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떻게 살 것인가? 13(삶의 우선순위에 대해)

(패트릭 몰리 저) 그리스도인의 삶의 우선순위에 대하여

by 김해경

"비록 그런 갑정을 숨기는 것이 관습이기는 하나, 여전히 더 많은 것을 갖고자 하고, 여전히 더 좋은 삶을 살고자 하는 지속적인 갈망과, 그것을 얻기 위한 투쟁이, 수많은 서양인들의 얼굴에 근심을, 그리고 심지어 낙담을 새겨 넣고 있다. --알렉산더 솔제니친"


많은 사람들이 허기진 상태에서, 쇼핑 목록도 없이, 마트에 가 쇼핑을 한다. 맛있어 보이는 모든 것이 눈길을 끈다. 결국 영양도 충분치 않은 지나치게 많은 스낵류 음식들로 카트를 가득 채운 뒤, 쇼핑을 마친다. 계산대에서 계획하지 않은 마구잡이로 구매한 식품의 총액에 깜짝 놀란다. 그러나 더 나쁜 것은, 그렇게 많은 돈을 쓰고서도 가족에게 필요한 음식을 구매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선택은, 식료품점의 잘 쟁여진 선반에서 식품을 고르는 것과 같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삶을 잘 통제하기 위해서는, 제한된 시간과 물질을 어디에 바칠지를 미리 정해두어야 한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목적은 우리의 제한된 자원을, 하나님이 우리가 하기 바라시는 일에 할당하기 위해서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을 자신의 우선순위로 삼을지 결정하지 못한다. 그것을 아는 사람 중에서도 그 우선순위에 따라 사는 사람은 더욱 희귀하다. 자신이 정확하게 무엇을 찾는지 알지 못하면, 우리의 인생은 영양학적으로 균형 잡힌 음식이라는 우선순위가 아닌, 스낵류의 음식으로 우리의 인생을 가득 채울지도 모른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우선순위를 정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인간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를 살펴볼 때, 우리의 시야는 좀 더 분명해진다.


다음의 네 가지 시각에 먼저 유의할 필요가 있다.

1. 하나님은 내가 어떤 존재가 되기를, 그리고 무엇을 하기를 바라시는가?

2. 하나님은 내가 시간과 돈을 어떻게 사용하기를 바라시는가?

3.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성품과 행위를 보고자 하시는가?

4. 하나님은 내가 어떤 관계와 과제에 집중하기를 바라시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문화적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성경적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신다. (어떻게 살 것인가? 2번 참조) 우리의 가치체계가 기독교적 세계관을 따르고 있는지, 먼저 자신을 살펴보고(어떻게 살 것인가? 1번 참조), 성경적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데 따르는 분명한 위험과 손해를 감수할 믿음이 있어야만, 성경적인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 세속적 가치는 세속적 우선순위를 제시할 것이고, 성경적 가치는 성경적 우선순위를 제시할 것이다.


1.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우선순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6~37)"

이것이 우리 존재의 핵심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알면 알수록 실망스러운 부분이 없을 수가 없는데(그래서 부부가 서로 사랑하기가 쉽지 않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라, 알면 알수록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예수님은 "영생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 17:3)"이라고 말씀하신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인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2차원인 평면만 인식하는 지렁이가 3차원에 사는 인간을 과연 알 수 있을까?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물며 차원을 넘어선 "존재 자체인 하나님, 스스로 있는 자인 하나님"을 인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신론자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신을 안다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허상에 대해 말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불가지론자는 인간은 자연적인 영역 너머에 속한 대상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말한다.

--칸트와 같은 철학자는 신은 우리의 지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므로, 감각에 근거해서 신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성경은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 2:11)"라고 말씀하신다. 성경에서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영을 부음 받으면 하나님을 알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을 알려주셔야만,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롬 1:11)"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하는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인간은 하나님이 알려 주실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야만 할까? 일단 하나님에 관해 아는 것인 객관적인 지식은 중요하다. 말씀의 객관적인 이해와 성경 기자가 저술하던 당시의 상황 등에 대한 이해가 있을 때, 말씀을 내 마음대로 해석하는 오류를 방지할 수가 있고, 이단을 분별할 수 있으며, 내 마음에 비친 허상을 쫓아가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공부가 중요하다. (브런치. 박정수: 하나님: (2) 내가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참조)


