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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경 Oct 18. 2024

True or False?(사실일까, 아닐까?)

2024년 10월 16일(수요일) 저녁의 일

수요일 찬양예배를 마치고, 성경공부가 끝나니, 거의 저녁 열 시가 되었다. 현관 불을 끄고 잠시 화장실에 갔는데, 현관문에 매단 종이 "땡그랑!"하고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상하다. 이 밤중에 누가 올 사람이 있나? 내가 현관문을 잠그지 않았나?'

현관에 가 보니, 컴컴한 중에 누가 현관 안에 들어와 서 있다. 깜짝 놀랐다.

"누구시죠? 일단 불부터 켜고 봅시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불을 켜니, 문 안에 어떤 여자가 서 있다. 긴 머리에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검은 마스크에 눈만 조금 내놓고 있는 모습이다. 속으로 약간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누구시죠?"

"저 배가 너무 고파서 그러니, 혹시 먹던 빵이라도 있으시면 좀 주세요."

"네? 빵요? 빵은 없고. 배가 많이 고프세요?"

"네."

"그래요? 그럼 저녁 차려 드릴 테니, 부엌으로 들어오세요."

"그래도 되나요?"

"네. 들어오세요."

여자는 부엌으로 따라 들어온다. 속으로 '혹시 이 여자가 나를 해코지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일을 벌인 이상 수습을 해야만 한다.


마침 남편의 반찬으로 불고기를 양념해 놓은 것이 있어서, 불고기를 볶고, 끓어놓은 명태국을 데우고, 김치와 멸치 반찬을 그릇에 담고, 밥 한 그릇을 듬뿍 떴다. 

"앉으세요. 빨리 식사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마스크를 벗고는, 휴지로 얼굴을 가리고 식사를 한다.

"내가 부엌 밖에 있을 테니, 휴지 내리고 편하게 식사해요."

나는 그 여자가 편히 식사할 수 있도록 부엌 밖으로 나와서, 책을 뒤적이며 앉아 있었다.

'혹시 부엌에 가지고 갈 무엇이 있나? 값진 것은 없지만 혹시나 가지고 간다면, 그래서 경찰이나 누구에게 들킨다면, 장발장의 신부처럼 그래, 기꺼이 주리라.'

이런 박애정신(?) 이 가득한 엉뚱한 생각까지 하면서,  그 여자의 식사가 마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사실 부엌에 값진 것이 거의 없다. 그 여자가 가져갈 물건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드디어 덜거덕 거리는 소리가 난다. 내가 부엌 안으로 들어가니, 그 여자가 모든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설거지를 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냥 두세요. 내가 할 테니."

나는 여자의 손을 붙잡고 만류했다.

"대신 이야기나 좀 해요."

나는 부엌 밖으로 그 여자를 데리고 나와서, 의자에 앉혔다. 여자는 다시 검은 마스크로 얼굴을 단단히 가리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말하면서 자세히 보니, 얼굴 전체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눈에 쌍꺼풀이 있고, 마스크를 벗으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예쁜 여자일 것 같았다.

"저, 한 달째 떠돌아다니고 있어요."

속으로 '이 무슨 소리인가?' 하는 의구심과 호기심이 불같이 일어났다.

"왜요? 무슨 일이에요? 잠은 어디서 자고요?"

"잠은 밤 12시쯤 되어 아파트에 들어가서 계단에서 쪼그리고 자요. 새벽 5시경에 깨서 첫 지하철을 타고 노선 끝까지 왕복하면서, 지하철 안에서 서너 시간을 자요."

"아니, 무슨 그런! (여자가) 위험하잖아요! 그럼 식사는요?"

"한강변에 가면 사람들이 먹다가 버린 음식이 꽤 많아요. 주로 그걸 봉지에 주워와서 먹어요."

"왜 이런 삶을 살고 있어요? 무슨 이유가 있나요? 집은 없어요?"

나는 젊은 여자가 이런 삶을 산다는 것에 꽤 충격을 받아, 그녀를 주시하면서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원래 저는 골프강사였어요. 그리고 부모님이 물려주신 재산도 꽤 있었어요. 그런데 정말 망했어요. 집도 압류 당했어요."

(주식 혹은 그 비슷한 무언가를 한 것같이 말했는데,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계속 한 달째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어요."

"여기, 이 동네에는 어떻게 왔어요?"

"지하철 타고 계속 다니다가, 여기 가까운 역에서 내려서 걸어왔어요."

(그런데 지하철도 무임승차를 한다고 한다. '무임승차가 가능한가?' 약간 의문이 들었지만, '세상에 젊은 여자가 이런 삶을 살고 있다니, 무슨 이런 일이 다 있나!' 하는, 이 여자에게서 받은 충격이 너무 크서, 꼬치꼬치 캐묻지를 못 했다.)

"아니, 그러면 계속 이렇게 살 건가요? 어디라도 일자리를 구해 일해야 하지 않나요?"

