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라는 설원에 갔더니
조조, 유비, 손권, 제갈량, 순욱, 사마의, 관우, 장비, 동탁, 여포 등
어찌 그리 수많은 발자국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던지
간혹 비질하며
그들을 찾는 사람들은
그들의 발자국의 크기와 새겨짐의 강도를
이리저리 측량코자 하지만
오고 오는 세월은
그들 위에 쌓여
모든 것을
희미하게 한다.
땀과 피와 온갖 모략과 술수로 세워진 나라도
일순간 밀려오는 파도에
휩쓸려가는 모래처럼
세월의 공허 속으로
끌려가버리니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도서 1:2)"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전도서 9:9)"
찰나의 물결 가운데 서있는 우리에게
"일의 결국을 다 들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문이니라(전도서 12:13)"
삼국지의 설원을 비질하던 손을 멈추고
나는
잠잠히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그분을 바라본다.
P.S. 추석연휴 3일간(9/16~9/18) 삼국지 20권을 읽었습니다. 남편이 읽은 소감을 물었을 때, 나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도서 1:2)"라는 말을 인용했습니다. 가장 덕장인 유비의 촉나라가 가장 빨리 망하는 국가가 되고, 조조와 유비와 손권의 고생과 수고는 엉뚱하게 사마의의 후손, 사마염에게 흘러가 천하를 통일하는 자가 됩니다. 그 시대의 가장 뛰어난 전술가인 제갈공명도 천하통일이 목적인 이 주제 속에서 통일에 별다른 영향력을 미치지 못합니다.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에서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보았지만, 역사의 큰 흐름은 인간의 노력과 수고와 상관없이 도도히 흘러감을 다시 보았다고나 할까요? 모든 것이 변하는 세월 속에서 오히려 변치 않는 것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