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선 긋기

(목회 1기를 마치며)

by 김해경

남편과 나는 곧 인생의 선을 하나 그으려고 한다.


어린 시절, 신학기가 되어 공책을 사면, 내가 가장 먼저 하기 시작하는 일은 선 긋기, 즉 구획 정하기였다.

여기까지는 사회과목, 여기까지는 도덕과목, 이러면서 공책 위의 여백에 선을 긋고, 과목명을 커다랗게 적어 넣었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공책마저 귀한 존재여서, 한 권의 공책을 여러 과목으로 분리해서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선 긋기는 중요한 작업이었다. 사회과목은 이 정도의 양이 필요할 것 같고, 도덕과목은 이 정도의 양이 필요할 것 같다는 나름대로의 머리를 굴린 계산을 통해, 공책의 양을 구별하고, 그 구분된 양 안에 필기량이 맞춰지기를 원하곤 했다.


인생에서도 사람들은 전반전, 후반전이라는 선을 긋고, 각자 나름대로 정리된 삶을 살기 원한다. 이는 어쩌면 인간의 본능인지, 태고적부터 원시인들조차도 달력을 만들고, 날짜로 선을 긋고, 요일로 선긋기를 즐겼다.


28년 전 '수지'라는 지역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 당시 주위는 온통 논밭이었고, 이제 막 수지라는 지역이 개발되려고 꿈틀대기 시작하는 시기였다. 일례로 앞집 사람은 수지 본고장 태생으로 논밭에 농사를 짓던 사람이었는데, 아파트가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논밭을 팔아 어마어마한 거부가 된 시절이었다.


그러나 남편과 나는 자고 나면 땅의 지형이 바뀌는 수지에서, 어제나 오늘이나 언제나 변함없으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인생을 살아왔다. 누구 하나 의지할 사람 없는 새 땅에서, 묵은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셨고, 그분은 신실하게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셨고, 보호하셨고, 지켜주셨다.


개발시대의 특징인 모든 것이 팽창하고, 커지고, 위로 치솟는 시기에, 우리는 산 밑에 웅크린 나지막한 곳에서 점점 더 작아지는 초라한 우리의 모습에, 때로는 좌절하고, 실망하고, 패배감에 빠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를 위로하시고 다독여주셨는데, 그중의 가장 큰 위로라고 여겨지는 것이 자녀들이었다.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어서 남들처럼 사교육을 마음껏 시킨 것도 아닌데, 아이들 스스로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치다 보니(어쩌면 아이들은 이곳에 있다가는 자신들의 삶이 힘들겠다고 일찍부터 깨달은 지도 모른다) 제각기 살 길을 찾아 떠나게 되었고, 그래서 한 명은 호주에, 한 명은 미국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경우이다. (물론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둘째 딸이 와서 이런 농담을 하고 웃은 적이 있다.

"엄마, 이 세상에서 가장 극한 직업이 무엇인지 알아? 목회자야. 선생님은 보기 싫은 아이도 일 년만 참으면 안 봐도 돼. 그런데 목회자는 그 사람이 싫다고 다른 교회로 가라고 할 수도 없고, 평생을 봐야 하는 경우도 있잖아. 이 얼마나 힘든 일이야!"(목회자는 직업이 아니고 사명이지만, 딸은 목회자의 힘듦을 이렇게라도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참고 인내하면서, 조금씩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을 닮아가던 우리의 삶에 커다란 숙제가 하나 주어졌다.

원래 건강에 약한 남편이 갑자기 심하게 아파서, 작년에 응급실에 두 번이나 입원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은퇴를 몇 년 앞두고 앞으로 언제, 어떤 방법으로 인생의 선긋기를 해야 할지를 계속 기도 중이었는데,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져서, 처음에는 당황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이제 그만하기를 원하시나 봐요!"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저희들을 인도해 주세요" 란 기도를 계속 드리게 되었다.


어느 날, 우연히 우리 앞에 있는 교회의 목회자와 남편이 함께 차를 타고 가는 일이 있었다.

"내가 몸이 안 좋아서 이제 목회를 그만하려고 해요."

"그럼 어떻게 하시려고 하세요?"

"새로운 목회자를 모실 형편이 안 돼요. 그분에게 사례비를 드릴 만한 규모가 아니어서. 지금 어떻게 해야 하나 기도 중이에요."

"그럼 저희 교회에게 그 건물을 주세요. 지금 교육&선교관이 필요해요!"

"그래요? 기도해 볼게요!"