그러나 성경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지적인 요소)에 그쳐서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 수가 없다. 수박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은 겉은 초록색 줄무늬가 있고, 속은 빨갛고 달며, 즙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객관적인 지식만 가지고 수박을 안다고 할 수 없다. 수박을 직접 먹어봐야 참으로 수박을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여러 번. 마찬가지로, 삶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적인 지식(감정적인 요소)과 말씀에 대한 순종(의지적 요소)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간다. 이런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가 형성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내가 지식적으로 트럼프를 아는 것과 직접 만나서 트럼프를 사귀면서 아는 것과는 천양지차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과 인격적이고, 개인적인 관계를 맺기를 원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호세아 6:3)"


타락한 본성, 아담의 후예인 인간은 가만히 두면 자기 자신만을 사랑할 뿐이다. 좀 더 넓어지면 가족을 사랑하고(짐승 수준이다. 짐승도 자기 새끼는 사랑한다), 좀 더 시야가 넓어진 사람은 사회와 나라를 사랑한다. 인간의 타락한 본성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일도 없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말한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달라고, 우리는 매일 기도해야 한다. 아니면 우리의 마음 에는 자기 사랑, 세상사랑으로 항상 들끓게 된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

가장 실제적인 방법은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며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한 14:15)" 즉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적어도 매일 15분 동안 말씀을 읽어라. 그리고 점차 시간을 늘려라. 말씀을 읽어야,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시는지를 알게 되고, 그 말씀들에 순종하게 된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란 이 말씀은 매일 쉼 없이 하나님과 대화하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대화하시기 위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복 주시기로 하나님이 작성하신 주일에 나가 하나님께 입맞춤하는 행위인, 예배를 드려라.


살아가면서, 복된 소식인 예수님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라


2. 두 번째 우선순위: 이웃사랑

레이 톨스토이가 말하기를 "모든 이가 인류의 변화에 대해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우리는 너무 자주 다른 이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도, 우리 자신이 변화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충분하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빌립보 2:3)"

이런 마음을 가지고, 부모를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도록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사랑은 수고를 동반한다. 땀 흘리는 수고의 행위가 없는 사랑은 가짜 사랑이다.


3. 세 번째 우선순위 : 휴식, 쉼

육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쳐있는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주님을 위해 충분히 일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충분히, 많이, 일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잘못된 일을 너무 많이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너무 많이 소진시킨다. 예수님은 우리의 쉼에도 관심이 많으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마 11:28~29)" 무거운 짐-경제적, 인간관계적, 질병등-을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로, 말씀으로, 기도로 풀면,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쉼을 허락하신다. 특히 이사야 선지자는 지치고 상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시나니 ~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 40:20~31)"


4. 네 번째 우선순위:일(직업)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위해 무언가 공헌할 장을 필요로 한다. 그 무대가 바로 일이다. 그런데 일의 목적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능력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탁월함을 추구하고 최선을 다함으로, 예수님께서 한 그리스도인의 삶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세상에 보여주어야 한다.


5, 다섯 번째 우선순위: 선한 일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약 2:17)"

믿음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어떤 선한 행위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전혀 믿음이 아니다. 사도바울은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허락하신 것은 오직 우리의 유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한 어떤 뜻과 목적,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데, 거기에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부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염두에 두고 계셨던, 어떤 선한 일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 각자에게 주신 영적 은사를 활용하여, 다른 이를 섬기고, 가르치고, 격려하고, 다른 이의 필요를 채우고, 이끌고, 자비를 보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처럼 살면서, 그리스도를 위해 살도록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이 다섯 가지 우선순위를 위해 살고자 할 때, 세상과 돈은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을 극히 싫어하여, 유혹하거나 위협하면서, 자기들이 우리 인생을 좌지우지하기를 원한다. 믿음의 길은 좁은 길이다. 세상사람들이 다가는 넓고 편한 길로 가다 보면, 그 끝에는 영원한 불못이 기다리고 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8)"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6)"라고 예수님이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KakaoTalk_20250127_133856929.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떻게 살 것인가? 12 (올바른 결정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