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영이는 예쁘다 >

잃음과 회복의 생애기록

by 송은영


KakaoTalk_20251013_173607805.png <입양 후 백일에 찍은 사진>


천천히 백일 때 찍었다는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가진 사진 중에서 나의 가장 어릴 때 사진이 이사진이다.

사진 속 그 아가에게 잠시 말을 걸어본다.

‘두렵지 않니? 그립지 않니?

말도 할 수 없고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너의 무력함에 이미 체념해 버린 거니?

아니면 그 사이에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한다고 마음먹은 거니?

이제 겨우 백일 된 너에게 건네는 말치고는 참 예쁘지 않은 말들이구나..

그렇지만 은영아

이제부터 펼쳐지는 너의 그 작은 인생이야기가 난 기대가 된다.

네가 좋아하는 ‘빨간 머리 앤의 앤 셜 리’가 했던 말이 생각이 나는구나.

앤이 마릴라와 메튜가 원하던 남자아이가 아니라서 파양을 당할 위기 직전에 끔찍이도 싫었던 고아원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그 절망적인 순간 마차에서 이렇게 얘길 했지..

“전 이 드라이브를 마음껏 즐기기로 작정했어요,

즐기겠다고 결심만 하면 대게 언제든지 그렇게 즐길 수가 있어요.!”

그렇게 그 마차에서 넌 왜 고아가 되었는지 입양을 오기까지 어떤 힘든 시간들을 보내야 했는지 아주 씩씩하게 얘길 하더구나. 너무나 씩씩해서 난 오히려 슬펐지만 앤셜리는 정말 그러기로 작정한 듯 보였어.

은영아.

너도 분명 그럴 수 있을 거야.

앤이 그럴 수 있었다면 너도 근사하게 즐길 수 있을 거야.

왜냐하면 누구보다 내가 널 응원할 거거든..

어릴 때 집에서 식구들이 날 보고 ‘못난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자라서 인지 난 누가 날 보고 예쁘다고 하면 참 어색하고 놀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내가 스스로 예쁘다 말할 수 있게 된 날이 왔다. 나의 슬픈 자아상을 깬 날이다.

이모와 통화를 했다

비가 오면 마음이 쓸쓸해지고 슬퍼지는 것이 혹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갑자기 궁금해졌다. 내가 엄마랑 헤어지던 그날.. 혹시 비가 온건 아닌지..

나를 입양시킨 중간역할을 이모가 한 것으로 알았기에 나는 이모에게 용기를 내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이모에게 뜻밖에 얘길 들었다. 생각해 보니 사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가 입양되던 그날에 대해서 정확하게 얘기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냥 주위사람들에게 들었던 것과 아니면 내가 생각한 것이 그렇게 뒤죽박죽으로 엉켜있었다. 괜찮다고 이젠 괜찮다고 하면서도 어쩜 나도 모르게 회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좋은 점이 많은 것 같다.

용기라는 것이 생기니 말이다. 평소 연락도 잘하지 않은 이모에게 늦은 밤 전화를 걸어 그날 비가 왔었냐고 물어본다는 것은 내겐 가슴 떨리는 일이다.

그런데 그날은 날씨가 아주 좋았단다.

그렇게 시작된 이모의 이야기는 내게 새로운 것들을 많이 알게 했다.

난 그동안 이모가 나를 입양 보낼 때 중간역할을 한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이모가 알고 지내던 비단장수 여자란다.

이모는 그 당시 태어난 지 1년 된 딸과 단둘이 단칸방에서 살았다. 이모부는 좋지 않은 일로 감옥에 가야 하는 상황이었고 잘 사는 친척이 돈으로 해결해 주는 대신 몇 년 그 집에 일꾼으로 살아야 해서 이모부와는 떨어져 지내고 있었다. 그런 이모집에 엄마는 오빠와 언니 그리고 태어난 지 이레도 안된

나와 쌍둥이 동생 미라를 데리고 가서 신세를 져야 했다.

결국 오빠와 언니는 외할머니 댁에서 지내고 나와 쌍둥이 동생과 이모와 이모 자녀들이 단칸방에서 살았다.

친아빠는 집을 팔고 그 돈으로 바람난 여자와 술집을 차려 살고 있었고

엄마와 네 자녀는 그렇게 힘겹게 살아야 했다.

이모부가 친적집에 가시기 전 가져다준 쌀 한 가마니가 전부였다.

그런 여동생집에 줄줄이 딸린 아이들을 데리고 살아야 했던 엄마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런 엄마에게 비단장수 아줌마의 제안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을 것이다.

