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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운동회

by 김해경

요즈음 초등학교는 운동회를 나누어서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운동장이 협소하기 때문이다. 한, 두 명뿐인 자녀를, 옛날처럼 산 넘고 강 건너 학교에 보내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집가까이에 있는 학교, 걸어서 안전하게 보내는 학교를 선호하다 보니, 한 동네에 몇 개의 학교를 짓게 되고, 당연히 학교의 규모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도 바로 가까이에 2개의 학교가 더 있다.)


지난 10월 1일, 2일, 이틀 동안 운동회를 했다. 1일에는 유치원생과 1학년~3학년의 운동회이고, 2일에는 4학년~6학년의 운동회가 있었다.


옛날, 초등학교의 운동회는 그 동네의 잔치였다. 동네의 할아버지, 할머니뿐만 아니라 부모님까지 총출동해서 아이들과 함께 잔치를 즐겼다. 그날, 부모님이 오시지 못한 아이들이 풀이 죽어 있으면, 부모님은 그 아이들을 불러서 함께 도시락을 먹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또한 운동회에 참석하는 어른들에게 보이기 위한 율동, 체조, 카드섹션을 하느라, 운동회 전 한 달 내내 연습을 했다. 특히 카드섹션에서는 나의 하나의 잘못된 행동이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을 알기 때문에, 매우 열심히 연습하며, 틀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운동회는 양상이 정말 다르다. 운동회는 이틀로 나누어지고, 전문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와서 사회를 보며, 바쁜 직장생활 때문에 학부모 위원 엄마들과 시간이 되는 부모님들만이 자신의 아이를 지켜보기 위해 운동회에 오신다. 아이들은 그날 하루, 공부 없이 마음껏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날이다. 물론 아이들에게는 참 신이 나는 날이기도 하다.


그런데 옛날의 그 왁자지껄한, 땀 흘린 고생과 보람을 함께 느낀 운동회를 경험한 나에게 있어서는, 오늘날의 운동회는 무언가 좀 김 빠진 사이다 같은, 맹물 같은 그런 느낌의 운동회로 다가오는 것은 그냥 오락을 즐기려는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문제가 아닐까 하고도 생각해 본다.


운동회 하루 전, 선생님들이 만국기를 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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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일. 1~3학년 아이들이 이어달리기(계주)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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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여학생이 바통을 받다가 넘어져 순위가 바뀌었다. 물론 그 아이는 속상해서 울었다. 그리고 그 일이 그날의 가장 큰 이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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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일. 4~6학년 운동회를 시작하기 전, 아이들이 정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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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천에 가둔 공기를 누르기 경기(일명 바람 잡는 특동대)이다. 사회자가 조건을 말하면 그 조건에 해당하는 아이는 일어나 떠나야 한다. 예를 들자면 "오늘 아침을 안 먹은 친구, 일어나세요!" 이런 식이다. 아이들이 많이 남아있는 팀이 이기는 경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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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막대를 끼고 빨리 돌아오는 2인 경기(일명 에어봉 달리기)인데, 10명씩 반환점을 빨리 돌아오는 팀이 이기는 경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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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고리 던지기 경기도 있다. 대형 장대에 고리를 넣는 경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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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달리기 경기도 있다. 팀별로 낙하산 가방을 메고 빨리 반환점을 돌아오는 경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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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줄다리기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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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 이어달리기(계주)이다. 가슴 졸이며 청팀, 홍팀의 선수가 바통을 넘겨줄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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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협공바운스'라는 전체가 합동하여 공을 튀기는 경기가 있고, 일명 '지구를 들자'라는 경기는 2m 애드벌룬을 처음 시작점에서부터 끝지점까지 학년 전체가 움직이는 경기가 있다. 이러한 8가지의 경기를 하고 나면 12시 30분에서 1시 사이이다. 아이들은 점심을 먹고, 학교 프로그램(늘봄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할 학생들은 학교에 남고, 나머지는 학원으로, 집으로 간다. 학부모 경기로는 유일하게 유치원, 1~3학년 운동회 때 줄다리기 경기가 있을 뿐이다.


워낙 아이들의 학원 스케줄이 빡빡하게 잡혀 있어서 오후까지 어떤 활동을 계속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지적 계발에 이렇게 열심인 이러한 현상이 인재가 유일한 자산인 대한민국에게 있어서 정말 다행한 일인지, 아니면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슬로건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놀았던 옛 세대가 좋았던 것인지, 아직은 아무도 섣불리 장담할 수가 없다. 단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강했던 옛 세대로서, 오늘날의 학교에서 '우리'가 사라지고 '나'가 점점 또렷해지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특히나 나뉜 운동회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모든 아이들을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 넣을 수가 없다. 또한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 넣을 활동들이 학교에 의외로 많지 않다.(입학식, 졸업식도 해당 아이들만 참석한다) Our school에서 점점 더 My school로 가고 있는 것이다.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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