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기 시원한 바람

by 김해경

최저 임금 협상 때문에 노동자나 경영자나 다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코로나라는 복병 때문에 모두가 힘들어하는 현 상황에서 서로가 만족할 만한 협상안은 없는 것일까?


코로나 이전에 호주를 방문한 적이 있다. 거기서 내가 만난 40대 후반의 한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저는 호주에 와서 직장이라는 것을 처음 가지게 되었어요. 유치원 보조 교사이죠. 유치원에서 필요할 때 부르면 가서 선생님을 도와 드리고 아이들을 보살피는 거죠. 이런 직업을 Casual(케쥬얼)이라고 하는데 시급으로 따지면 가장 높아요. 그다음이 Temperary(비정규직)이고 그다음이 Regular(정규직)예요. 호주라는 나라가 참 합리적인 나라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Casual은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불안정하고 경제적인 뒷받침이 필요한 사람들이죠. 그들이 어떻게 하든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거죠. Regular는 시급은 가장 낮지만 일단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있고 또 여러 가지 복지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에 불만이 없는 거죠."


나는 이 말을 듣고 호주라는 나라를 다시 보게 되었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요소가 이 나라에도 있을 수 있지만, 그러나 살아가는데 모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임금체계에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신기하고도 놀라웠다.


중학교 아이들에게 "장래 직업으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니?"라고 물으면 거의 90% 이상의 아이들이 이렇게 말한다.

" 돈 많이 벌고요, 안정적인 직업요."


아이들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지, 아니면 부모들의 말과 생각이 투영된 것인지 알 수가 없지만, 직업선호도의 1위가 돈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나는 직업의 첫출발을 학교의 정규직인 교사로 출발해서 대학교의 시간강사(요즘은 외래강사라고 한다), 중고등학교의 기간제 교사, 그리고 지금은 중학교의 영어회화 강사로 있다. 사람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향상된 직급을 가지는데, 세상적인 눈으로 볼 때 나는 거꾸로 기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대학교 동기들이 거의 모두 교장, 장학사, 심지어 지역청의 교육장이 되어 있어 그들의 삶이 겉보기에는 성공한 것 같이 보인다.


그래서 한 때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내 인생이 실패한 것 같았다. 특히 나는 성취지향적, 성공지향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어떤 목표를 정하고 미친 듯이 그 일을 한다. 그리고 그 일이 완성된 후, 그 일이 주는 결과에 보람을 느끼며 모든 고생은 잊어버린다. 어떤 의미에서는 새로운 것을 모험하기 좋아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도 똑같은 학년, 똑같은 교재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매년 가르치는 방법과 내용을 바꾼다.


학교의 피라미드 조직 내의 모든 직급(관리자 직급 제외:그럴 기회가 없었네요)을 경험하면서 나는 인간이 된 것 같다. 학교 내 선생님들과 관리자들을 보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잘난 체하고,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남을 이용하는 여러 모습들을 보면서 "아, 만약 내가 이 가장 낮은 직급에 있지 않고 그냥 정교사를 계속했더라면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 있겠구나."라는 생각들을 하게 된다.


학교에서 공부 잘하고 반듯한 아이들은 정말 사랑스러울 때가 많다. 그러나 나는 되도록이면 그 아이들에게서 관심을 끊으려고 한다. 그 아이들은 나 아니더라도 사랑받을 곳이 너무 많다. 모든 선생님들이 사랑해 주고 친구들이 인정해 준다. 일단은 성공한 인생이다. 그러나 공부 못 하는 아이들, (요즘 공부 못 하는 아이들은 가정환경도 좋지 않다.) 그들의 인생은 어느 한쪽이 무너져 있다. 나도 한 때 무너진 인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의 형편이 더 이해되고, 그들이 더 마음에 와 안긴다.


이번 주 목요일(6월 24일)에 문법 시험을 쳤다. 태훈이라는 아이가 있다. 영어 기초가 전혀 되어있지 않는 아이였다. 즉 그 말은 영어라는 환경에 노출될 기회 (그것이 학원이든, 가정에서의 영어에 대한 관심이든) 그럴 기회가 부족했다는 말이다. 나는 멘토-멘티제도를 활용한다. 공부 잘하는 아이는 남을 섬기는 훈련을 해야 이기적인 자신의 범주를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 명의 아이에게 자신의 시간과 재능을 사용하기를 권한다. 그리고 멘토들에게 멘티를 절대 존중해주기를 요청한다. 단지 멘티들의 학습 속도가 늦을 뿐이지 열등한 것은 아니라고 계속 말한다. 태훈이는 멘티이다. 멘티들에게는 끊임없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다. 그리고 항상 말한다.

"영어공부, 쪼금만 해. 그럼 돼. 선생님은 잘하는 것을 바라지 않아. 기본만 되면 돼."

그리고 수업시간에 쉬운 부분을 그들에게 물어서 맞추면 폭풍 칭찬을 해 준다. 일단 이 아이들은 자신감 회복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태훈이가 20점 만점에 17점을 받았다. 이건 과히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수준의 아이들도 14~15점을 받은 시험인데, 태훈이가 17점을 받은 것이다.

"태훈아 너무 잘했어. 정말 잘했어. 너 정말 대단하다. 너 어떻게 이렇게 잘할 수 있니? 너 정말 대단한 아이다"

태훈이는 약간 부끄러워하며

"열심히 했어요." 한다.

그래서 나는 "얘들아, 이건 인간승리이다. 태훈이가 대단하지 않니?" 라며 아이들의 박수를 이끌어 내었다.

그리고 형광펜, 아이스 물통, 사탕 등 내가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한 아름 상으로 주었다. 수업 후 담임선생님에게도 연락해서 칭찬해 주시기를 부탁했다. 주저앉아있던 한 아이가 일어서는 것을 보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 큰 기쁨이다.


그렇다. 고통을 아는 자만이 고통을 이해한다. 너무 잘 나가는 사람들, 어려움 없이 승승장구한 사람들이 남의 고통을 헤아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한두 개씩의 문제를 주는가 보다. 인간 좀 되라고(예수님 믿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을 의지하라고).


호주의 임금 문제가 내 마음에 깊이 와닿은 것도 내가 비정규직이고, 내 임금체계가 정규직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다는 것을 절절히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은 오히려 정규직에 비해 더 많이 하는데도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낮은 직종의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더 많은 일을 몰아주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분명 갑질인데도 그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낮은 직종의 사람들은 자기들보다 열등한 존재여서 이런 대우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호주에서 회사를 다니는 첫째 딸이 전화를 했다.

"엄마, 곧 임금협상이 시작돼. 기도해 줘. 내가 이 회사가 너무 좋아서 들어올 때 임금을 너무 낮게 책정해서 들어왔어. 좋은 점은 호주 사람들은 그 임금만큼만 일을 시켜. 몇 달 동안 여유 있게 지냈어. 그런데 이젠 아닌 것 같아."


돈 많이 받는 사람이 그 조직에서 가장 열심히, 가장 많이 일하는 사회, 자기보다 못 한 직종의 사람에겐 그 사람 나름대로의 인생역사가 있어서 그들도 존중받는 사회, 임금체계에서도 약자가 배려받는 사회를 한국은 언제 이루어낼까?


여름의 문턱을 들어서는 요즈음,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이 사회에 불어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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