나와 동생 쌍둥이를 낳기 전 이미 딸 한 명을 태어 난지 얼마 안 되어서 잃었다.

그렇게 또다시 자식을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한입이라도 덜어야 했을 거다.

지독한 가난.

사랑하는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인 앞에 펼쳐진 참혹한 현실은 그렇게 마음먹을 만했다.

나는 나와 동생 둘 중 누굴 보낼까? 엄청 많이 고민했을 줄 알았다. 그리고 왜 나였는지도 참 궁금했다.

어릴 때 입양 간 집에 가족들이 간혹 어릴 때 얘길 해주는 것을 들으면

내가 엄청 많이 아파서 죽을 위험이 닥쳤는데 대학병원에서 큰 수술을 하고 겨우 살았다고 했다.

그런 얘길 듣고 커서 인지 나는 내가 입양된 사실을 알았을 때 누가 말해주지 않았음에도 내가 많이 아파서 나를 살리려고 어쩔 수 없이 가난한 엄마가 부잣집에 치료해 주는 것을 조건으로 보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데.. 참 웃지 못할 이유에서 내가 갔단다.


엄청 부잣집인데 자식이 없다고 하니 여기서 고생시키지 말고 보내자는 말에 부잣집 사람들은 얼굴도 곱다던데 쌍둥이 중 큰 애인 내가 동생보다 이뻐서 이쁜 애가 가야 덜 구박받고 진짜 부잣집 딸 같이 보일 거라며 날 선택했다는 말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쌍둥인데 그것도 태어난 지 이레도 안된 애들 얼굴이 뭐 얼마나 차이 날까?

내가 동생보다 이쁘면 뭐 얼마나 이쁘다고 나를 ‥

여자들은 이쁘다는 말 들으면 싫어할 사람 하나도 없다고는 하던데 어쩐지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믿지 못하겠다는 듯 얘길 하자 이모는 자꾸


“네 엄마가 고생을 해서 그렇지 미운 얼굴이 아니야

이뻤다 네 엄마‥

네가 엄마랑 제일 많이 닮았다 아가‥

진짜여 네가 어렸을 때 얼마나 예뻤다고‥“

친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연세 지극하신 고모들이 돌아가며 내게 와서는

“네가 은영이냐 ‥

아이고 ‥잘 컸다 ‥

네가 미라보다 이뻐서 갔다 아가 ‥“

했던 그 말이 장난이 아니라 진짜였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고 지금 내 마음은‥

‘그래 이쁜 게 죄지.. ’싶다

먼저 하늘나라에 간 동생이 살아 있다면 전화해서 한방 날리는 건데

“가시나야 ~~ 내가 너보다 이쁜 거 맞지?”

한때 왜 미라가 아닌 나였을까?

곰곰이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

미라가 아닌 내가 가서 다행이다 차라리 나여서 다행이다 ‥

그러면서도 가슴 한편에선 아무리 가난해도 엄마 사랑받고 큰 미라가 더 행복했을 텐데

그 아이는 왜 그리 빨리 하늘나라에 간 건지‥

마음고생은 했지만 그래도 잘 먹고 잘 입고 큰 내가 동생한테 미안해진다

혹시 내가 아닌 동생이 입양을 와서 컸다면 동생이 더 오래 살고 내가 먼저 갔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들‥

날 그렇게 보내고 나서야 엄마는 생선 장사를 나갈 수 있으셨단다

오빠는 이모가 봐주고 언니는 외할머니댁에 맡겨져서 컸단다.

쌍둥이였다면 둘을 업고 장사를 하러 가지는 못했을 거라는 이모의 말..

잠깐 그렇게라도 엄마등을 차지했던 동생이 부러웠다.

아니 그 등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그렇게 생선 장사를 마치고 이모랑 한방에서 자면 밤마다 숨죽여 울었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는지

전화기 너머 이모는 울고 있었다.

엄마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다시 나를 데려오려고 이모가 비단장수를 찾았는데

그 비단 장수가 자취를 감추어버렸다고 한다.

사람들이 딸보내고 부잣집이라는 그 사람들한테 돈 좀 받았냐고 물었다고 한다.

무슨 천벌 받을 소리냐고.. 화를 냈다면서 비단장수는 받았을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없어졌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엄마는 그렇게 거기서 가슴을 움켜잡고 딸을 그리워하며 울었고,

나는 또 다른 곳에서 엄마를 그리워하며 소리 없이 울었다.