"저,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아침 6시 반부터 시작해서 저녁 늦게까지 일했어요. 그런데 한 달째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저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에 돈 많이 벌 때는, 돈만 생기면 옷사고, 화장품 사고, 저 밖에 모르는 이기적이고 못때 처먹었는데(그 여자의 표현이다) 그리고 그때는 노숙자들이 전혀 눈에 보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떠돌아다니면서, 그 사람들이 제 눈에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한강변에 가서 비닐봉지에 음식을 많이 주워와, 노숙자들에게도 드리면, 그렇게 고마워할 수가 없어요. 저도 마음이 많이 기뻐요. 그래서 저, 돈 많이 벌고 싶어요. 그 사람들, 도와주고 싶어요. 저 만약 실패하지 않고 쭉 성공했다면, 못때 처먹은, 저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 밖에 되지 않았을 거예요." 

떠돌이 생활이 이 여자에게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니어서, 나는 또 한편으로는 놀랐다. 

"그래도 어쨌든 이 생활은 너무 위험해요. 빨리 안정을 찾아야 하지 않나요?"

"얼마 전에 잠실대교에서 자살하려고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경찰에게 끌려갔었어요. 그래서 마포대교에서는 경찰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마포대교를 계속 오락가락했어요. 그리고 마구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욕을 했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들은 체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개를 끌고 있던 한 할머니가 계속 저의 뒤를 따라오더니만, 한참 후에 저를 붙잡고 "그러면 안 돼! 왜 그러는 거야? 그러지 말고 예수님을 믿어. 내일 낮에 여기로 찾아와. 나는 이 교회에 다녀!"이러시면서 저에게 지갑의 돈을 탈탈 털어 주셨어요. 그 돈으로 목욕탕에 갔었어요. 매일 하던 샤워를 못 하고, 너무 힘들었는데, 목욕하고, 그 목욕탕에서 빨래도 하도록 허락해 주셔서, 옷을 빨아 다시 입으니, 너무 행복해서 날아갈 것 같았어요."

안 그래도 이야기하면서 힘내라고, 그 여자의 등을 두드리며 만지게 된 그 여자의 머리카락은 전혀 더럽지가 않았다. 차림새도 전혀 떠돌아다니는 여자로 보이지가 않는다. 

"다음날, 찾아갔나요?"

"아뇨. 저는 옛날에 교회를 몇 번 간 적은 있어요.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는지 알고 싶어요. 그런데 그 할머니의 말이 마포대교는 그 할머니의 산책코스가 아닌데, 그날 어쨌든 마포대교로 와서 저를 만나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꼭 예수님을 믿으라는 거예요. 제가 어릴 적에는 예수님 믿으라는 사람들이 길거리에 많았는데, 요즈음에는 없더라고요."

"예수님은 살아계세요. 그러니 자매님도 예수님 믿고,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도와주시라고, 기도해 보세요."

"제가 정말 집밥이 너무 먹고 싶었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아무 이유도 묻지 않고 저에게 들어오라고 하시고, 밥을 차려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집밥을 먹고 싶다는 저의 마음을 예수님이 알아주신 건가요?"


"자매님. 잘 곳이 없으면 기도원에 가세요. 그곳에서는 잘 수가 있어요."

"기도원이란 말은 들어본 적은 있어요."

그러나 반응이 시큰둥해서, 나는 이 여자가 오늘 저녁 찜질방에라도 가서  자기를 원했다. 1만 원을 주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요즘 찜질방값이 1만 이,삼천 원이다. 그래서 나의 비상금인 5만 원을 주기로 했다.

"이 돈 가지고 가세요."

"네? 이 돈을요?"

"네, 괜찮아요. 그리고 빨리 일자리를 구하고, 정착하세요."


나는 나가는 그녀에게 아예 양치질을 하고 가라고 권했다.

"장애인 화장실에서 양치질하고, 세수해요." 

"요즈음 밤에 추운데, 그 옷으로 괜찮아요?"

"집 나올 때는 반팔 옷을 입고 있었어요. 이 스웨터는 분리수거함에서 주워 입었어요."


나는 음료수 한 병과 사과 한 개도 챙겨서 주었다. 그랬더니 기꺼이 받아서 넣는다.

"지금 몇 시예요? 아직 서울 가는 전철이 끊긴 것은 아니죠?" 그녀가 묻는다.

시계를 보니 밤 11시 40분이다.

"아직 아니네요." 나는 대답한다.

"그럼 저 빨리 전철 타러 갈게요."


"다음에 또 밥이 먹고 싶으면 오세요!"

"다음에는 이런 모습이 아니라, 더 나은 모습으로 와야죠!"

그녀는 그렇게 대답하고, 부리나케 뛰어서 나간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약간 어리벙벙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에 홀린 듯한. 


나는 그녀의 말을 되씹으며, 이런 마음이 든다.

그녀의 모든 말은 사실일까? 아니면 단순히 구걸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일까? 


왜 불 꺼진 교회 문을 열고 들어와 있었을까? 무엇을 훔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잘 곳을 찾기 위해서일까?

(나는 분명히 문을 잠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아직도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의 말이 사실이어도, 사실이 아니어도, 어찌 되었든, 참 불쌍한 영혼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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