남편과 나는 엎드려 하나님께 묻는 기도를 계속했다. '지역복음화의 모델'이 된다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었은데, 이를 이루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 늘 있어서, 이 교회가 바로 가까이 있으니, 이 사명을 이룰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저희가 앞으로 잘 섬기겠습니다. 노후를 생각하셔서, 저희 교회가 어떻게 해야 할지, 백지에 서로 필요한 금액을 적기로 합시다"

이 전화를 받고 우리는 또 하나님께 묻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금액은 얼마인지,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겠다고 하나님께 기도로 말씀드렸다.


얼마동안 이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남편에게 '얼마'(그런데 그 '얼마'가 공시가의 절반도 되지 않는 금액이었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교회의 옆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고, 작은 동산이 교회를 둘러싸고 있는, 도심지이면서도 조용하고 쾌적한 곳이다. 나는 공기 맑은 이곳이 너무 좋아서, 새벽기도 마치고 뒷산을 한 바퀴 돌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거의 25년을 교회 안에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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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청소하기 위해 창문을 열고 있는데, 교회 옆길로 지나가시던 할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이고, 젊은 사람이 큰 집에 살고 있네!"


178평의 2층 건물로, 공시가가 14억 5천이다. 현시세로 한다면, 즉 공시가의 1.5배로 계산한다고 하면 21억 7천5백만 원이고, 2배로 계산한다면 29억 건물이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없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얼마"라는 숫자가 처음에는 굉장히 크게 다가왔다.


그 목사님과 다시 만났을 때, 그 목사님이 백지에 '얼마'라는 숫자를 적어 내밀었을 때, 남편은 '아! 하나님의 뜻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자리에서 이를 수락했다고 한다.


교회에서 계속 살다가 나이가 드니(젊은 시절에는 추위와 더위를 잘 이겨낼 수 있었다), 산밑이라 겨울에 얼마나 추운지, 따로 특별히 살림집으로 교회를 구성한 것이 아닌 2층이라, 병이 들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2025년 1월 1일, 그동안 선교사님을 위해 사용해 오던 임대아파트로 거처를 옮겼다.


하나님이 너무 좋은 임대아파트를 일찍부터 주셨는데, 이를 사용하지 않고 비워 두거나, 선교사님들이 사용하시도록 했었는데, 이 아파트가 광교호수공원 가까이에 있어서 언제나 산책을 즐길 수 있는, 너무 좋은 곳임을 살아보니 알게 되었다. (사람이 이렇게 지혜가 없어서 모든 일을 늦게 깨닫는다.)


비록 실평수가 작은 곳이지만, 남편과 나, 두 사람이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아파트에 사는 여러 요건 중 하나가 재산이 3억 이하여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아파트에 살면서, '얼마'로 노후를 편안히(?) 살아가면 되겠다는 우리의 생각은 큰 오산이었고 착오였다.

'얼마'이라는 돈이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이 임대아파트의 위치가 너무 좋아서 별로 떠나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어쩔 수 없이 집을 알아봐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런데 막상 집을 알아보면서, 나는 깜짝 놀랐다. 집시세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몰랐는데, 집값이 정말 상상 이상이었다. 이 '얼마'로는 수지의 20년 넘은 구축도 구할 수 없었다. (집을 알아보면서 구축, 신축이라는 단어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임대아파트 주변의 시세도 적어도 '얼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있어야 24평 아파트 한 채라도 장만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하나님, '얼마'를 주셔서 감사합니다!"의 마음이 "하나님,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맞는 건가요? 교회가 불이 나서 다시 재건축할 때, 있던 작은 아파트도 하나님께 드렸는데, 하나님, 이거 너무하신 것 아닌가요?"라는 원망과 불평의 마음으로 바뀌었다. 그런 찰나에 어떤 분이 '얼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드릴 테니 교회를 자신에게 달라고 전화를 하셨다.


남편의 말, "감사합니다만 이미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건물이 교회, 즉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장소로만 계속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그분은 우리 교회를 사서 건물을 다시 지어, 위로는 요양원을 하고, 1층은 교회로 사용하는데, 목사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이 교회에서 계속 사역하셔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남편과 나는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 더 두려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여러 분들의 중보기도로 남편의 건강이 회복되어 있었다.)


용인에는 수지구, 기흥구, 처인구가 있다. '얼마'라는 돈도 세금 떼고 여러 가지 경비를 제외하니, 실상 아파트를 살 수 있는 돈은 '얼마이하'로 한정되었다. 그래서 용인에서도 가장 미개발된 지역에 가서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이리저리 알아보는데, 그 미개발된 지역도 만만치가 않아 조금 실망하던 찰나에, 지나가다가 믿음의 간판을 보고 차를 세우고, 무작정 그 공인중개소로 들어갔다.