진짜 가슴 아픈 것은 내가 그렇게 기다리고 보고 싶어 했던 엄마는 내 친엄마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인생은 그런 것인가 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

누군가는 날 그리워 하지만 난 다른 사람을 그리워하게 되는 그런 일..

그게 참 슬프다.

이모는 그렇게 엄마가 우는 모습을 볼 때마다 너무 괴롭고 화가 나서

아빠한테 쫓아가 그 첩을 연신 두들겨 패고 왔단다.

그것이 이모가 엄마를 대신해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복수였다고 한다.

엄마는 미련할 만큼 착해서 그러고 돌아온 이모를 말리며

그 여자가 무슨 죄가 있냐며 한사코 그러지 말라고 했단다.

내가 엄마를 닮았나 보다.

나였어도 아마 엄마처럼 그랬을 거다.

그 뒤 아빠와 바람났던 아줌마는 딸 둘을 그렇게 엄마에게 맡기고 다른 데로 시집을 갔단다.

엄마는 그렇게 첩의 딸을 키우셨다.

언니나 동생이 소풍 갈 땐 한 번도 따라간 적 없던 엄마가 그 둘은 소풍도 따라가고 더 잘해주었단다.

그래야 남의 집 자식으로 간 내 자식도 어딘가에서 귀하게 클 거라면서‥

그게 엄마가 내게 줄 수 있는 사랑의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가여운 여인‥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내가 네 살이 되어서 이모는 화장품 장사를 하러 다니다가 한 요정집에서 나를 만났다고 한다. 태어난 지 이레밖에 안 된 나와 헤어져 4년이 지나서도 날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나와 쌍둥이 동생 미라와 내가 너무 닮아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부잣집에 가서 잘 살 줄 알았는데 요정집에 아가씨들 사이에서 놀고 있던 날 보고는

이모는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고 했다.

4년이 지나 나를 거기서 만나다니 놀랄 법도 했다.

이모는 그 요정집주인에게 나에 대해서 물었고 여기 자주 오는 형의 딸이라고 했단다.

이모는 주인에게 나에 대해 얘기했고 기회를 봐서 나를 몰래 데려가려 했는데 그 주인이 양아빠한테 말을 전했는지 어느 순간 나를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부잣집에 간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참 미련했다고.. 그런 집인 줄 몰랐다고.. 내가 가면 잘 살 줄 알았다고..

이모는 40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 어떻게 살았냐고 물어본다.

난 항상 그래왔듯이 잘 살았다고 대답했다.

잘 살았다고..

괜찮다고..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10년 전 경험했던 한 기억이 떠올랐다.

서른 살 때쯤 무의식 속에 있었던 나의 어린 시간을 직면하게 된 경험이 있었다.

엄마랑 헤어지던 그날에 대한 기억이었다.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지만 정작 그때 나는 과연 어땠는지 사실 잘 몰랐다. 그런데 그 시간에 만났던 나는 엄마 곁을 떠나는 것이

너무 무섭고 두렵고 끔찍했던 일이었다.

얼마나 가기 싫다고 격렬하게 저항했는지 보았다.

나 보내지 말라고 제발 보내지 말라고 나는 온몸으로 말했다. 그런데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나 보다.

온몸이 땀범벅이었고 얼굴에 있는 모든 핏줄이 터질 것처럼 , 목이 쉬어서 소리가 안 날 정도로 그렇게 울었다. 그렇게 있는 힘을 다해 꼭 쥐고 있던 엄마의 옷자락은 결국 누군가에 의해 놓치게 되었다. 그때 어렴풋이 보았던 엄마의 얼굴은 세상에서 가장 가여운 사람의 얼굴이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보니 조금 알 것 같다.

그렇게 남의 집에 강제로 가야 했던 나도 물론 가여웠지만

자식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고 보내야 했던 어미 마음만 할까?

평생 스스로를 얼마나 자책하며 살았을까?

보내진 나야 운명이려니.. 숙명이려니.. 하고 살았다지만

보낸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조차 죄스러워하지 못하셨을 거다.

나는 엄마를 용서할 자격까진 없지만 그래도 그 말을 듣고 싶으셨을 텐데 엄마에게 전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여인이 너무 가엽다.

우리 부모님들이 얼마나 좋으신 분들인지.

양 아빠도 친엄마도 친아빠도 지금은 남원에 있는 한 납골당에 안장되어 있다.

세 분 다 남원이 고향이니 좁은 도시에서 한 군데밖에 없는 납골당에 계신 것이다.

나 고생 덜하라고.. 여기저기 다니지 말라고 살뜰하게 챙겨주신 것이다고 생각하면 고맙고 감사하다.

월요일 연재