떤 사람이야? 대한민국 최고의 고집 최 씨 가문의 장손이잖아! '절대 흔들리지 말자'라고 마음먹었지. 그런데 이번 방학식 때 네가 모든 선생님에게 카드편지를 드렸다면서? 뭐? '선생님, 예수님 믿고 죄 용서받고,  꼭 천국 가시기를 원해요!'라고.  와~! 너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아빠의 고등학교 동창이 너의 학교 교감선생님이잖아! 나에게 전화를 했더라. 너는 무슨 그런 창피한 일을 하고 다니니? 아빠친구에게까지 편지를 주었더구먼. 아빠친구는 네가 귀엽다면서 기분 좋아하더라. 그렇게 반응해 주니 그나마 다행이었어! 어쨌거나 너는 늘 즐겁고 감사하는 아이여서 좋아!"

현관문을 들어서면 마구 달려와 뺨에 뽀뽀하는 딸이 철수는 잠시 그리워진다. 

"그런 쓸데없는 행동을 하는 것 빼고는, 내 딸이 정말 다 예쁘다!"

"정말 사랑하고, 보고 싶어!"란 메시지가 마지막 메시지로 자동으로 전송된다. 


단연코 생애 최고의 식사를 한 기분이다. 철수는 기분이 좋아 팁을 주려니, 웨이터는 한사코 이를 거부한다. 

"이곳에서는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을 실천하며 사는 곳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라지는 웨이터를 바라보며 철수는 뒤통수를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다. 

'내 몸 사랑하기도 바쁜데 이웃을 사랑하다니, 내가 참 별난 곳에 왔구나!'라는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호텔로 들어가니 '최고의 VIP방의 고객은 제한되어 있다'는 사내규정이 눈에 띈다.

1. 고아와 과부를 최고의 고객으로 모신다.

2. 가난하고 병든 자를 최고의 고객으로 모신다.

3.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자를 최고의 고객으로 모신다.


철수는 눈이 둥그레졌다. 돈이 지배하는 철수가 산 사회의 논리와 완전 딴판인 사규이다. '1. 최고의 고객은 돈을 물써듯 써는 부자이다' 이 정도는 되어야 사내규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부자를 최고의 고객으로 모시는 것이 아니라, 가장 밑바닥 인생을 최고의 고객으로 모시다니, 이 호텔은 영업을 하는 게 맞는 거야?' 철수는 의아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깔끔하고 세련된 인테리어와 모던한 가구들이 잘 배치된 멋진 호텔에서 종업원들마다 모두 싱글벙글이다. '무슨 이런 세상도 있나?'라고 생각하며, 철수는 놀란다. 


철수에게 배정된 방은 최고급 시설은 아니고, 그렇다고 최하급 시설도 아니다. 중하정도의 시설이다. 부사장의 지위에 걸맞은 대우는 아니지만 청결한 방이어서, 철수는 일단 섭섭한 마음을 내려놓았다.  이 수준의 방을 보니 철수는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이 났다. 


철수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교통사고로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때문에 어릴 적부터 가난에 찌들어 살았다. 철수는 이를 악 물고 공부했고, 인정사정 보지 않고 출세를 향해 달렸다. 오직 출세만이 내 인생이 바뀌는 길이라고 마음을 다잡으며 살았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해, 엄마의 나이가 일흔이었다. 칠순잔치를 호텔에서 떡 벌어지게 하고 싶은 철수였는데, 막 미국에서 돌아와 여기저기 취업문을 두드리고 있는 때여서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다. 고생하셔서 주름살 투성이인 엄마의 손을 잡고 지금 이방 같은 중하급의 호텔 식당에서 가족끼리 식사 한 끼를 먹은 기억이 철수의 눈앞에 떠 오른다. '아! 그때 엄마를 모시고 이곳으로 왔더라면 과부인 엄마에게 거창한 칠순잔치를 해 드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에 눈물이 조금 핑  돈다. 


철수는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 TV를 켰다. 그런데 TV 속에 아는 인물이 나온다.

'아니, 저건 내가 아니야?'

TV 속에는 철수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인생이 다큐멘터리로 펼쳐진다.

'아이고, 내가 왜 저런 짓을! 어허, 저게 내가 맞아? 너무 야박하잖아? 어어! 저런 바보 같은 짓을 하다니!'

철수는 자신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못땐 인간인지, 그리고 얼마나 이기적이고 속물근성이 가득한 인간인지를 보면 볼수록 기가 찼다. 아니 너무 창피해서 어디 숨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 TV는 끄고 싶어도 꺼지지도 않는다.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세요!"

철수의 입에서는 이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그날 밤, 철수는 깊은 구덩이로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떠 보니 꿈속에 보았던 그 구덩이에 그대로 누워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빨리 구덩이에서 나와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수는 한 시간이라도 빨리 이 구덩이를 벗어나고 싶었다.

'빨리 가서 아내에게, 아들과 딸에게 내 잘못을 빌어야겠어!'

철수는 바지주머니를 뒤적거려 티켓을 끄집어낸다. 


그런데 이 또한 무슨 일인가!

양비서가 끊어준 여행표는 원웨이 티켓이다.

돌아갈 표가 없다.


이 어두컴컴한 구덩이에서 철수는 너무 암담해서 이를 빡빡 갈며 운다.


그때 이 별에 닿기 전 희미하게 들은 비행기 폭발음이 이번에는 하늘에서 아주 크게 들린다.

아니 이번에는 천둥과 우뢰 소리이다. 너무 무지막지하게 들려 철수의 온몸이 무서움 때문에 벌벌 떨린다.

어디에 숨고 싶은데, 어디에도 몸을 가리고 숨을 구석이 없다


철수의 무서움과 후회의 울부짖음은 천둥과 우뢰소리에 파묻혀 점점 희미하게 사라져 간다.


구덩이의 문이 열리니 아래에는 시뻘건 불이 혀를 날름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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