그 분과 몇 군데의 아파트를 둘러봤다. 그런데 한 번도 이런 일을 한 적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집안에 들어가면 그 집의 영적 분위기가 느껴졌다.(제가 원래 신령한 은사가 있다는 것이 아니고, 그 순간마다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주신 겁니다!) 이 아파트가 1~3단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2단지가 가장 큰 규모이고,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위치이며, 앞으로의 재산가치도 가장 많이 오를 수 있는 곳이라고, 이 분과 몇 주 동안 2단지의 아파트만을 둘러보았는데, 마음에 드는 집이 없었다.


"그럼, 3단지의 집을 한번 보시죠."

규모, 위치, 재산가치등 모든 면에서 조금 못한 집이었지만, 들어서니 영적 분위기가 좋았다. 아니나 다를까 교회에 다니시는 사람의 집이었다. 그래서 나오자마자 그 집을 계약했다.


3월 마지막 주(3월 29일)에 은퇴식과 합병식을 하고, 4월 1일에 호주의 첫째 딸에게 갈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첫째 딸이 둘째 아이를 출산한다. 생전 처음으로 나는 산후조리를 하러 간다! 남편은 호주에서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실지, 하나님을 기대하며 기도하고 있다. )이 집을 다시 임대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몇 주가 지난 후 공인중개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집이 나갔어요!"

"그래요? 혹시 예수님 믿는 사람이 들어왔나요? 저희들은 그렇게 기도를 했거든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이틀 후, 계약서를 작성하러 오세요."


계약서를 작성하는 날, 이사 올 분을 만나보니, 같은 수지지역에서 오시는 분이셨고 (그분도 우리 교회를 알고 계셨다) 수지지역의 교회에 성실히 다니시는 분이셨다!


공인중개사께서 집 살 때에 중계수수료를 받으셔서 그런지, 이번에는 우리에게 수수료를 받지 않겠다고 하셨다. 수수료로 먹고 사시는 사업하시는 분이 이렇게 말씀하셔서, 우리는 많이 놀랐다. (그 돈이 48만 원이다! 물론 그분께 온라인으로 선물을 드렸다!)


계약서 작성 후 이사오실 분의 요청으로 남편이 기도를 하게 되었다.

'곧 결혼하는 아들의 결혼식과 그 가정이 믿음의 가정으로 든든히 서도록,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부유해지셔서 빨리 집을 사서 나가시도록, 또한 이 집에 살면서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도록, 그리고 이 공인중개소를 하나님이 축복하시도록!'


우리의 형편에 맞는 가장 좋은 집을 주셨음을 감사드리며,

이렇게 은혜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하나님! 감사합니다~)


P.S. 저희들을 아시는 모든 분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기보다 이렇게 글로 그동안의 과정을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그런데 왜 '얼마'이었냐고 하나님께 질문하는 가운데, 이런 깨달음을 주셨어요. 제가 존경하는 제시카 윤 목사님의 저서 "잠근 동산" P 371에 "몇 푼 안 되는 돈을 받고 피값을 주고 산 나의 교회를 팔아서 넘기는 자들!" 이 말이 저에게 크게 다가왔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그럼 저희 교회를 어떻게 하시길 원하세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를 계속했었는데, 하나님이 이렇게 인도해 주셨어요. 그 '얼마'는 28년 전 저희가 처음 수지 와서 땅 살 때의 값과 교회를 두 차례 건축하면서 들어간 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저희들은 건축비가 더 많이 들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나 하나님의 계산법은 우리보다 더 정확하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저희가 사용한 딱 그 금액만 받음으로 판다는, 즉 파는 것은 이익을 동반하는 행위인데, 거기에서 벗어나게 하신 것 같았어요.) 그리고 '얼마 이하'로 집 사러 다니면서 "하나님, '얼마'라는 돈이 집 사기에는 너무 작아요. 계속 이 교회와 이일을 추진하는 것이 맞나요?"라고 물었을 때 하나님이 하신 말씀, " 주라, 그리하면 흔들어 넘치도록 부어주리라!"라고 하셨어요. 저는 꼭 이 말씀이 경제적인 풍요만을 의미한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오히려 하나님이 저희 가정에 천대까지 믿음의 복을 주시도록, 그리고 남편의 건강을 지켜주시도록 계속 기도하고 있답니다!

천사의 나팔.jpg 교회 현관의 천사의 나팔에 맺힌 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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