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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경 Sep 06. 2024

둘째 아이와의 싸돌아 다니기 1.

1. 하늘 위에서

젊은 시절, 사는 것에 정신이 없다 보니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를 다 데리고 가족여행다운 여행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둘째 아이는 시간만 있으면 열심히 싸돌아다닌다. 초3, 초1, 남자아이 두 명을 데리고 미국 곳곳을 싸돌아 다니고, 올여름 한국에 와서도 틈만 나면 돌아다니려고 한다. '어릴 적의 결핍을 메꾸려는 보상심리가 강하게 작용하지 않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올여름, 첫째, 둘째 아이들 다 제주도에서 일주일을 보내었다. (그 이전 둘째 아이는 시댁식구들과 외진 강원도를 시작으로 해서 부산까지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우도를 보기 위해, 늦게 제주도의 아이들에게 갔다. 그러나 쏟아지는 비 때문에, 배는 운항되지 않았다.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인간의 교만인

큰 빌딩, 큰 집, 큰 차는

숨죽여 납작 엎드려져 있고

태초의 숨결은 

거대함을 드러내기 위해 기지개를 켠다.


그 옛날 바벨탑을 쌓아 하늘에 닿으려던

인간의 꿈은 

내가 탄 비행기가 되어

묵묵히

닿을 수 없는 하늘의 깊이 속으로

홀로

나아간다.

우주 앞에,

창조주 앞에,

묵묵히 나아가는 비행기처럼

인간은 

이제

교만한 입을 다물어야 한다.


잠시동안 허락된 시간,

잠시동안 허락된 공간에서

인간은 

잘 썩어진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참 생명을 남기고

티끌같이

그렇게 

사라져야 한다.


2. 둘째와 통영에 가다.

산림청 선정 대한민국 100대 명산에 선정된 미륵산 위에서 통영의 바다를 바라본다.

케이블카가 산으로 연결되어 있고

케이블카에서 내려 나무계단을 올라가면

바다는 자그마한 섬들을 아기처럼 품고서, 너그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에 갇힌 우리는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에서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마가 9:5)"라고 말하는 베드로의 고백을 생각하며, 잠시나마 시간을 멈추려고 한다. 

한여름 낮의 꿈같은 시간이 서서히 지나가고 있다. 


분명히 나는 두 손자의 손을 붙잡고 있었는데

오늘, 그들은 아주아주 곳에 있다.

"할머니가 너희들 보고 싶으면 어떻게 하지?"

"전화하면 돼요!"

그들의 목소리는 아직도 쟁쟁한데 

그들이 매일 먹던 아이스크림은

냉동실에서 외로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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