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선교편지 7(후라노, 비에이의 사계채의 언덕 그리고 하나님의 위로)
아사히카와의 광활한 자연 속에 있는 인공자연을 보기 위해, 우리는 먼저 홋카이도의 배꼽이라 불리기도 하고 비에이 지역과 함께 일본 최고의 농업지대인 '후라노'에 갔다. 마치 차가운 겨울에는 무더운 여름을 그리워하고, 찌는 듯한 여름에는 북극의 냉혹함을 그리워하듯, 이곳의 광활함 속에 특이한 인공꽃밭을 만들었다는 것은 '단일 종류에는 금방 식상해하는 인간의 변덕을 고려한 결과가 아닐까' 하고 혼자 생각해 본다.
가을 길목에 들어선 날씨이지만, 아직도 살아남은 꽃들은 최후의 만찬을 위해 제법 몸단장을 잘하고 있다.
'후라노'보다 좀 더 몸집이 큰 비에이의 '사계채의 언덕'으로 갔다. 후라노는 원래 입장료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사계채의 언덕'에 도착하니, 10월 1일부터 비에이의 '사계채의 언덕'도 입장료가 공짜라고 쓰여있다. 한편으로는 바로 며칠 사이에 공짜라는 선물을 받은 것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볼거리의 가치가 떨어져 있다는 말인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또한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멀리(?) 대한민국에서 왔다고 이렇게 공짜로 환영해 주다니!(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도 이렇게 공짜를 기뻐하다니. 나의 속물근성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좀 찝찝했다.) 물론 탈 것에는 운임을 지불하고, 그것을 타고 '사계채의 언덕'의 넓은 지역을 한 바퀴 돌았다.
이 넓은 지역을(2만 평이라고 한다) 좀 더 세분화해서, 규칙적이고, 어느 정도 규모가 되고, 형형색색 조화를 이루도록 꽃을 심은 인간의 노력은 초록의 풀과 파란 하늘의 세계에 특별한 조미료를 첨가한 듯, 우리의 시각을 즐겁게 한다.
안타깝게도 이 지역은 선명한 색깔에서 세월의 물이 빠져, 약간 가을색깔을 띠고 있으나,
일부 지역의 꽃들은 제철을 만나, 활개 치며 살아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또한 한쪽에서는 해바라기가 일제히 고개를 들고,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다.
한 사람의 일본교인을 하찌하우스의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이번, 남편의 선교계획이 '만남'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이선교사님이 이를 잘 반영하셔서, 첫째 날에는 삿포로 교인들과의 만남, 둘째 날에는 로쿠죠 교인 두 분과의 만남, 오늘 셋째 날에는 선교사님이 돌보시던 한 분과 만나기로 되어 있다. 선교사님의 식사 전 말씀으로는 '이분은 위로가 필요한 분입니다'라고 했었다. 그러나 그사이 하나님이 이분에게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이분의 완전히 변화된 모습에, 선교사님도 깜짝 놀라는 만남을 가졌다.
이 분은 아이를 낳지 못한다고 남편에게 이혼을 당했다. 그래서 죽고 싶은 마음, 우울증 등으로 고통을 받다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벌써 30여 년을 혼자 살면서, 직장생활을 하고 계신다.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성장도 확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선교사님을 만나고, 또 새로운 목회자를 만나고 나서, 구원의 확신뿐만 아니라, 이제는 이 좋으신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전해야겠다는 사명자의 믿음에까지 자랐음을 고백했다. 그분의 간증 중 내 마음에 남는 말은 "제가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헤매고, 힘들어할 때조차도 하나님은 나를 붙잡고 계시면서 나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고 계셨어요. 그 좋은 그림들이 이제 하나씩 맞춰지고 있는 것 같아요. 세상사람들이 보는 겉모양, 즉 경제적인 것이나 사회적 지위가 변한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요즘 제 마음에 기쁨과 감사가 넘치고 있어요. 제게 계신 예수님이 너무 좋아서, 이제 직장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이분에 대한 위로의 말을 준비했던 우리는 오히려 그분으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았다. 이분은 아사히카와를 곧 떠나시는 선교사님 부부를 위해, 따뜻하고도 튼튼해 보이는 실내화를 선물로 준비해 오셨다.
일본땅을 떠나기 바로 전날 만난 이분은, 우리에게는 일본 선교에 대한 소망을 불어넣어 주셨고, 곧 아사히카와를 떠나 삿포로로 가시는 선교사님 부부에게는 이 분의 신앙에 대한 염려와 걱정을 내려놓게 하는 위로를 듬뿍 주셨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원래 이 분과의 만남 후 온천을 가기로 계획했었는데, 이분이 너무나 열심히 자신의 삶을 나누셔서, 온천은 첫째 날 삿포로의 호텔 안 대중탕에서 한 목욕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본사람은 속마음을 잘 내비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솔직히 자신의 삶을 나누는 이 분에게서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세계 인류의 공통적인 본성을 보게 되었다. 속마음을 밖으로 털어놓지 못하는 일본사람들은 그래서 오타쿠(에너지가 내면으로 향하여 한 분야를 전문가 이상으로 파고드는 사람)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아침(2024년 10월 4일), 또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차창밖으로 내다본 들판은 파스텔조의 노란 빛깔을 띠고 우리에게 손을 흔드는 것 같다.
신치토세 역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휴게소는 아기자기한 일본정원을 꾸며 놓고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꽃들이 반기고,
말 조각상이 말을 걸며,
의자에 잠시라도 앉았다가 가기를 원한다.
휙휙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예쁜 집들은 다소곳이 우리를 배웅한다.
신치토세 공항의 "See you again"이란 알림판 아래에서
우리는 함께 사진을 찍으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한다.
(저의 눈이 빨갛습니다. 선교사님 부부와 함께 이별 기도를 하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요. 이선교사님 부부가 일본 삿포로에서 맡겨진 사역을 잘 감당하시기를, 매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